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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나라당(현재의 새누리당) 대선 후보 자리를 두고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이 격돌하던 때의 일이다. 이명박 후보 캠프 사무실의 복도 한구석에서 젊은 기자가 연배가 한참 위인 캠프 관계자를 ‘조지고’ 있었다. “선배, 국면 드라이브를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해? 저쪽(박근혜 후보 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뻔하잖아?”
사안 자체는 생각이 안 난다. 서로 네거티브 검증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때였으니, 관련된 이야기로만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과 분위기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캠프에서 이미 핵심이었고, 나중에 청와대 수석비서관까지 지낸 그 관계자는 조카뻘 기자 앞에서 쩔쩔맸다. 미안해하는 수준을 넘어 송구스러워 죽겠다는 투였다. 그 기자는 당시 캠프에서 ‘친MB’ 성향 기자 모임으로 잘 알려진 이른바 ‘독수리 5형제’ 멤버였다.
‘독수리 5형제’ 기자들은 스스로를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 공신이라고 여긴다. 캠프의 고급 정보가 이들에게 집중되고, 후보까지 나서 직접 관리한다. 다섯 마리의 독수리들은 우호적인 기사로 화답할 뿐 아니라 주요 국면에서 정무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당시 캠프에서도 이명박 후보 부인이 만든 ‘김윤옥표 닭강정’을 직접 맛본 몇 안 되는 기자들로 통하기도 했다. 언론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친이와 친박으로 나눠 줄섰던(혹은 줄 세우던) 시절이었다. 회사 명칭에 ‘MB’가 들어가는 언론사의 한 기자는 사석에서 캠프 관계자들과 건배를 하며 “MB○은 MB로!”를 외쳤다.
역사는 반복된다. 2012년판 독수리들이 탄생했다고 한다. 실체? 물론 불분명하다. 어떤 이는 6개 언론사라고 하고, 다른 이는 7개 언론사라고도 했다. 6개사를 기준으로 하면 그 명칭은 무려 ‘6인회’다. 주위에 늘 ‘6인회’니 ‘7인회’니 하는 모임이 생겨나는 건 보수의 공통점일까? 7개사를 기준으로 이들을 ‘일곱난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단다. 과연. ‘공주님’을 받들고 모시겠다는 진정성이 물씬 느껴진다. 그러다 내부적으로 명칭을 정리했다고 한다. ‘원신혜’다. 그 의미를 처음 듣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기자의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부끄러움에 얼굴까지 벌게진다. 원신혜는 ‘원칙과 신뢰의 박근혜’라는 뜻이다. 박근혜 후보의 최측근 참모가 명칭의 아이디어를 냈다는 후문도 들린다.
사람은 달라졌어도, 2007년의 독수리들과 마찬가지로 2012년의 ‘원신혜’도 비상을 꿈꾼다. 최근 이 모임의 멤버인 한 기자의 결혼식에 박근혜 후보가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정보의 집중과 전략적 공조? 물론이다. 상대 후보를 공격한 각종 ‘검증 시리즈’가 이 언론사들에서 쏟아진 건 우연일까?
저널리즘 교과서는 권력과 언론의 바람직한 관계를 ‘건강한 긴장 관계’라고 가르친다. 물론 현실에선 모호한 기준이다. 정당이든 캠프든 정부 부처든 출입처를 두고 취재하며 취재원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중요하다. 기자도 사람이다. 취재원의 반복된 주장과 그 논리에 때로는 기울어지기도 한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함께 일해야 하는 취재원의 읍소에 마음이 약해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겪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유착에 가까운 행태다.
박근혜 후보의 아버지 이야기다. 그는 자신이 강탈한 장학회와 언론사에 물을 마실 때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의미로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휘호를 남겼다. 언론사 처지에선 알아서 처신하라는 협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현안에 대해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병 걸렸어요?”라고 응수하는 박근혜 후보다. 한 측근은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걸죽한 육두문자를 구사해 파문을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캠프에는 일부라고는 하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음수사원’하는 측근형·수족형 기자들이 포진하고 있다. 박근혜 시대의 언론. 대선 길목에서 반드시 짚어봐야 할 음울한 풍경화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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