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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은 역사에 기록되는 해 될 것”

민주통합당 대변인으로 변신한 ‘신입사원’ 신경민 전 문화방송 앵커… “눈앞에 닥친 건 정권 교체, 20~30대에게 기대 건다”
등록 2012-02-02 02:07 수정 2020-05-02 19:26
<한겨레21> 김경호

<한겨레21> 김경호

그는 자신을 나이가 좀 많은 신입사원이라고 표현했다. 정치인이라고 하면 아직 어색하다고 했다. 60살에 민주통합당(민주당) 대변인으로 변신한 ‘개념 앵커’ 신경민의 말이다. 2009년 4월 문화방송 9시 뉴스 앵커 자리에서 “쫓겨났고”, 2011년 9월 정년퇴직을 했다. 1월19일 민주당 대변인으로 임명됐다.

촌철살인의 클로징 멘트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지난 몇 년간 선거 때마다 야권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번번이 고사했다. 그러던 그가 제1야당의 입이 된 이유는 뭘까. 평생 언론인으로 살고 싶었다던 그를 1월25일 국회에서 만났다. 그는 “MB 때문에 앵커에서 잘렸고, MB 정권의 유턴에 분노했으며, 정권교체에 기여하기 위해”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당의 공식 견해를 전한다. 언론을 통해 국민과 소통한다. 야당 대변인은 싸움닭 노릇도 해야 한다. 인터뷰 내내 신 대변인에게선 정치인보다는 언론인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신경민 앵커는 정치인 신경민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

왜 정치를 하게 됐나.
정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변인을 맡은 거다. 총선·대선이 있고, (승리가) 쉽지 않고, 이번에는 좀 도와달라는 요청을 더는 거절하기 어려웠다. 지난 몇 년 동안 민주화의 역행, 유턴이라는 상황에 오게 된 데는 정치와 언론의 책임이 있다. 내가 앵커를 그만두게 된 데도 결국은 정치권의 결정을 언론이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었다. 이런 지배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언론사의) 임직원들이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상황이다. 이를 고칠 수 있는 건, 눈앞에 닥친 건 정권 교체다.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거기에 일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 나이나 체력을 보면 이게 아마 거의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0년 7월 서울 은평을 보궐선거, 2011년 4월 경기 성남 분당을 보궐선거 때 민주당의 출마 권유를 고사했는데, 그때와 달라진 게 뭔가.
그사이 수없이 많은 정권 비리가 일어났는데도 정권 교체가 될 가능성은 반도 안 된다. (민주당이) 제대로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총선에 내보낼) 좋은 후보를 가졌느냐는 게 근본적 문제다. 아무리 여건이 좋아도, 좋은 후보가 없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정권 교체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애매모호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은평·분당에 출마하는 것과 지금 대변인을 하는 것은 역할이 다르다. 지금은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대목이 있는 것 같다. 은평·분당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다고 정권 교체에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그는 이 대목에서 “민주당 관계자로서가 아니라 바깥(의 시각)에서 본 것”이라며 민주당 내의 ‘선거낙관론’을 비판했다. 선거 여건이 좋기 때문에 당내 정치 역학관계가 작동해 오히려 좋은 후보를 내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총선의 경우 245개 지역구(18대 총선 기준)마다 개별 후보를 평가받는데, 현재의 낙관적인 분위기에서 자칫하면 ‘안 좋은 상품’을 내놓기 십상이라는 얘기다. 신 대변인은 “지금의 낙관론은 근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날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민주당 지지율이 39.7%로 한나라당 지지율 29.1%를 크게 앞질렀다고 발표했다.)

낙관론을 잠재우고 당내 역학관계를 뛰어넘기 위해 대변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대변인은 당직자이고, 개인 생각을 말하기도 어렵지만, 생각을 가다듬어줄 수 있는 역할이 있다. 단어와 논리를 가다듬어주고, 지금까지 못 보던 측면을 보게 해줄 수 있다. 그게 말의 힘, 미디어의 힘이다. 말은 열심히 공부해서 하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해야 하는 게 꽤 있다. 실수하지 않는 건 기본이다. 그게 대변인의 역할이다.

당내 역학관계는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
잘 모르겠다. 여러 집안이 모인 집이 항상 화기애애하게 갈 수는 없는 거고, 아직 파악 중이다. 몇 집안이 모여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웃음) 공천 과정을 겪으며 알 수 있지 않겠나.

통합진보당에 갈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
글쎄, 별로 생각해본 적 없는데. (웃음)

언론인의 정치 참여에 비판적 시각도 있다. 소는 누가 키우냐는 말도 회자된다.
현직에서 바로 정치권으로 가는 것은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직 언론인이 특히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에 있을 때 정치권에 가고자 하면 기사를 왜곡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저널리즘을 위축·왜곡시킨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다르다. 정치권은 용광로, 여러 계층의 하모니이고, 정치는 이해를 조정하고 사회의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일이다. 저널리즘을 손상시키지 않는 한도 안에서 기자들이 정치권에 진출하는 건 인적 충원 구조에서 필연적이라고 본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 가운데 그 기준에 합당한 사람이 떠오르나.
잘 모르겠는데.

대변인은 정무 감각이 필요한데, 스스로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나.
(고개를 흔들며) 그건 아니다. 다만 노력할 뿐이다. (웃음) 그 질문은 명쾌하게 답할 수 있다.

클로징 멘트처럼 대변인 논평도 직접 작성하나.
그렇진 않다. 밑에 많이 맡기고, 잘못된 것만 지적한다. 대변인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선 기자들한테 당이 돌아가는 상황을 설명하는 일, 설명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하는 일이다. 그걸 잘하려면 당을 취재해야 한다. 온갖 회의에 다 참석해야 하고, 일정도 수행해야 한다. 여러 집안이 모인 정당이라 여러 집안을 취재해야 하고. (웃음) 기자들이나 대중과 소통하는 일도 중요하다.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나.
전혀 결정된 게 없다. 내가 지금 신입사원이잖나. (웃음) 나이가 많긴 하지만. 신입사원이 갑자기 과장·부장 자리로 점프하는 일인데, 내 스스로 그 자리 좋다는데 달라고 하기는 좀 그런 것 같다. 입사를 대변인으로 했으니까 (총선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열심히 하며 정황을 봐야 할 것이다.

당 지도부가 어느 지역구 나가라 또는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라고 요청하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인가.
지역구든 비례든 당 지도부의 판단을 믿어봐야지.

믿는다고?
(웃음) 지도부의 판단을 존중하려고 한다.

정무적 감각이 없다고 말하는 그에게 몇 가지 정치 현안을 물었다. 답변을 유보하기도 했고, 당위론에서 머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는 대변인이기 때문일까?

신경민 민주통합당 대변인 / <한겨레> 김명진

신경민 민주통합당 대변인 / <한겨레> 김명진

민주당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두 개만 꼽아달라.
아직은 문제점을 얘기할 정도로 많이 취재가 돼 있지 않아서 다음에 말씀드리겠다.

그렇다면 민주당에 대한 대중의 요구는 무엇이라고 보나.
인적 쇄신일 거다.

호남 물갈이에 대한 의견은.
나도 호남 출신이다. 그건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문제와 똑같다. 서로 지역주의의 편함이 있다.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니까. 그런데 그 뒤에는 엄청난 부조리와 불합리가 있다. 각 정당들이 편함에만 안주하려 하지 말고 그 뒤에 숨은 그늘을 봐야 한다.

지역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늘 얘기하지만, 결국에는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게 문제 아닌가. 어떤 방식으로 극복이 가능한가.
뚜렷한 방법은 없을 거다. 석패율 제도,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얘기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생각을 바꿔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면서 그 싹이 조금 보이는 것 같다. 우리 세대는 실패했지만, 20~30대는 싹이 보인다.

젊은 층의 투표 참여를 통해 지역주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얘기인가.
쉽지 않은 얘기인데, 싹을 볼 수 있었던 게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2010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분당을 선거에서도 좀 보였다. 지역 프레임, 빨갱이 프레임이 약해진 것 같다. 천안함 사건이 있었지만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게 안 먹혔다. 그런 게 엷어지는 추세가 있다.

그는 2월1일 전후로 란 책을 낼 예정이다. 지역주의와 줄세우기의 경험담과 함께, ‘이명박 현상’에 대한 분석을 담았다. “앵커 자리에서 쫓겨난 소상한 경위도 들어가 있다”고 한다.

왜 쫓겨났나.
쫓아내는 것도 인사로 하기 때문에 증거는 남지 않지만, 권력이 참으로 교묘하고 비열한 방법을 썼다. 주도한 사람, 동조한 사람, 방관한 사람이 있다. 최대한 실명을 썼다. 나는 원칙을 지키려 했고, 그 원칙이 지배구조와 부딪힌 거다.

지키려고 한 원칙은 무엇인가.
기사를 써야 한다는 거다. 만약 권력이 남용되면 기사를 써야 하고, 권력이 원칙에 어긋나게 하면 권력을 꾸짖어야 한다. 권력 남용에 대해 언론이 기사를 쓰지 않으면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때가 많다. 원칙을 지키려고 할 때마다 반드시 누군가가 나타나서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인사를 한다.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 관한 얘기도 있다고 들었는데.
주도 그룹이다.

주도 그룹에서 가장 직위가 높은 사람은 누구인가.
(웃음) 그건 MB겠지. 실명을 쓰지는 않았지만, 읽어보면 MB라는 걸 다 알 수 있다. 비열한 방법이란 개인 뒷조사는 물론, 문화방송에 광고 탄압을 했다. 공익광고,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통한 여러 교묘한 방법들이 있다. 앵커를 그만두고 200여 차례 강연을 다녔는데, 대기업 강연은 한 번도 못했다. 나를 재야 인사, 반체제 인사로 대우해서 장소 문제로 탄압을 받은 적도 있다.

문화방송 기자들이 공정보도를 요구하며 제작 거부에 돌입했는데.
잘못된 게 있으면 싸워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좋아지겠지, 그때 언론 자유를 즐기면 되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쟁취하지 않은 자유는 쉽게 뺏길 수 있다. 싸워서 지킬 건 지키고, 고칠 건 고쳐야 한다.

인터뷰의 클로징 멘트는.
그놈의 클로징 멘트. (웃음) 정치인과 대화하는 게 아직은 어색한데, 내가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찾을 거다. 2012년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좋은 지도자를 선택하지 못하면 지난 4년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 될 거다. 1950년, 1961년, 유신, 1980년 등 중대한 해가 여럿 있었지만, 2012년도 역사에 기록될 한 해가 될 거다. 현장에 가까이 있게 된 것만으로 행복하고 기여를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글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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