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긴 예배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두 후보는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의 옛 축사 영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11월14일 ‘2012 대통령 선거를 위한 국가조찬기도회 헌신예배’가 열린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다. 역대 대통령들이 거의 매해 참석했고, 2011년 이명박 대통령 부부의 ‘무릎 기도’로 도마에 오른 국가조찬기도회다. 이날 행사는 위성과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됐다.
두 후보는 찬송가를 중얼중얼 따라 불렀다. 헌금함에 흰 봉투도 넣었다. 여러 목사들이 “조국을 사랑하고 외교안보를 튼튼히 할 지도자가 돼달라”는 취지의 ‘말씀’과 기도를 했다. 박 후보는 “화평케 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기억한다”며 통합을 강조했다. 문 후보도 “종교가 함께 통합의 역할에 앞장서달라. 남북 화해와 평화를 위해 더 큰 역할을 해달라”고 말했다. 축사 명단에 적혀 있던 안철수 후보는 참석하지 않았다. 사회자가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아직이 자리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말하자 신자들이 크게 웃었다. 안 후보 쪽의 한 관계자는 “예정된 일정 때문에 불참했다. 안 갈 이유도 없지만 굳이…”라고 말했다.
국가조찬기도회는 1966년 미국의 국가조찬기도회를 본떠 ‘대통령조찬기도회’로 시작됐다. 강인철 한신대 교수의 를 보면, 1969년 기도회에서는 “하나님이 (군사)혁명을 성공 시켰다”(김준곤 목사)는 발언이 나온다. 김 목사는 1973년 기도회에서는 “10월 유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기어이 성공시켜야”라고 말했다. 목사가 이끌고 대통령이 ‘감행’했던 무릎 기도 이후 종교계에서는 이 행사에 고위 관료나 정치인들의 참석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자는 주장도 나왔다. 개인이 갖는 종교의 자유와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정교분리 원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신교 내의 일부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세력이 대형 교회를 키우며 정치세력화하는 데 대한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MB 무릎 기도’의 영향 탓일까. 이날 기도회에서 정치적 발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력 대선 후보 가운데 개신교 신자가 없는 것도 이유가 아닐까 싶다. 박 후보와 안 후보는 종교가 없고, 문 후보는 가톨릭이다. 박 후보는 가톨릭계 학교를 다니며 받은 천주교 세례명(율리아나)과 2005년 대구 동화사에서 받은 법명(선덕화)을 갖고 있다. 최태민 목사와 함께 새마음봉사단을 만드는 등 개신교와 인연도 있다. 문 후보는 “친가와 처가 모두 가톨릭”이고, 안 후보는 “외가는 독실한 불교, 처가는 독실한 가톨릭이 고, 나는 딱히 없다”고 밝혔다.
대선 후보들이 종교 지도자를 예방할 때마다 ‘○ 후보, 종교계 표심 공략’ 따위의 기사가 나온다. 그럴 것이다. 정치인 가운데는 ‘종교가 여럿’인 이가 적지 않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선거 때는 물론이고 틈틈이 지역구에 있는 교회, 성당, 절 등을 찾아다녀야 한다. 나는 원래 다니던 교회에 나가고, 아내는 절에 가고, 딸은 보수적 대형 교회에 보냈다”고 한다.
표심 관리 차원만은 아닐 터다. 종교가 갖는 관용과 배려의 가치는 정치 지도자가 지녀야 할 덕목이다. 배우러 간다. 정치와 종교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이들이 문제인 거다. 박 후보의 9월10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방문 당시 이강평 목사는 “해외 투표(재외국민투표)를 할 때 지지자들을 많이 만들기 위해 교회 연합을 활용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홍재철 목사는 “미국 한인기독교지부 결성 선거를 하고 왔는데 (대선) 선거인단 등록을 독려하고 있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가 11월 5일 방문했을 때는 황규철 목사가 “가톨릭 기본 교리 정신이 한기총이 지향하는 바와 조금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국민 절반 가까이 종교가 없고, 어느 한 종교가 크게 우세를 보이지 않는 다종교 사회다. 2005년 인구센서스에는 무종교 46.7%, 불교 22.9%, 개신교 18.3%, 가톨릭 11%로 나타난다. 일부의 문제로 종교가 욕먹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종교든 정치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게 기본 아닌가.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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