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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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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눈물 닦아주는 생활 진보가 미래”



민주당 전당대회 예비경선 2위로 돌풍 일으킨 이인영 후보,

생활에 와닿는 진보와 민주진보대통합정당을 강력하게 주장하다
등록 2010-09-30 14:40 수정 2020-05-03 04:26
이인영 민주당 최고의원. 조직력을 갖춘 `빅3‘에 비하면 단기필마에 불과한 그가 전당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 것은 그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사진=박승화 기자

이인영 민주당 최고의원. 조직력을 갖춘 `빅3‘에 비하면 단기필마에 불과한 그가 전당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 것은 그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사진=박승화 기자

정치인 일반을 싸잡아 비난하는 농담 가운데 “입만 열면 남 욕 아니면 제 자랑”이라는 말이 있다. 10월3일 민주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 출마한 이인영 후보는 적어도 그 방면에서는 젬병이다. 이 후보는 중앙위원 350여 명을 선거인으로 한 예비경선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2위를 했음에도 본선에서 “중·하위권이라도 당선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정치인 이인영의 강점을 얘기해보라고 좌판을 깔아줘도 그만큼의 약점을 털어놓는다. 전당대회를 열흘가량 앞두고 9월24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가 목청을 높인 유일한 대목은 민주당의 혁신과 민주진보대통합정당이었다.

-전국 단위 선거는 처음이다. 대의원과 당원들을 많이 만날 텐데 무엇을 느꼈나.

변화에 대한 욕구와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민주당의 기존 체제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터져나올 것 같다. 마치 학부모들이 학원을 보낼까 말까 하는 심정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속으로는 성적 중심의 교육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학원에 보내는 것처럼, 현존 체제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함께해온 관성에 젖어 있는 듯한 분위기다. 변화의 계기나 환경이 변수다.

-9월7일 출마선언을 하면서 “하청정치를 끝내겠다”고 말했다. 예비경선에서 2등을 했는데 예상했나. 혹시 목표가 바뀌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변화와 혁신에 대한 요구가 터져나오면 본선에서 1등도 가능할 텐데. 그런 변화를 주목하는 지점에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늘 보던 사람, 어느 정도 검증된 사람보다는 새로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읽혔다. 사실 2년 이상 나서지도 않았고 드러내놓고 활동하지 않았다. 지역구에 묻혀 시민들 속에서 살았다. 인지도도 떨어졌을 텐데 그럼에도 중앙위원들은 기억하고 있다가 비교적 진보개혁 노선의 일관성이 있는 사람으로, 그 노선의 정통성을 한 자락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기억해줬다. 그동안 당권파에 속한 적도 없고 계파로부터 자유로워 보이고…. 표로 1등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가치의 측면에서는 1등이 될 것 같다. 진보의 가치, 진보민주대통합 등 내가 주장해왔던 내용을 다른 후보들도 말하기 시작했다.

-이 후보는 이른파 GT(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영문 알파벳 표기)계로 분류되지 않나. 김근태 고문이 의장으로 있던 시절 당직을 맡을 기회가 있었을 텐데.

당직 제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숨은 실력자 행세를 하려 했던 것도 아니다. 낮은 데, 뒤에 있어야 가치와 원칙, 대의명분에 더 충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직이 핑계와 빌미가 되어 우리 세대가 지킬 가치로부터 이탈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변명을 좀 하자. 김근태 전 의장은 계파의 보스였던 적이 없다. 계파라는 게 돈·권력·지위·지연·학연으로 유지되는데 그런 점과 아무 상관이 없다. 김 전 의장과는 전민련 시절 2년 정도 민주화운동을 같이 했다. 정치권에 들어와서는 가치와 노선이 같았다. 정세 판단에서 시기의 완급 차이는 있었지만 방향이 달랐던 적은 없다. 때로는 내가 앞서나가거나 독자적으로 판단한 적도 있다. 많은 사람들 눈에 그렇게 비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계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 전 의장의 불출마로 이 후보의 정치적 선택이 넓어진 것 아닌가. ‘우리 세대’라는 표현은 민주당의 이른바 486 정치인들을 의미하나.

그런 측면이 일정 부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젊은 세대가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단일화를 위해 노력하고 약속했던 것도 돈·권력·지위와 별개로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통합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동안 전당대회를 하면 서로 다른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뛰거나 중요한 이슈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젊은 세대에 대한 비판과 비난의 핵심은 그것 아닌가. 초심을 잃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런 점을 극복하고 공동의 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근태 전 의장과의 관계도 초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통합해 공동 과제를 설정하고 공동 실천하고 공동 행동하는 것을 진심으로 박수 쳐주실 것이다. 그래야 노선이 되고, 계파가 아닌 정치의견그룹이 된다. 정치가 선진화된다.

-본선에 진출한 거의 모든 후보가 진보를, 민주진보 세력의 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말로는 차별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좋은 일이다. 젊고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진보 세대의 가치가 중심이 되는 것 아닌가. 다른 선배들이 당의 현재라면 우리는 조만간 당의 미래가 된다. 민주당의 미래는 우리 같은 진보 세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내세운 가치를 여러 사람이 공유한다면 좋은 일이다. 차별성은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콘텐츠가 많다. 더 많은 콘텐츠로 확장하고 깊게 뿌리내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2012년의 시대정신이 진보라고 보는가. 이인영의 진보는 다른 후보들의 진보와 무엇이 다른가.

생활의 진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진보가 있을 수 있다. 이념의 진보, 역사의 진보도 있다. 사람들은 이념의 진보, 역사의 진보는 멀게 느끼거나 자신과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생활의 진보는 다르다. 직접 관련이 있고 가깝게, 구체적으로 느낀다. 우리의 진보는 어디에 있어야 하나. 생활 진보다. 생활의 진보가 일상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10년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양극화·격차 사회로 바뀌었다. 최근 금융위기로 또 한 번 출렁였다. 지난 10년 동안 개인과 가정, 자신이 속한 작은 집단으로는 그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커다란 공동체, 즉 국가와 사회, 지방자치단체가 나와 가정, 집단의 짐을 함께 나눠져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친환경 무상급식 공약이 휩쓸고, 4대강 예산을 교육과 복지, 일자리 창출에 쓰라는 요구가 선거를 통해 표출된 것 아닌가. 사회·정치적 의제, 복지 담론이 대중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것이다.

지난 추석 물난리 때 이 후보는 예정된 선거운동 일정을 접고 상습 침수구역인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구로로 달려갔다. 지난 2년 시민들 속에 섞여 살면서 ‘하방’에 주력했다는 그의 생활 진보는 나름대로 구체적이었다.

-생활 진보는 복지를 늘리자는 것인가. 이 후보가 민주당 지도부의 일원이 된다고 해서 당의 색깔 전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이제 추상적 이념과 편견의 진보는 뛰어넘자는 얘기다. 복지는 많을수록 좋다. 그게 역사의 진보이고 사회의 진보다. 진보의 개념은 돈, 자본, 시장으로부터 사람, 노동, 공동체의 가치로 이동해 균형을 잡자는 것 아닌가.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과 정확히 조응한다. 진보적 가치로 우리 사회의 병폐를 치유하자, 진보의 가치가 해법이라는 얘기다. 예전에는 학생운동을 하던 나의 시각과 노동자의 입장이, 화이트칼라와 농사짓는 나의 아버지의 생각이 다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거의 맞아떨어진다. 40대 가장과 30~40대 주부와 60대 노인과 서너 살 아이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봐도 마찬가지다.

-각계각층의 이해와 요구가 복지로 수렴되고 있다는 말인가.

엄마·아빠가 분양받은 집의 빚을 갚기 위해 맞벌이를 하느라 서너 살 아이들이 괜찮은 보육시설에 가지 못하고 방치된다. 학교에 가서 상처받지 않고 친환경 무상급식을 받으면 좋다. 30~40대 주부들은 비정규직인 남편이 같은 사업장에서 차별받는 현실이 바뀌기를 바란다. 시댁 부모님께 용돈을 더 드리고 싶은데 아이들 보육비 걱정에 못한다. 치매에 걸린 친정 부모님께 가보지 못해 속상해 운다. 환경을 파괴하는 4대강 예산을, 꼭 필요하지 않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교육이나 복지 분야에 쓰고, 일자리를 만들어내 근심과 걱정을 덜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진보는 공허하다. 그런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진보는 이제 설 땅이 없다. 그게 이번 지방선거에서 표로 드러난 것 아닌가. 단지 이명박 대통령이 싫어서, 미워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진보는 위험하고 불편하고 과격하고 경직되고 독하고 피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행복하고 편안하고 유연하고 창의적이고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돼야 한다. 생활 진보는 구호나 깃발이 아니라 구체성의 문제다.

-시대정신과 이를 담은 의제, 담론만으로 집권할 수는 없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고, 그것을 실현할 사람이, 밀고 나갈 정치적 결사체가 있어야 한다. 이 후보가 주장하는 민주진보대통합정당은 실현 가능한가.

2012년은 6·2(지방선거) 승리의 길로 가야지, 7·28(재·보궐선거) 패배의 길로 가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고 다닌다. 지방선거에서 인천·강원·충남·경남·고양시 등 민주당과 진보 정당이 연합공천을 하거나 후보 단일화를 위해 노력한 곳은 모두 결과가 좋았다. 연합공천이나 후보 단일화는 되는데 왜 대통합정당은 못하는가. 나는 민주진보 세력의 통합을 위해 나섰다. 어떻게 연합 공천을 하면 공정할까. 별로 방법이 없다. 지방선거에서는 지역위원장(옛 지구당위원장)이 예닐곱 후보 자리 중 하나를 양보하면 가능했다. 하지만 총선은 자기 문제이고 전부가 걸린 문제다. 연합공천이 대통합정당보다 더 힘들 것이다. 진보 정치와 진보 정당을 위해서도 하나의 당으로 만드는 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경기와 서울의 예를 보면 민주당과 진보 정당의 통합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거의 없어 보인다. 민주당을 제외한 진보대통합 논의 흐름도 있다.

비판은 정당하게 수용해야 한다. 나도 내부에서 많은 문제제기를 해왔다. 우리가 먼저 혁신하겠다. 시대정신에 맞게 민주당이 변화와 혁신을 하고 생활 진보를 실천한다면 진보 정당과 방향이 같을 것이다. 속도의 차이, 몇% 숫자의 차이를 놓고 차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정치 세력은 분립돼 있지만 국민 대중은 분립돼 있지 않다. 대중의 요구는 하나가 되라는 것으로 분명하다.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민주진보대통합정당이 가장 강력하고 간명하다. 민주당이 변했는데도 진보 정당이 과거에 묶여 미래를 포기한다면 국민이 그들을 종파 집단으로 여길 수도 있다.

-정치인 이인영에게 민주당을 혁신하고 걸림돌이 많은 야권의 통합을 이뤄낼 역량이 있는가.

나 혼자가 아니다. 우리 세대, 젊은 세대, 진보 세대가 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몇 사람이 모이는 게 아니라 동시대를 산 사람들이 같이 했으면 한다. 민주당의 미래는 진보 세대가 책임진다. 시민사회의 미래도 그렇다. 어디에 있건 민주화와 사회의 진보를 이루려는 공동의 협력, 연대, 공동 행동을 통해 더 좋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나 개인은 강점이 별로 많지 않은 사람이다. 길이 아닌 길은 웬만하면 가지 않으려고 버텨왔다. 진보개혁의 일관성을 지켜려고 했던 편이다. 민주당에서 시민사회와 진보 정당 쪽 인사들을 만나 모든 것을 털어놓고 소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런 절박성 때문에 출마를 결심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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