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부글부글] 장군님은 쿨하시다

등록 2010-06-02 20:27 수정 2020-05-03 04:26
윤종성 과학수사 분과장(육군 준장)이 20일 오전 국방부에서 열린 민군합동조사단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에서 결정적 증거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종성 과학수사 분과장(육군 준장)이 20일 오전 국방부에서 열린 민군합동조사단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에서 결정적 증거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드럽게 달라붙어서 미안해, T, T, TOD’

이야기는 장군님의 “TOD(열상감시장비) 없다”로 시작된다. 한 병장 전역자의 “내가 백령도 해병대 병장 출신이다. 없을 수 없다”는 실존적 고백이 기사로 이어졌다. “이등병 때 병장은 처자고 나는 스틱 틱틱 돌려가며 녹화했거든?” 충정 어린 고백에 장군님은 “실은 있다”며 뜻을 꺾었다. 운율감 있게 “일부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어 “일부라는 것도 거짓말, 진짜라면 백령도 군인들 죄다 영창 가라”라는 극단적 언사가 튀어나왔다. 목숨 건 반발에 주춤한 장군님은 “더 있는 게 맞다”며 TOD를 조금 더 보여줬다. 아뿔싸, 편집본이었다. “편집본? 진짜 영창 갈래?” 후퇴는 습관이 되는가, 장군님은 “더 있다. 보고를 한 다음 버튼을 눌러 녹화했다. 진짜 이게 다다”라고 조금 더 리듬감 있게 물러났다. “자동 녹화라니까!”라는 무례한 지적질은 날개를 달았다. 결국 장군님은 “영상전송시스템 장비가 있었다. 이게 정말 다다”라며 끝을 맺었다. 그게 다인 줄 알았다. 5월의 어느 날, “본 사람 있다”는 폭로가 터졌다. 그런데…, 장군님이 “수동 녹화로 보여준 것이 전부”라고 답했다. 자동시스템 영상을 잠시 잊으신 듯했다. 그럼에도 없다에서 시작해 “있다, 있다, 있다, 있다”라고 네 번 점층 반복하신 장군님, 역시 쿨하다.

‘답변 없는 물기둥, 튀기는 건 물방울’

물기둥도 역시 “없다”였다. “폭발에도 없다”라고 깔끔하게 선언했다. 물기둥은 과학이라는 말이었다. 운율에 맞춰 말을 뒤집은 건 이번에도 장군님이다. “폭 30~40m, 100m 높이의 물기둥 섬광을 본 초병이 있다. 얼굴에 물방울을 튀긴 승조원도 있다.” 없다고 했던 물기둥이 생겼다. 말이 바뀌었지만 장군님은 이렇게 정리했다. “물기둥에 대해 굉장히 집념을 갖고 말하는 것은 좋다! 다만 내가 말한 정도로 이해를 하면 좋다!” 역시 장군님은 짱이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

기다렸다는 듯 김빠진 반전. 감춰뒀다며 그리 원성이 자자했던 KNTDS(한국형 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 자료가 일부 공개됐다. 자료대로라면 원래 폭발했다고 하는 곳에서 멀쩡하게 600m나 더 갔다는 모순에 빠졌다. 조사결과를 다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장군님에게 위기는 기회다. 장군님의 한마디로 올 킬. “틀렸다면 시정하겠다!” 더 캐묻는 의원에게 한마디 더, “집안 내력이신가!” 그래도 캐묻는 의원에게, “(군을) 믿지 않으시는 수밖에 없겠다!”

장군님의 말 속에서 논리를 찾으려는 못난 인간들, 결국 이렇게 불린다.

“천안함 발표를 못믿겠다니 대체 어느나라 국민인가”, “북한소행임이 명백한 증거를 외면하며 북한 편을 드는 집단을 우리는 반안보 세력으로 규정한다”, “음모론 유포자 가운데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나 남파 공작원과 접촉하는 배후가 있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이상 우리나라 대표신문들)

쿨하지 못한 건 미안한 게 아니다. 죄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