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진행된 민주주의의 노골적 후퇴, 공적 영역의 파렴치한 사유화에 뒤이어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진행되는 2012년이 도래했다.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았다’는 표현이 그저 재치가 아니라, 그동안 권력을 향유하던 사람들의 행동양식에 대한 가장 단순하고 명쾌한 설명이라는 것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도저히 공적 영역에서 활동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주었던 결과는 그렇지 않아도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한 공동체에 씻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고, 수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했다.
일부는 충족, 일부는 배신
이제 기세 좋게 ‘욕망의 정치’를 추진하며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사냥하던 그들의 좋았던 시절은 저물고 있다. 마치 권력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남용하던 사람들과 그들에 영합하던 기회주의자들에게는 혹독한 평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충분한 정의’를 목격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정의를 회복하고 공동체의 항로를 올바르게 수정하려는 우리의 열망은 일부는 충족되고 일부는 배신될 것이다. 그 충족과 배신의 정도는 정치권력이 과연 교체될 것인지, 교체된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모습으로 교체될 것인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국민에 의해 호명되어 공공의 영역으로 나선 개인들의 서명으로 수행된다.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겨울의 거리를 걷다 보면, 이른바 ‘얼짱 각도’의 커다랗고 관료적인 사진에 ‘희망’ ‘일꾼’과 같이 수없이 되풀이돼온 수식어가 더해진 ‘풍경의 침입자’들과 마주친다. ‘당선’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실용적으로 동원된 언어와 디자인은 주기적으로 반복돼왔음에도 현대인의 세련된 감각에 커다란 충격을 준다. 그 정치적 선전들의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은 전국 어디를 가나 돌연히 만나게 되는 ‘앗! 타이어 신발보다 싼 곳’이라는 어떤 광고판을 연상케 한다. ‘타이어를 팔아보겠다’ ‘표를 얻어보겠다’는 결연한 실용주의 앞에서 우리의 당혹스런 감각에 대해 불평해보았자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과연 우리를 잘 대표할 것인지’ ‘타이어가 정말 신발보다 싼지’는 못내 궁금하다.
두 개의 중심을 가진 타원 시쳇말로 ‘간지가 작렬’하는 군복무 당시의 사진으로 유명한 문재인 변호사의 책 에는 다른 사진도 있다. 1988년 국회의원에 출마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세 사진인데, ‘6월 항쟁의 야전사령관’이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겸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소 쑥스러울 수도 있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이 뜻밖이기는 하지만, 공과를 떠나서 적어도 그는 자신이 출사표를 던지며 내건 표어의 가치를 배반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이나 어떤 공직자를 지향하는 사람의 내면은 두 개의 중심을 가진 타원과 같다. 하나의 중심은 ‘소명’이고, 또 하나의 중심은 ‘욕망’이다. 사람들은 ‘소명’이라는 하나의 중심만을 가진 ‘원’과 같은 인물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런 인물은 대기권 내에 없다. 우리는 다만 ‘욕망’이라는 중심보다는 ‘소명’이라는 중심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을 기대할 수 있을 따름인데, 하나같이 ‘소명’만을 말하는 그들의 내면은 그들이 그려온 과거의 궤적을 통해 추측해볼 수 있을 뿐이다. 어차피 세월은 그들이 ‘명실상부한 공동체의 대표자’인지, ‘욕망의 화신’인지, ‘정치를 수익모델로 하는 투기꾼’인지, 아니면 ‘고소·고발 집착남’인지 밝혀낼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공동체가 그들의 ‘욕망’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를 생각하면, 거리를 채우기 시작한 몽타주와 구호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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