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소년이었던 이는 요즘 피곤합니다. 일단은 간 때문이죠. 약속이 있으면 술 마시고, 없으면 만들어서 마시고, 그것도 안 돼 좌절할라치면 술 마시자는 전화가 옵니다. 술도 일의 연장이라고 주장하는, 그래서 기자는 참 좋은 직업입니다. 얼마 전 청와대 근처에서 역시나 술을 마셨습니다. 1차에서 막걸리와 소폭(이른바 소맥)을 마시고 2차를 위해 걸어가는데 신문과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는, 등장한 횟수만큼 헛소리도 자주 하는 청와대 고위 인사가 한 음식점 앞에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서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까만 양복쟁이들도 여럿 서 있었죠. 술맛이 매우 떨어졌지만 한번 째려봐주고 지나쳤습니다. 20m 정도 지나쳤을까요. ‘안전하다’ 싶은 생각에 “이런 × 같은 정권~”이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압니다, 유치하다는 거. 우리끼리 깔깔거리는데 후배가 그럽디다. “기자가 기사로 말해야지 말이야.” 그래 안다니까, 유치하다는 거. 검사는 수사로 말하고,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기자는 기사로 말하고. 그런데 언제 수사가, 판결이, 기사가 만족스러운 적 있었나요.
한때 소년이었던 이는 그렇게 유치하게 놀다가 3차를 갔습니다. 디지털 뉴스를 담당하는 회사 선배와 ‘언론의 정도는 무엇인가’라는 꼰대스런 주제를 두고 한바탕 술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나꼼수’가 아무리 잘나가도 언론이 나꼼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한참 설레발을 쳤습니다. 뭐, 이런 싸움은 결론도 없이 핏대만 세우다가 누군가 집에 가자고 하면 끝나기 마련이죠. 이날도 그랬습니다. 서로 안녕 하고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 안은 무지 시끄러웠습니다. ‘이건 뭐야’라며 뜨악해하는데 스피커에서 ‘으허허허허허허허’ 김어준씨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옵니다. 택시 기사는 요즘 대세라는 ‘나는 꼼수다’를 스피커에 연결해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볼륨이 문제였습니다. 이건 들으려는 의도보다는 승객을 괴롭히려는 의도가 더 강해 보였습니다. “기사님, 소리 좀 줄여주세요.” 대꾸를 안 합니다. “저기요, 기사님. 소리 좀 줄여주세요.”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이건 뭐야. 싸우자는 거야’라는 생각에 전의를 가다듬는데 택시가 신호에 걸려 멈춰섭니다. 기사가 돌아보며 한마디 합니다. “명빠세요?” 이건 뭡니까. 소리 좀 줄여달라는데 갑자기 이명박 빠돌이가 되다니. 청와대 근처에서 택시 잡으면 다 명빠인가요. 다 이명박 때문인가요. 얼마 전 서울 종로 대로 한복판에서 좌회전 빠지는 길을 몰라 이리저리 헤매는 택시 기사와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 양반의 적반하장이 놀라웠습니다. “택시 운전한 지 한 달이거든요. 나 같은 사람한테 면허를 준 서울시를 욕하세요.” 이런 기사 다시는 안 만날 줄 알았는데 연타석 홈런을 맞았습니다.
“승객은 소리 줄여달라는 요구도 못합니까?” 그제야 기사는 정말 아주 조금, 아주 조금만 볼륨을 줄입디다. 싸우자는 거였지만, 참기로 했습니다. 대신 취재를 해보았습니다. “나꼼수 왜 들으세요?” “그럼 4대강 진실은 어디서 듣습니까?” “4대강 얘기는 다른 언론들에서 많이 썼잖아요?” “어디요? 조·중·동요?” 아, 이분의 뇌에는 ‘조·중·동+나꼼수’밖에 없던 건가요. 나꼼수는 듣기 힘들었지만 택시 기사는 그나마 길은 잘 찾아갑니다. 택시비를 내며 잔돈 몇백원은 그냥 됐다고 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정말로 그냥 갑니다. 그렇지요. 명빠는 감사하다는 소리 들을 자격이 없는 겁니다.
한때 소년이었던 이는, 기자는 기사로 말해야지 “이런 × 같은 정권”이라고 욕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언론의 정도와 나꼼수와 명빠를 너저분하게 늘어놓았지만, 한때 소년이었고 이제는 B급 기자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이는 이게 ‘질투’가 아닌지 의심합니다. 질투는 나의 힘인가요, 질투는 나의 흠인가요. 젠장.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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