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때때로 훌륭한 요리책이다. 전문가의 레시피를 한데 모아놓거나 훌륭한 음식 사진으로 혀끝을 자극하지 않더라도 이야기 속에서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음식에 대한 묘사는 요리책보다 소박해 오히려 일상적인 맛의 기억을 더 자주 불러내곤 한다.
책갈피 사이에 숨은 음식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첫회이니 침이 잔뜩 고이는 음식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음식이 언급된 소설들을 찾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 나오는 신선한 야채 샌드위치가 좋을까. 제목이 음식 재료인 한창훈의 , 조경란의 , 권지예의 , 신경숙의 이 좋을까. 언급된 음식들 모두, 뱀장어를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임에도 어느 하나 (홀로 생각하기에 대망의) 1회를 장식할 만큼 구미를 당기지 못했다.
그러나 잔인한 마감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게중 가장 다양한 요리법으로 응용되는 감자를 골라 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은 고흐가 그린 그림과 동명의 제목이기도 하다. 같은 작가의 소설 에서도 그 그림이 언급된 걸 읽은 듯하다. 어디쯤이었더라… 한참 책을 뒤적였는데 잘못된 기억이었는지 혹은 눈썰미가 좋지 못해서인지 원하는 부분을 찾지 못했다. 대신 침이 고이는 다른 문장을 찾아냈다.
“무 냄새가 밴 뜨거운 문어를 썰어 그중 한 점을 집어 초고추장에 찍어 엄마에게 내밀었다. 항상 엄마가 너에게 해주던 일이다. 그럴 때면 너는 젓가락을 내밀어 받으려고 했다. 엄만 그리 먹으면 맛이 덜하다, 그냥 아, 해봐라, 했다. 엄마는 젓가락을 집어 받으려고 했다. 그러면 맛이 덜해 엄마, 그냥 아, 해봐! 벌어진 엄마의 입 속으로 찐 문어 한 점을 밀어넣었다. 너도 한 점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찐 문어는 따뜻하고 물컹하고 부드러웠다.”(창비 펴냄, 56쪽)
살짝 얼린 차가운 문어숙회도 좋지만 코끝이 여전히 시린 아직은 따끈하고 말랑한 편이 좋겠다. 덩어리째 뭉텅한 것보다는 얇게 저민 게 좋다. 초고추장을 듬뿍 찍어먹으면 왠지 바다 냄새가 더 짙어지는 것 같다.
문어는 언제쯤 맛있을까. 항구 도시 부산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엄마는 알 것 같아 전화를 걸어 물었다. “엄마, 문어는 언제가 맛있어?” “몰라.” “….” “요즘 주꾸미 철이라는데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문어도 요즘 아이겠나. 근데 철이 문제가 아니라 문어는 돌문어가 맛있다. 참문어보다 다리가 좀 짧고 약간 시커멓고 그렇다.”
찾아보니 문어는 달리 철이 없다. 동해와 남해에서 언제든 잡힌다는데, 엄마의 말이 반쯤 맞는 게 산란기인 4월 이전인 12월부터 3월까지 맛이 좋다고 한다. 엄마는 잘 삶은 문어를 간장 양념에 통째 넣고 조려 식탁에 차려준다. 적당히 식힌 다음 가지런하게 썰어 먹으면 흰 속은 담백하고 겉은 짭조름하다.
두번째로 침이 고인다. 겨울밤 같은 봄밤, 보드라운 문어조림 한 점을 꼭꼭 씹어 먹으며 맑은 술을 홀짝이다 푹신한 이불을 둘둘 말고 잠이나 들면 딱 좋겠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문어는 커녕 식빵, 달걀, 오렌지, 썩은 사과만 굴러다닐 뿐이다. 이 중 문어처럼 삶아도 음식다울 건 달걀밖에 없었다. 상상은 바다 냄새 나는 고향의 문어 요리였는데, 현실은 삶은 달걀 두 알 씹어 삼키고 잠드는 거였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책장 찢어먹는 여자’는 문학의 갈피에 숨은 음식을 책 밖으로 꺼내 꼭꼭 씹어먹는 칼럼입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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