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정치공학만 쓸 줄 아는 정치부 기자들을 ‘정계부 기자’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정치부 기자들을 각성시키는 말입니다. ‘정계 기사’를 지양하고 맛깔스런 ‘정치 이야기’ 칼럼을 연재합니다. 사람 이야기와 숨은 맥락 보여주기가 목표입니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 캠프를, 옆에서 ‘캠핑’하듯 주야장천 훔쳐볼 예정입니다._편집자
그분, 변했다. 나도 변했으니 타박하는 건 아니다. 머리숱이 더 많았고, 알코올 해독 능력이 약간 더 좋았으며, 아직 전세대출을 받기 전이라 술값을 마구 계산하던 2004년의 나는, 지금의 나와 꽤 다르다. 요컨대 나쁘게 변해온 거다. 물론 2004년 세리에A 득점왕이었다 올해 은퇴한 안드리 셰브첸코만큼은 아니지만.
2004년 3월1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국민이 2000년에 뽑은 국회의원 227명 중 193명이, 국민이 2002년에 뽑은 대통령에게 나가라고 한 거다. 그해 3월 아직 수습기자이던 나는 법원 출입 기자 선배들 틈에서 마지막 수습교육을 받고 있었다. 2000년의 국민과 2002년의 국민 중에 누가 진짜 국민일까. 그날 아침 신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이유를 따져 묻는 건 한국 저널리즘이 수습기자에게 가르치는 덕목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변호인단이 꾸려진 3월15일쯤으로 기억한다. 문재인 후보는 탄핵 직전까지 민정수석비서관이었다. 변호인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서울 서초동 법원 정문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데 전화가 울렸다. “문재인 수석 집 앞에 가서 대응책 물어봐.” 기자들이 ‘뻗치기’라고 부르는 임무다. “평창동의 조그만 연립주택에 세를 얻었다”고 문 후보가 썼던() 바로 그 집에 가야 했다.
밤 9시가 넘어 연립주택에 도착했다. 기자수첩을 꺼내 집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불이 켜져 있었다. 초인종을 눌러 확인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담배 한 대를 서둘러 피우며 머릿속으로 질문을 확인했다. 벨을 눌렀다. 인기척이 없었다. 5초 뒤 여자가 조심스레 누구냐고 물었다. “ 기잡니다. 문 수석님 들어오셨죠?”
다시 5초쯤 지나 여자가 답했다. “그런 사람 여기 안 살아요.” 잘못 들었나 싶었다. 보통 취재를 거부할 땐 “할 얘기 없어요”라고 말한다. “확인해드리기 어렵습니다”라는 ‘NCND’형 문장은 홍보실 근처에 가본 사람들이 구사하는 고급 문장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 안 살아요”라니? 재차 물었지만 같은 답이 돌아왔다.
선배 기자에게 보고했다. 주소는 틀림이 없었다. 가로등 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뽑아 막 입에 무는데 익숙한 얼굴이 다가왔다. 문 후보였다. 명함을 주며 준비한 질문을 던졌다. 문 후보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예의 그 큰 눈을 끔벅거리며 몇 개의 문장을 말했다. 8년 전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원칙’ ‘철저히’ ‘준비’ 등등의 예의 바르지만 어떤 팩트도 담겨 있지 않은 추상어를 구사했던 것 같다. 며칠 뒤 법조팀 선배 기자가 말했다. “문 수석이 ‘아내가 기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 당황해서 거짓말을 한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전해달래.”
8년 뒤 9월16일, 전 민정수석의 아내는 대통령 후보의 아내가 됐다. 당황해서 거짓말을 할 정도로 수줍음이 있던 김정숙씨는 “가치를 존중하는 것을 보면 강북 스타일인데, 변화를 즐기는 것을 보면 강남 스타일”(MBN 인터뷰 발언)과 같은 대구법 문장을 능숙하게 구사할 정도로 변했다. “경희대에 가게 된 건 오로지 아내를 만나기 위함”()이라고 말한 남편이 김정숙씨를 변하게 했을 것이다.
“정치는 야수의 탐욕과 싸우기 위해 짐승의 비천함을 겪으면서 성인의 고귀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유시민 전 장관은 정의했다. 김정숙씨의 남자는 야수, 짐승, 성인이 한 몸인 괴물의 세계에 발을 들여놨다. 문 후보가 8년 전에 비해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을지, 유권자들은 궁금해할 것 같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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