2007년에도, 2012년에도 그는 ‘박근혜의 입’으로 통한다. 이정현 새누리당 공보단장은 남들보다 다섯 배쯤 더 기뻐하고, 열 배쯤 더 억울해하는 성향의 정치인이다. 프로야구로 따지자면 SK 이만수 감독과 닮았다. 미움받기 딱 좋다는 얘기다.
그는 여론을 청취하는 집음기라기보다는 일방향 스피커다. 기자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도 그는 듣기보다 주로 말하는 쪽이다.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사석에서도 ‘박근혜의 입’은 쉴 틈이 없다. 어떤 기자는 이런 그의 모습을 두고 ‘판소리 완창’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남 곡성 출신인 이 단장은 어린 시절부터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 정치인은 목소리가 커야 한다는 생각에 웅변학원도 다녔다. 그를 정계에 입문시킨 이는 구용상 전 민정당 의원이다. 구 전 의원은 5·18 항쟁 당시 광주시장을 지냈다. 희생자들의 묘역으로 망월동을 선정한 것도 바로 구 전 의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국대 정치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 단장은 1985년 구 전 의원에게 6장짜리 장문의 편지를 쓴다. “정치를 좀 똑바로 하시라”는 따끔한 충고를 곁들였다. 구 전 의원은 그런 ‘청년 이정현’을 자신의 비서로 기용했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주로 전략기획과 공보 계통에서 일했다. 당내에선 비주류인 호남 출신으로 소신도 뚜렷하다. 호남은 민주당에, 영남은 새누리당에 ‘올인’하는 지역 분할 구도에 균열을 내겠다는게 필생의 목표란다. 1995년 민정당 후보로 광주 시의원에 출마해 1.2%를 득표했다. 2004년 총선에선 광주 서구을에서 0.7%(720표)를 얻었다. 4·11 총선은 ‘정치인 이정현’의 세 번째 도전이었다. 역시 광주 서구을에 출마해 선전했지만 40%의 득표율로 고배를 마셨다.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목표 중 하나는 호남에서 20%를 얻는 것이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이 단장은 이미 그 두 배를 달성한 셈이다. 의정 생활을 통해 ‘호남예산 지킴이’라는 별명과 함께 지역의 5·18 단체들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다.
박 후보에 대한 이 단장의 충성심은 남다른 데가 있다. 2007년 후보 경선에서 박 후보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패하자, 그는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며 전당대회 행사장을 배회했다. 비례대표 마지막 순번인 22번으로 18대 국회에 입성한 이 단장이 애초에 박근혜 의원실(545호) 맞은편에 있는 사무실을 원했지만 선수에서 밀려 뜻을 이루지 못하자 바로 아래층(445호)을 택했다는 건 잘 알려진 일화다. 주군을 받들어 모시겠다는 충정의 발로라고 한다. 그는 대선 정국에서 박 후보를 위해 총대를 메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이 단장이 오전과 오후로 나눠 열리는 정기적인 기자간담회를 자처한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논점과 현안을 두고 상대방을 논박하고, 박 후보의 견해를 대변한다. 기자들에겐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도 된다.
하지만 독설의 독기는 상대방만을 향하지 않는다. 공격수가 더 많은 상처를 입는 일이 다반사다. 투표시간 연장 문제를 두고 “투표는 성의의 문제”라고 주장했다가 뭇매를 맞았고, 이를 ‘먹튀방지법’(후보중도 사퇴시 선거보조금 환수 법안)과 연계해 처리하자고 제안했다가 문재인 후보 쪽에서 이를 전격 수용하자 슬그머니 말을 바꾼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프레임에 맞선 ‘최전방 공격수’를 자임하고 있다. 말값이란, 언젠가는 갚아야 할 부채나 마찬가지다. 그에게 물었다. “이정현 스타일이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안다”는 답이 돌아왔다. 씁쓸하게 들렸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총선 직후 사석에서 이 단장에게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구냐는 질문을 던진 일이 있다. 그는 주저 없이 법사위에서 함께 활동한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을 꼽았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치밀하게 권력과 기관을 감시하는 박영선이야 말로 진짜 국회의원”이라고 극찬했다. “김대중 정부의 탄생 이후 어느 자리에 가서도 내가 호남인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정치인도 사람이다. 신념과 판단은 각자 다를 수 있다. ‘정치인 이정현’은 적어도 상대방의 덕목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달라졌다. 그건 위악일까, 아니면 초조함일까.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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