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스포츠실용차(SUV)만 고집하는 환경주의자나 ‘살색’이나 ‘국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한 톨의 의구심도 느끼지 못하는 진보주의자의 말이 신뢰도를 갖겠느냔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청와대는 자주 논쟁의 중심이었다. 그 논쟁을 ‘공간의 민주주의’라고 부르자. 서울 세종로 1번지는 대대로 권력을 가진 자의 공간이었다. 경복궁 터였고, 일제시대엔 총독부 건물이 있었다. 청와대 민주화 논쟁은 1960년부터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대통령 관저는 ‘경무대’로 불렸다. 4·19로 자유당 독재가 끝났다. 경무대는 경복궁의 ‘경’자와 궁의 북문인 신무문의 ‘무’자를 따온 것이다. 말자체는 나쁠 것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단어에서 저절로 자유당을 떠올렸다. 민주당 정권은 대통령 관저 이름을 공모했다. 1960년 12월30일치를 보면, 윤보선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청와대라는 명칭을 공표했다. 5·16 쿠데타 이후 1963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당선됐다.
명칭은 한국적이었지만, 청와대 건축에 ‘한민족 정신’ 같은 내용은 담겨 있지 않았다. 당시 지배 엘리트인 군인들은 건축미감에 젬병이었다. 작은 것은 무시됐다.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다닌 박정희 대통령이 먹고 자던 당시 대통령 관저는 일제시대 총독 관저로 사용됐던 건물이다. 소소해 보이는 형식도 내용과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사치로 취급됐다. 1968년 2월12일치와 2월26일치를 보면, 박 대통령과 집권여당인 공화당 간부들은 청와대에 마련된 사격실에서 사격 연습을 했다. 과연 군인 대통령 시절이었다.
권력은 공간을 통해 은밀히 작동한다. 노숙자를 추방해야 한다는 정치적 태도는 노숙자가 등을 대고 누울 수 없도록 중간에 팔걸이가 튀어나온 괴상한 벤치를 통해 구현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스트롱맨’이었다. 스트롱함이 눈으로 보여야 했다. 군사독재 시절 대표적인 공공기관 건물이 죄다 웅장하고 권위적인 이유다. 청와대 영빈관은 유신 말기인 1978년 준공됐다. 1978년 12월28일치를 보면, 영빈관 디자인은 “루이 14세 때의 건축양식과 한식을 절충”해 만들었다. 루이 14세는 절대권력이었다.
1970년대 공공기관 디자인이 대체로 그랬다. 권력자들은 권위적 미감을 사랑했다. 1975년 완공된 국회의사당 건물이 대표적이다. 김정수·김중업·안영배 같은 건축계 실력자들이 참여했는데도 이도 저도 아닌 건물이 돼버렸다. 유신 국회의 압력 때문이었다. 건축가들은 돔을 반대했다. 당시 국회 사람들이 거대한 르네상스형 돔을 만들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들은 거대한 권위를 눈으로 확인받고 싶어 했다. 돔의 크기까지 지시했다. 대통령 관저는 1990년 노태우 정부 때 신축됐다. 건축적으로 대단한 작품은 아니지만 어쨌든 한국식 기와 양식도 도입했다. 청와대는 공간의 민주화를 달성한 걸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12월12일 대통령 집무실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를 나와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 늘 소통하고 함께하겠다. 시민들의 이웃이 되겠다”고 이유를 밝혔다. 문 후보는 청와대 공간의 비민주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 비서실조차 대통령과 멀리 떨어져서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만나려 해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권위적인 곳이었다. 그 넓은 청와대 거의 대부분이 대통령을 위한 공간이고, 극히 적은 일부를 수백 명 대통령 비서실 직원들의 업무 공간으로 사용하는 이상한 곳이었다.” 경호 문제 등 실무적 의문들이 제기되지만 반론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므로 다시, 담론만큼 작은 것이 중요하다. 많이 공부한 사람들 중에 12월19일 대선에서 시대정신을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한자말 개념어가 싫은 사람들은 두 후보가 작은 것들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비교해도 좋을 것 같다. 12월19일은 작지만 의미 있는 것들이 바뀌는 날이기도 할 것이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참고 문헌 (신영훈 외 2명·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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