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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지자체장 소속 정당은 이번엔 후보 내지 말아야”

‘보수판 낙천·낙선운동’ 준비 중인 인명진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등록 2010-03-24 16:10 수정 2020-05-03 04:26
2007년 대선 전 한나라당 후보 검증위원으로 활동했던 인명진 목사는 “보수도 인권·통일 등에 관한 정책을 내놔야 한다. 현 정부 들어 갈등과 대립이 심해져 아쉽다”고 말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2007년 대선 전 한나라당 후보 검증위원으로 활동했던 인명진 목사는 “보수도 인권·통일 등에 관한 정책을 내놔야 한다. 현 정부 들어 갈등과 대립이 심해져 아쉽다”고 말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인명진 갈릴리교회 담임목사는 3월17일 아침부터 분주해 보였다. 오는 6월2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 목사 등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는 인사들이 새로운 시민운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해서 취재에 나섰는데, 전날 이귀남 법무부 장관의 사형 부활 시사 발언이 크게 보도되면서 교계의 대응 방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 목사는 “보수 정권도 인권에 대한 정책이 있어야 한다”며 “대통령이 기독교인인데 그런 정권에서 이런 일(사형)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냈고 2007년 대선 직전엔 한나라당 후보 검증위원으로 활동한 탓에 “현 정부가 실수를 덜하고 성공한 정부가 되기를 바라는데, 성과도 있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다”고 말했다. ‘보수판 낙천·낙선운동’이라고 불릴 만한, 공천개혁운동을 시작한 이유다.

-참여인사 대부분이 보수적이라는 평가받는 이들이다. 한나라당 의원이었거나 중책을 맡았던 이들도 있는데, 그렇다면 시민운동보다는 한나라당 공천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나도 해봤지만 정치인들 공천 때는 제정신이 아니다. 당헌·당규도, 공천 원칙도 소용없다. 막무가내로 공천한다. 그때 좌절감을 느꼈다. 당내에서는 절대 견제가 되지 않는다. 바깥에서 시민운동으로 해야 한다. 한나라당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정치가 선진화하려면 여야 모두 중요하다. 한나라당은 ‘철새 정치인’ 공천은 없다고 하고 며칠 뒤에 영입했다. 한나라당을 ‘성추행당’이라고 공격했던 민주당은 당선 가능성만 좇아 문제의 인사를 복당시키지 않았나. 여당이 잘하면 야당이 잘하지 않을 수 없고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상호보완적이다.

-보수 쪽은 과거 총선연대 등 낙천·낙선 운동에 비판적이지 않았나. 공천개혁운동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

=독자적으로 적격·부적격을 판단하면 법적 시비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각 당 공천심사위원회에 자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그쪽도 여론을 참작한다고 하지 않았나. 각 당의 심사를 도와주는 것이며 이런 운동이 당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 낙천·낙선운동은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적격·부적격을 가르는 것은 시민단체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공천된 다음에 좋은 후보와 나쁜 후보를 가르는 것은 늦다. 공명선거운동도 너무 늦다. 정치는 공천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공천 과정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해려 한다.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는가.

=우선 여야 각 당에 공천 심사 기준을 제시하면서 공천개혁을 촉구할 것이다. 비리 전력자와 철새 정치인을 공천하지 말 것, 돈 공천과 계파 안배식 공천을 하지 말 것 등이다. 여야 모두 말로는 여기까지 얘기한다. 우리는 한 가지를 더 제안한다. 현역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이 임기 중에 비리를 저질러 구속되거나 기소된 선거구에, 그 정당은 후보를 공천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얼마 전 한나라당에 제안한 내용과 비슷한데.

=한나라당은 2008년 대구 서구청장 보궐선거 등에 공천을 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우리 주장은 앞으로 재·보궐 선거에 후보를 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번 6월2일 지방선거에 공천하지 말라는 얘기다. 지난 4년 동안 구속되거나 기소된 시장과 구청장이 얼마나 많은가. 중앙정치는 비교적 깨끗해졌다. 지방은 먹이사슬 구조다. 지역 토착 세력들이 돈 벌면 명예도 갖고 싶어하지 않나. 돈 주고 벼슬을 산다. 그게 사업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사업의 일환으로 지방의원을 한다. 그러면 썩는다. 지방단체장들에게 인허가권이 많고 지방의회는 이해관계를 다루는 곳인데.

-이미 구속되거나 기소된 자치단체장이나 의원이 있는 선거구에 아예 공천을 하지 말라는 요구를 여야 정당들이 수용하겠나. 강제할 방법이 있나.

=한나라당이 안 받아들일 것 같다. (웃음) 최소한 임기 중에 문제가 생기면 재보선에 공천하지 않는다는 약속은 지켜야 한다. 또 부적격 공천 신청자 제보센터를 운용할 계획이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제보내용에 사실도 있을 테고, 음해와 음모도 있을 거다. 우리는 조사권이 없으니 각 당 공천심사위원회에 심사 자료로 제공할 거다. 명백하게 드러나는 문제에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언론을 통해 알려야 하지 않겠나. 정당들이 무척 곤혹스러울 거다. 양심 있는 정당이라면 최소한 부담을 느끼길 기대한다. 그 다음 단계로는, 확실하게 부적격한 사람을 공천할 경우 계속 문제제기를 할 거다. 공천 과정에서 사사건건 시시비비를 가리겠다. 그래야 정치가 변한다.

-각 정당에 고루 얘기한다지만 아무래도 보수 정당을 표방하는 한나라당에 더 애정이 있는 것 아닌가.

=한나라당이 비리 공천, 계파 공천 부작용으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지면, 국민이 한나라당을 버린다. 이명박 정권의 레임덕이 시작되고 정권 재창출도 물 건너간다. 민심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한나라당은 우리 얘기를 잘 들어야 한다. 우리는 권력 욕심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연세 많은 원로들이다. 아무래도 이 운동은 한나라당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겠나. 한나라당이 문제가 더 심각하니까. 철새가 민주당 가겠나. 힘있는 여당에 더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인 목사는 인터뷰 내내 “정치 개혁을 이루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선진화도, 사회 통합도, 통일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윤여준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이명현 서울대 명예교수 등과 1년여 전부터 ‘국민비전2020’(가칭)이란 모임을 준비해왔고, 여기에 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 손봉호 전 동덕여대 총장, 신영무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임현진 서울대 교수, 전창렬 변호사, 정련 스님(동국대 이사장), 정성헌 한국 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등이 합류해 ‘올바른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한 시민사회 모임’(이하 시민사회 모임)을 만들었다. 이번 공천개혁운동은 본격적인 정치시민운동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인 셈이다. 시민사회 모임은 3월24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천개혁운동을 알리고 취지에 동의하는 이들을 모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시민사회 모임에는 어떤 이들이 주로 참여했나.

=이 정부에 비판적이면서 벼슬하지 않는 사람들, 보수라 불리는 사람들이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다. 새로운 보수 세력이 정치 선진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비전을 제시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정부 가까이에 있는 사람 중에도 좋은 분이 많긴 한데, (그런 사람들이 참여하면) 정부가 만든 시민단체가 아니냐고 오해하지 않겠나.

-보수 정권으로 분류되는 현 정부가 기대만큼 하지 못한다는 공감대가 있나.

=과거 진보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으로 폄하하는 사람도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인권·통일 분야에서 엄청난 진전이 있었다. 과거 정권의 성격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며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도 잘하는 부분이 많다. 경제 분야에서 ‘하면 된다’는 희망을 심어줬고, 외교 분야에서 국가적 위상을 높인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이념적으로 ‘좌파 반대’만 주장하는 집단으로 인식되면서 대결과 갈등이 심화됐다. 미래를 내다보고 합리적으로 우리나라를 업그레이드해야 하는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

과거 정권과의 차별화가 정책은 아니지 않은가. 보수도 인권 정책이 있어야 하는데 과거 정권이 사형을 안 했으니 이젠 해야겠다고? 보수의 대북정책은 뭔가. 퍼주기 안 하고 가만있는 것을 정책으로 볼 수 있나. 3불 정책(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대학본고사 금지)을 허무는 게 교육 정책인가. 그런 건 아니지 않나.

-장로님(이명박 대통령은 소망교회 장로다)이 목사님 말씀을 경청해야할 것 같다.

=교회에서나 목사가 필요하지, 정치하는 데 목사가 필요한가.

-새로운 보수, 합리적 보수를 강조하는데 뉴라이트운동도 그런 것을 표방하고 시작하지 않았나. 합리적 보수의 정치개혁운동은 뉴라이트운동과는 어떤 차별성이 있나.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뉴라이트 쪽에 참여해서 일했던 사람은 이쪽에 없다. 뉴라이트는 특정 시대에 역할이 있었고 성공했다고 본다.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생성 배경이나 활동을 보면, 정책적이기보다는 보수로서 정치적·이념적 성향이 두드러졌다. 보수적 가치에 기반한 정책 중심의 운동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그래야 합리적 진보도 제자리를 잡고, 공존하고 협력하고 정책적으로 경쟁할 수 있다. 좌파나 우파 모두 이념만 앞세우거나 교조적·감성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비전 2020’이란 이름은, 2020년까지 보수 정권이 집권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하하. 그렇게도 읽히나. 그냥 미래를 의미한다. 보수 정책 10년을 하다 보면 문제가 생기고 쏠림이 있을 거다. 진보 정책 10년도 마찬가지고. 그럼 성격이 다른 정권이 집권해 쏠림을 조정하고 그래야지. 집권 세력이 왔다갔다 해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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