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겨레21 김정효
정치권은 늘 ‘신상’을 갈망한다. 대중이라는 까다로운 정치 소비자가 익숙한 얼굴보다는 신선함에 호기심을 갖고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정치인들도 유통기한이 있다”며 “대선주자급으로 일정 기간 이상 대중의 관심에 노출됐던 정치인은 꼭짓점을 찍고 내려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큰 선거를 앞둔 주요 정당들은 늘 ‘장외’에서 스타급 인물을 찾는다. 유력한 대선주자, 대표상품이 없을 때는 더욱 그렇다. 2002년 정몽준, 2007년 문국현도 당시엔 신상품이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정치권에서 주목받는 ‘장외 우량주’ 가운데 하나다. 학력과 직업이 좋고, 말발이 서고, ‘탈’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냈다. 오연호 대표기자가 묻고 조 교수가 답하는 방식이다. 세상을 향해, 정치를 향해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위기감, 절박감이 동인이란다. 10월27일 오후 그의 연구실에서 진보 진영이 어떻게 집권할 수 있는지, 왜 구체적인 권력과 집권의 문제를 주장하고 나섰는지 들어봤다.
=그동안 스스로 진보개혁 진영에 속한 점을 숨긴 적은 없다. 골방에 있다가 갑자기 광장으로 뛰어나온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진보의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얘기해왔는데, 이제는 구체적으로 권력의 문제, 집권의 문제를 언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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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2012년에 잃고 2017년에 또 잃으면 수구보수 정권이 15년 동안 집권하게 된다. 15년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사회운영 원리, 법과 제도가 바뀔 뿐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까지 바뀐다. 위기감을 느꼈다. 원래 우리 사회의 우경화가 심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모든 것이 난폭하게 우경화됐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등 정치적 기본권이 후퇴했다. 부자들의 세금은 줄고 중산층 이하 약자와 미래 세대의 부담은 늘고 있다. 반노동·반복지 정책을 펴고 있다. 이런 흐름을 끊어야 한다. 진보개혁 진영이 집권해야 한다. 왼쪽으로 가야 한다. 그러자면 깨놓고 얘기하는 게 맞지 않겠나 싶었다.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비난을 한다면 감수하겠다. 그런데 정치공동체에 사는 사람으로서 정치적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보개혁 진영의 집권 전략을 말하고 특정인과 특정 정당에 투표하자고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간·중도가 좋다고 얘기한다. 대중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식자층, 특히 사회과학을 하는 지식인들이 가치중립을 얘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가치를 지향하는 학문을 하는 지식인이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적 가치, 법학의 가치, 정의의 가치가 실현되지 않고 있다면 학자로서 그것이 이뤄지는 정치공동체·사회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는 능동적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결국 핵심은 민생·민주의 문제, 사회·경제적 민주화, 복지다. 친환경 무상급식이 좋은 예다. 생애 주기로 보면 보육과 교육, 취업, 직장, 노후, 그리고 주택과 의료 문제 등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에게) 사회·경제적 민주화 모델, 복지국가 모델의 맛을 보여줘야 했는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해결을 못했다. 그래서 정권을 잃었다. 이런 과제를 중심으로 진보개혁 진영이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 ‘좌클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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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져 있는 진보개혁 진영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뜻이 맞는 사람들은 연대해야 한다. 다 합쳐도 아슬아슬하게 이긴다. 연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정당이 정권을 노리지 않는다면, 시민사회단체나 가치집단, 도덕집단으로 남겠다면 연합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상층부의 정치 연합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이 과정에 시민사회단체와 대중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상당수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은 정치사회로 들어가야 한다. 대중도 자신의 지역과 직역에서, 정당에 직접 가입하거나 정치시민운동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해야 한다. 나를 포함해 모두가 정치 영역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자고 호소하는 것이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노벨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미국 민주당의 집권 전략을 담은 라는 책을 썼다. 그렇다고 해서 크루그먼 교수가 정치인이 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분들도 단박에 그렇게 하자고,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먼저 2011년에 소통합을 먼저 하면 어떨까. 방식은 두 가지다. 정책적 차이가 크지 않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그리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이념과 노선에 따라 먼저 합치거나, 아니면 제1야당인 민주당을 제외하고 나머지 정당이 소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네다섯이 후보 단일화를 하는 것보다는 둘이 하는 것이 수월하지 않겠나. 난 진보가 국회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정도로 세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유주의 세력을 왼쪽으로 끌어올 수 있다. 그런데 그러려면 통합과 연대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서울 관악구에 이정희, 노원구에 노회찬, 경기 고양시에 심상정이 있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여기에 후보를 낼 것인가. 구로구에 민주당의 이인영이 있다. 진보 정당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시민사회단체의 정치 개입이나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의 정치권 진출 부분은 논란을 부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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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전문성을 갖춘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들에게 적극적으로 정치를 권하고 있다.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정치를 하는 게 나쁜 것이 아니다. 국제적인 흐름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만 해도 시민운동가 출신이다. 이명박 정부에 뉴라이트단체나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가 많다. 난 비난하지 않는다. 정당과 외곽 단체가 정치공동체 내에서 어느 순간 결합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보수에게는 자연스러운데 진보개혁 진영에는 도덕적 결벽증 같은 게 있다. NGO 출신이 정치권에 가면 더럽혀지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NGO 활동을 보면 여러 문제에 개입하고 몸으로 현장을 뛴다. 구체적인 활동 내용이나 활동가들의 삶의 양식이 정치인에 가깝다. 환경단체의 환경문제 전문가가, 여성단체의 여성문제 전문가가 정치를 하고 정당을 만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특히 이제는 특정 정당에 개별적으로 수혈되는 방식보다는 세를 이뤄 대등한 파트너로 갈 시기가 왔다고 본다. 개인이 아닌 세력을 이루면 소통합이든 대통합이든 기존 정당들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참여연대나 환경연합, 여성단체연합 등은 이미 준정당적 역할을 해왔다. 이제는 선거참여운동이나 낙선운동의 수준을 뛰어넘을 때가 됐다.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지낸 김기식이나 남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처럼 시민단체에서 잔뼈가 굵은,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이들은 변신할 때가 됐다고 본다. 언제까지 처장 하고 대표 할 거냐. 그런 것은 새 세대 활동가들에게 넘겨주고 정치 영역으로 들어가라고 까놓고 얘기한다. 각 지역에도 뿌리를 내린 훌륭한 활동가들이 많다. 정치판 전체가 뭔가 왁자지껄하고 역동적이고 살아 있는 느낌을 줘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좀 약하다. 전선이라는 것을 가정하면, 모두가 정치를 향해 한 걸음씩 더 내딛자는 것이다.
» <진보집권플랜>
=나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 진보집권전략을 제안하면서 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되고 싶다. 갈라진 진보개혁 진영을 다시 붙이는 접착제 역할을 하고 싶다. 하지만 실제 선거에 출마하는 문제는 한 걸음이 아니라 서너 걸음이 된다. 거기에 더 적합한 인재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그런 모습의 나를 상상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무브온 같은 정치시민운동이 필요하고, 그런 일을 하고 싶다. 시민사회운동의 정치세력화를 통한 정치판 전체의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도울 뜻이 있다.
-최근 들어 ‘장외 우량주’로 자주 거론된다. 정치 입문을 제안받은 적도 여러 번 있지 않았나.
=제안을 받은 적도 있고, 시민사회 쪽에서 비슷한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상품성이 있다’고 얘기하는데, 정당 내부와 정치판 전체가 얼마나 복잡한가. 굳이 표현하자면 자신이나 진영의 이해를 위해 드잡이를 하고 싸워야 하는데, 난 그런 일에 익숙지 않고 잘 알지 못한다. 정치를 위한 심신의 ‘결기’와 ‘근육’이 취약하다. 선배나 친구 정치인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그런 삶의 양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다.
=술자리에서 짜증나는 ‘MB 씹기’는 그만하고, 진보개혁 진영이 집권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자는 것이다. 대통령 자리만 보지 말고, 진보개혁 진영이 집권할 경우 어떻게 내각을 구성할 것인가, 그 자리에 적절한 사람을 맞춰보는 긍정적인 오락을 해보자는 제안이다. 직접 해보니 재미도 있고 정치 교육의 효과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통령 하고 싶은 분을 다른 자리에 놓으면 실례일 테니, 거리가 먼 사람 한 명을 예로 들면 이런 식이다. 내 후배 조광희 변호사는 영화사 ‘봄’ 대표다. 문화와 영화를 잘 알면서 법률 지식도 있으니 문화부 장관이나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후보 자리에 올릴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대통령과 총리 자리만 비워두고 나머지, 국방·통일·외교·노동·환경·여성·복지부 장관 자리의 적임자를 찾아보자는 놀이다.
=책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오연호 기자와 대담하면서 누가 이 자리에 가면 좋겠다는 얘기를 꽤 구체적으로 한 적 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가 2천 개 정도 된다. 통합과 연합정치를 하려면 필연적으로 자리를 나눠야 한다. 나눠먹기가 나쁜 게 아니다. 어느 나라나 ‘섀도 캐비닛’(예비 내각)이 있다. 미국은 2만 개 명단을 가지고 백악관에 들어간다. 심지어 정치자금을 많이 낸 후원자에게 외교적으로 덜 중요한 나라의 대사 자리를 주기도 한다. 후보나 당선자, 정치인들이 밀실에서 행사하는 공무담임권을 대중에게 풀어보는 거다. ‘집단지성’을 통해 검증된 사람이 발굴될 수도 있을 거다. 그 사람들이 정치를 할지, 실제 권한이 있는 사람의 선택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언론과 네티즌이 공동 작업을 하면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지 않겠나.
=하하. 나는 청문회를 통과 못한다.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은 적이 있고… 이 대목은 오프더레코드를 요청해야 하나? 위장전입을 한 적도 있다. 내가 제사를 모시는데 집안 어른들이 내 명의로 선산을 구입하면서 실제 거주하지 않았던 친척집으로 주소를 옮긴 적이 있다고 들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워크홀릭이라고 한다. 스스로 분석해보면 내가 가진 생각을 바깥으로 퍼뜨리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것 같다. 조지 오웰의 에 비슷한 표현이 나오더라. 한편으론 일종의 부채 의식이다. 1987년에 죽은 박종철이 부산 혜광고 후배다. 이라는 책을 그 후배에게 바쳤다. 그 친구가 날 보고 있으면 뭐라고 할까 종종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아온 사람이다. 그 값을 제대로 하려고 늘 애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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