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무엇을 먹는지 말하라, 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군지 말해보겠다.”
프랑스의 미식가 앙텔므 브리야사바랭의 문장을 대선 후보들에게 적용해도 그다지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정치부 기자가 한가하게 웬 음식타령이냐’고 묻고 싶은 열혈 독자는,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를 보시라. ‘오바마 푸도라마’(Obama Foodorama)라는 음식 블로그를 운영하며 허니 에일을 직접 만들어 마시는 오바마 대통령처럼, 한국의 대선 후보가 “전 바비큐엔 늘 인디아 페일 에일을 마십니다”라고 말한다면 하이트진로와 오비 직원들은 표를 줄까? 물론 홈브루잉(자가맥주양조) 마니아들은 열성적 지지운동을 하겠지만. 그러므로 먹는 것은 때로 정치적이지 않느냐 말이다.
브리야사바랭식으로 말하면, 세 후보 모두 ‘통합의 혀’를 가졌다. 좀더 솔직히 표현하면 ‘취향이 강하지 않은 입’을 가졌다.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음식 취향이 없거나 있어도 강하지 않다’ ‘요리 실력은 나쁘다’는 게 공통점이다.
박근혜 후보는 “토속 음식으로 소식을 즐긴다”고 2006년 MBC에서 밝혔다. 손님이 오면 내는 요리는 비빔밥. “김치찌개, 된장찌개는 맛있게 끓이는 편이다. 그리고 채소 샐러드와 두릅나물을 좋아해서 잘 무쳐 먹는다”(10월호) 하니, ‘82쿡닷컴’ 키친토크에 올릴 만한 수준도 안 된다. 딱히 알려진 단골 맛집도 없다. 인터넷에 ‘박근혜 맛집’으로 알려진 마포 한정식 집에 자주 가긴 하지만, 음식 맛 자체보다 모임 장소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영식, 북포스)를 보면, 2005년 주량은 소주 4잔이고 복분자주 등 전통주를 좋아했다. 지금은 마시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문재인 후보는 셋 중 음식 취향이 강한 편이다. 가리지 않고 잘 먹는 건 공통점. 캠프 내 지인에게 물었더니 회 등 모든 해산물을 특히 좋아한단다. 냉장고에 늘 해산물이 있을 정도다. 생선은 조림보다 구이를 좋아하는 ‘담백파’ 입맛이다. 파프리카 등 채소를 날로 먹는 것을 즐긴다. 요즘엔 날달걀, 홍시, 떡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소주를 가끔 마셨고, 주량은 1병이다. 후보가 된 뒤엔 못 마신다. 요리는 “밥과 반찬을 잘 꺼내 드시는” 수준이다. 부인 김정숙씨는 요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안철수 후보의 입맛은 ‘모범생’ 이미지와 전혀 맞지 않는다. 캠프 간부 여럿에게 들어봤더니, 가리지 않는 건 물론이고 먹는 속도가 빠르다. 누군가는 “흡입”이라는 단어를 썼다. 음식에 관한 한 실용주의자다. 지배계급의 사치 취향과 민중의 필요 취향을 구분한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기준을 그대로 따른다면, 상징자본(학벌과 지식)과 경제자본을 모두 갖춘 안 후보는 가장 민중적인 입맛을 가졌다. 캠프에서 가까운 식당에서 후루룩 설렁탕을 먹고 오는 식이다. ‘안랩’에서 근무했던 한 지인은 “(안 후보가) 밥때인데 샌드위치를 먹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단골 맛집도 없는 것 같다. 을 보면, 공부 탓에 종종 배달음식을 먹었다. 요리는 못 하는데 파스타 면은 잘 삶는다. 술은 안 마신 지 오래됐다.
취향 있음을 경멸하는 ‘꼰대’들이 싫어할 음식 취향을 가진 후보는 없는 셈이다. ‘재미없다’고 느끼는 ‘2030’들은 있을 것 같다. 상상해보라. 쌀쌀해지면 개성만두를 만들어 먹는 박근혜 후보, 참돔회에 어울리는 2만원대 소비뇽 블랑 화이트와인을 고르는 문재인 후보, 파스타 면을 삶는 걸 넘어 알리오올리오(스파게티)에 도전하는 안철수 후보의 모습은, 지금보다 조금은 더 재밌지 않겠느냐고요.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