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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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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하던 그 순간

등록 2010-12-03 10:39 수정 2020-05-03 04:26
포가 떨어졌다.

“한반도를 뛰어넘어 동북아시아 등 세계적 차원에서 국익을 지킬 군사력을 키우자”는 우리 군의 머리 위로 포가 떨어졌다. 연평도 앞바다의 해군은 ‘대양해군’이었다. 이지스함 등 첨단 함정 도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 하늘을 지키는 공군은 한술 더 떠 ‘우주공군’이었다. 공중급유기 등을 수입하려 했다. 연평도의 육군은 ‘미래육군’으로 우주와 대양을 아우르며 육·해·공군의 대표임을 자처해왔다. 이들이 가져다 쓰는 1년 예산은 30조원이었다. 이들은 한 방에 무너졌다. 포격 지점도 못 찾았고, 뭍에서 날아왔는데 보복한답시고 섬에 쐈다. 더한 건 말바꾸기다. 북 사격 지점을 두고 “무도” “개머리”로 우왕좌왕하다가 “두 곳에서 함께 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더니 한 군 관계자는 “솔직히 어디서 포탄이 날아왔는지 포격 당시에는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우리에겐 익숙한 태도다. 물기둥이 있느니 없느니, 열영상장비(TOD) 영상이 있느니 없느니, 여론은 그들의 말바꾸기에 지쳐갔다. 이런 군을 두고 군 통수권자는 “막대한 응징을 해야 한다” “북 미사일 기지도 경우에 따라 타격하라” 등의 지시를 내렸다. 말잔치와 무능은 뻔뻔함을 낳았다. 국방부 장관은 때아닌 ‘스타크래프트’ 운운하며 구설에 올랐다. “13분 만에 대응하는 건 잘 훈련받은 부대만 할 수 있다”며 “스타크래프트를 보면 바로 쏘게 된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는 바로 사격하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고 군을 두둔했다. 천안함 사건도 버텨낸 그의 사표는 즉각 수리됐다. 후임으로는 김관진 전 합참의장이 내정됐다.

국방부 제공

국방부 제공

 

포연이 피어올랐다.

그 속에서 국회는 ‘북한의 무력도발행위 규탄 결의안’을 가결했다. 두 사람의 반대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은 결코 우발적 도발이 아닌 무자비한 공격이었음에도 국회 결의안은 제목부터 이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한 사람은 송영선 미래희망연대 의원이었다. 머리가 희끗한 한 의원이 “잘했어”라고 칭찬했다. “정전협정 이래로 처음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이번 북한 정권의 군사적 도발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전제한 다음 “다만 한반도 평화를 어떻게 실현해야 할지도 이 결의안에 담겨야 한다”는 반대 목소리의 주인공은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었다. ‘빨갱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같은 반대의 다른 목소리, 다른 반응이 뒤섞였다.

 

포가 떨어진 곳은 연평도뿐만 아니다.

‘대포폰’도, ‘4대강’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포연이 사라진 곳에서 간데없다. 언론사를 사찰하고, 여당의 유력한 정치인들을 사찰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지만 해안포에 녹아내렸다. 연평도 포격 사건이 벌어진 당일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의 어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서울시청 앞 민주당 농성장을 찾아 “이럴 때냐”며 가열차게 항의했다. 사건이 발발한 지 1시간도 안 된 때였다. 4대강 반대의 목소리도 포성 앞에 움츠러들었다. 집회 개최를 준비하던 민주당은 고민에 빠졌다. 한-미 FTA가 퍼주기라는 비판도 사라졌다. 대신 조지워싱턴이라는 항공모함이 서해 앞바다로 올라온다는 소식이 들린다. 북쪽에서는 “2차, 3차로 응징하겠다”는 말이 다시 나왔다. 그리고 11월26일 연평도 건너 북한의 포진지에서는 또 포성이 들려왔다. 포탄은 북방한계선(NLL)을 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상황인 듯 다시 한번 바짝 움츠러들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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