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둘렀으나 피해가지 않았다. “그저 낮은 일꾼일 뿐”이라며 몸을 낮추면서도 ‘큰 정치’에 대한 욕망을 감추지도 않았다. 4·27 재보선 뒤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손학규(대권)-이인영(당권) 역할분담론’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였다. 답변 대신 독일의 좌파 정치인 이름이 튀어나왔다. 오스카어 라퐁텐. 1990년대 후반 집권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새로운 중도’를 내걸고 당의 외연 확대에 나섰을 때, 당수로서 중심을 잡고 사민당의 우경화를 막아낸 인물이다. ‘민주당의 라퐁텐’이 되고 싶단 뜻일까.
민주당을 과거의 중도노선으로 회귀시키려 한다면 “싸우겠다”고도 했다. “상대가 손학규가 아니라 그 누가 됐든.” 그는 4·27 재보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연대연합특위 위원장을 맡아 야권 후보의 조기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그가 주도한 ‘순천 무공천’에 대해선 당내 반발이 거셌다. 김해을 협상 과정에선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 날선 공방을 벌이며 적잖은 상처도 받았다. 힘들었다고 했다. 4·27 재보선 야권 승리의 주역으로 꼽히는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을 5월4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야권 연대 ‘감동률의 경향적 저하’ 나타나”- 4·27 분당을 보궐선거의 승리 요인으로 ‘넥타이부대의 귀환’을 꼽았다. 성급한 분석이 아닌가.
= 과학적 분석이라기보다 인상비평에 가깝다. 하지만 나는 1987년의 주역이던 그들의 양식을 믿는다. 물론 집값 폭등과 사교육 열풍에 누구보다 책임이 큰 세대가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가슴 한켠엔 여전히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역사에 대한 부채감이 남아 있다. 중요한 건 중간계급에 편입됐다고는 하나, 그들의 경제적 고통 역시 서민층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이다. 분당을 선거는 집값 폭락과 전셋값 폭등, 물가고 등에 따른 정치적 불만이 그들의 잠자던 정의감을 일깨운 결과라고 본다.
- 손 대표가 분당 선거에서 앞세운 코드는 ‘중산층’과 ‘미래’였다. 지역 특성을 고려한 판단이었겠지만, 우경화의 조짐으로 여기는 시각도 있다.
=신자유주의 경쟁 원리가 지배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서민과 중산층은 다 같이 힘들고 다 같이 고통받는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처지가 다르지 않고, 정규직 역시 항상적인 구조조정과 조기퇴직 위협에 내몰리고 있다. 진보적 정권 교체는 복지동맹, 평화동맹을 통해 서민과 중산층을 하나로 묶어낼 때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나는 손 대표의 전략을 서민과 중산층, 진보와 중도를 하나로 묶는 범진보 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싶다. 설령 누군가 민주당을 중도로 회귀시키려 한다 해도 그게 통할 상황이 아니다. 지난해 지방선거와 전당대회를 거치며 민주당은 확고한 진보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당의 진보적 변화는 몇몇 지도자가 아닌 국민이 밀고 가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다.
-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 날을 세웠던 당신이, 선거가 끝난 뒤엔 오히려 그를 감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유 대표와 거칠게 각을 세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싸움이 아니라, 진실을 둘러싼 싸움이었다. 유 대표가 ‘민주당이 순천을 양보한 건 별게 아니’라고 했을 때, 속된 말로 화딱지가 났다.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일화 룰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이 유리한 룰만 고집했다는 유 대표의 말도 거짓이다. 거친 공방을 주고받으며, 이른바 ‘유빠들’의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정치인 유시민이 잘 성장하길 바란다. 누가 뭐래도 그는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 중 한 명이다. 그가 죽어서 득을 볼 사람은 야권에 없다.
- 김해을 선거 결과에 대한 유 대표의 평가를 두고도 말이 많다. 민주당은 분당과 강원도에서 51%를 얻어 승리했지만 자신들은 49%를 얻어 패배했는데, 참여당에 부족한 것은 바로 이 2%라는 얘기였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는 한나라당과 5~10%의 격차로 이겼다. 지금은 단일화의 완성도가 높은데도 그 격차가 좁혀졌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일화의 효과가 사실상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얘기다. 김해을에선 승리를 지나치게 낙관해 캠프도 지지자도 긴장이 느슨해진 게 패배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
“난 아직 지도자의 반열에 근접하지 못했다.
그저 낮은 일꾼일 뿐이다.
다만 당의 노선 문제와 관련해서라면 조역에 머무를 생각이 없다.”
- 민주당이 제대로 돕지 않은 건 아닌가.
= 김해을에 민주당원이 2000명 정도다. 우리 당원들, 그 정도로 독랄(독하고 악랄)하지 않다. 선거에서 진 것보다 심각한 건 패배를 특정 세력 탓으로 돌려 분열의 골을 깊게 만드는 거다. ‘51 대 49’의 격차 구도가 항구화된 상황에서 야권이 승리하려면 결속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 유일한 방법은 당을 하나로 통합하는 거다. 후보 단일화가 반복되면서 국민 사이에선 ‘감동률의 경향적 저하’가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도 대비할 거다. 하나의 당으로 뭉치되 정파 간 독자성을 보장하며 대외적으론 단일한 움직임을 보여야 승리할 수 있다.
- 재보선을 계기로 손 대표의 대선 경쟁력에 의구심을 품어왔던 당내 분위기가 급변했다. 중도 성향의 손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선다는 가정 아래, 젊고 진보적인 이인영이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이른바 ‘손-이 역할분담론’도 나온다.
= 고맙지만 난 아직 지도자의 반열에 근접하지 못했다. 그저 낮은 일꾼일 뿐이다. 다만 당의 노선 문제와 관련해서라면 조역에 머무를 생각이 없다. ‘담대한 진보’라는 카피의 저작권도 되찾아야 하고. (웃음) 독일 사민당 얘기를 하자면, 1990년대 후반 슈뢰더 총리가 ‘새로운 중도’를 내걸고 당의 외연 확대에 나섰을 때 안팎에서 우려가 많았다. 자칫 사민당의 가치와 정체성마저 사라져버리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때 중심을 지키며 당의 우경화를 막아낸 사람이 당수였던 오스카어 라퐁텐이다. 민주당을 과거의 중도노선으로 회귀시키려 한다면, 손학규가 아니라 누가 됐든 그와 맞서 싸울 것이다. 진보야말로 시대정신이고, 우리 사회의 해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 당신이 생각하는 진보란 무엇인가.
= 시장과 돈의 전일적 지배로부터 사람과 공동체의 가치를 지켜내는 것, 범람하는 상품의 논리로부터 노동의 숭고한 가치와 일하는 사람들의 보람을 지켜내는 것이다.
- 4·27 재보선 패배 뒤 한나라당에선 ‘40대 기수론’이 거세다.
= 보수의 낡은 관성에서 탈피하지 못하면서 ‘나이만 40대’인 사람들이 전면에 등장한다고 그 당이 바뀌겠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40대가 나와야 한다.
- 연합공천과 후보 단일화는 한계가 있는 만큼, 민주·진보 대통합을 통해 파괴력을 높이자는 게 당신의 지론이다. 하지만 이번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 과정에서 드러나듯, 민주당과 진보 정당은 근본적 가치와 철학에서 차이가 커 보인다.
= 중요한 건 대중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다. 그들 눈에도 민주당과 진보 정당이 그렇게 차이가 큰 정당일까? 이념의 잣대로 보더라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온건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그들에게 국유화나 사회주의 이행노선 같은 급진 강령이 있는 건 아니잖은가. 반면에 민주당은 과거의 중도 자유주의 정당에서 진보적 자유주의, 사회적 자유주의로 이동하고 있다. 온건 사민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 사이의 간극은 크지 않다. 사회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민주당과 온건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독일 사민당을 봐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 민주당의 개혁 방향이 미국 민주당보다 우경적인가? 그렇다고 한국의 진보 정당이 독일 사민당보다 좌경적인가? 아니다. 하나의 당 안에 두 개의 가치가 충분히 공존할 수 있고, 나아가 두 가치가 융합해 제3의 길, 제4의 길도 만들어낼 수 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2주기가 돌아온다. 과거에도 지금도 당신은 ‘친노’가 아닌 ‘비노’ 정치인으로 꼽힌다. 당신에게 노무현이란 어떤 존재인가.
= 그의 정치를 높게 평가한다. 특히 정치 개혁 분야에 남긴 족적은 뚜렷하다. 선거문화를 바꾸고 정치적 권위주의를 타파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것을 넘어선다. 경제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기업과 시장의 편을 많이 들긴 했지만,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해 눈속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정치 전반이 찬사받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대북송금 특검은 역사 문제를 법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잘못된 시도였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약속을 뒤집고, 한-미 FTA와 대연정을 추진한 것도 용납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 지지층이 얼마나 분열되고 큰 상처를 입었나. 노 전 대통령 자신도 지금이라면 당시의 선택을 후회할 것 같다.
- 친노 세력은 지난해 6·2 지방선거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김해을 선거 과정에서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친노의 정치’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 김해을 재보선 과정에서 유시민 대표가 그랬다. ‘김해을 민주당 후보 중에는 친노가 없다.’ 이건 금도를 넘어선 말이었다. 친노가 뭔가? 노무현이 표상하는 가치를 계승하려는 세력 아닌가. 그 가치의 핵심은 반칙과 특권을 거부하고 정의를 위해 몸을 던지는 것이다. 이것을 특정 정치집단이 독점하려 해선 안 된다. 그건 노무현 정신도 아니고, 노무현을 욕보이는 길이다. 당내에서 누군가 친노라는 이름을 배타적으로 전유하려 한다면 단호히 싸울 것이다. 노무현의 가치를 계승하려는 사람이라면 안희정이 됐든 이광재가 됐든 민주당의 이름으로 나가 싸워야 한다. 친노의 적자로 나서려는 욕망을 뿌리쳐야 한다.
- 많은 사람들이 ‘진정성’과 ‘의리’를 이인영의 강점으로 꼽는다. 김근태 고문과의 오랜 인연도 이런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데 큰 몫을 했다. 그러나 ‘성공’이라는 세속의 기준에서 볼 때, 정치인 김근태는 재야 지도자 김근태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
= 진심으로 김근태를 존경한다. 재야 지도자 김근태와 정치인 김근태가 달랐다면, 나는 그를 존경하지 않았을 거다. 그의 정치가 주목받지 못한 건 시대를 제대로 타고나지 못한 그의 불운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소금이 아니다. 내가 국회의원을 하며 걸었던 길도 빛나는 길은 아니었다. 다만 이 길도 오래 가다 보면 언젠가 빛을 발하게 되리라는 확신은 있었다. 그 조짐이 보인다. 김근태 고문과 나는 참여정부 시절부터 민주당의 살길은 진보를 강화하는 데 있다고 말해왔다. 복지를 강화하자고 했다. 그때 주변의 다수는 ‘세상이 달라졌는데, 왜 당신들은 아직 그대로냐’고 혀를 찼다. 그러던 사람들이 지금은 모두 복지와 진보를 이야기한다. 우리 생각과 노선이 옳다는 게 증명된 거다. 김근태 고문은 그런 면에선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다.
“거울 앞에서 반성하는 486”
- 지난해 전당대회를 통해 486 정치인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당내 486 정치인을 대하는 시각이 곱지만은 않았다. 참모정치, 하청정치라는 말은 ‘486 정치’를 평가할 때면 단골로 따라붙는 비판이었다.
=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와 같은 심정으로 반성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단체장을 배출한 지자체나 과반 의석을 가진 지방의회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100% 실천했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 주역이 우리 6월 항쟁 세대다. 이런 실천들이 쌓이고 확산되면서 우리 세대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고 있다. 우리의 실험이야말로 민주당의 집권을 밝힐 청사진이 될 것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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