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오키나와의 남부 이토만시 마부니에 자리 잡은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에 평화의 주춧돌이 놓여 있다. 오키나와전에서 희생된 조선반도 출신 463명(한국 381명, 북한 82명)의 이름이 각명돼 있다. 2018년 3월 촬영.
일본 오키나와의 남부 이토만시 마부니에 자리 잡은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에는 평화의 주춧돌이 놓여 있다. 1945년 6월23일 일본군 사령관 우시지마 미쓰루의 자결로 오키나와전은 끝이 났다. 오키나와전 종결 50주년을 기념해 평화의 주춧돌이 세워졌다. 이 평화의 주춧돌에는 전쟁의 비극을 기억하고 영원한 평화를 기원하고자 국적이나 군인, 민간인 구별 없이 오키나와전에서 희생된 24만2567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오키나와전에서 희생된 조선반도 출신 전몰자는 최대 1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평화의 주춧돌에는 2026년 현재 조선 출신자 46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외국인 전몰자의 이름이 새겨진 D구역 맨 뒤편 석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 두 국가로 나뉘어 각각 82명과 381명의 조선 출신 전몰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조선인은 태평양전쟁에서 유일하게 미군과의 지상전이 전개됐던 오키나와에 전쟁 말기 시급하게 동원됐다. 최후 결전을 앞둔 실질적인 전쟁 준비를 위해서였다. 제32군이 창설되면서 만주와 북중국에 있던 일본군에 소속된 조선인 군인이 오키나와로 이동했다. 본토의 일본군에 편입된 조선인 군인도 일부 오키나와로 배치됐다.

게라마제도에서 1945년 5월11일 미군에게 포로가 된 조선인 군부 14명. 오키나와공문서관 제공
제일 규모가 컸던 인원은 ‘군부’, 즉 군소속 노동자였다. 조선인만으로 이루어진 특설수상근무대라는 부대가 편성됐다. 이들은 활주로와 참호 건설 같은 군사시설 구축과 군수물자 운반 등의 작업에 동원됐다. 오키나와전이 격해지자 훈련도 없이 전투에 내몰리기도 했다. 오키나와 주민과 함께 자결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가미카제와 같이 특공으로 오키나와 해상에 있던 미군 함정에 동체 공격을 감행하다 죽은 비행사도 있다. 오키나와에 건설된 200곳 넘는 위안소에 동원된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도 있었다.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반환된 1972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와 관계된 ‘제2차대전시 오키나와 조선인 강제연행학살진상조사단’이 현지를 방문했다. 이들은 오키나와 관계자의 협력을 받아 조사를 시작했다. 이후 오키나와 총련 본부가 설립돼 위령비 등을 건립하려는 움직임이 한국 정부를 자극했다. 한국 정부는 ‘총련과 북한의 침투공작’을 저지하기 위해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을 조직하고 오키나와영사관을 설치하는 한편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 내의 토지를 제공받아 ‘한국인위령탑’을 1975년 9월3일 건립했다. 한국인위령탑은 남북 대결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최초로 건립한 위령비다. 한반도의 분단은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평화의 주춧돌에도, 한국인위령탑에도 선명히 각인돼 있다.
오키나와(일본)=사진·글 안해룡 사진가
*안해룡은 사진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전시와 콘텐츠를 기획하며 사진과 영상을 넘나들면서 다큐멘터리 작품을 만들고 있다. 1995년부터 한국, 중국, 일본 등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사진과 영상에 담는 기록 작업을 했다. 다큐멘터리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다이빙벨’을 감독했다. 현재는 일본에 이주한 조선인 노동자의 위령비와 추모비를 찾아 조선인이 건설한 일본 근대 토목 유산의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인 노동자 위령비를 찾아서 1’(동북아역사재단, 2021), ‘북녘 일상의 풍경’(현실문화연구, 2005)이 있다.

오키나와 전후 최초로 건립된 전몰자 위령탑, ‘혼백의 탑’이다. 1946년 2월에 건립되었다. 이곳에 있던 신원 미상의 유골 3만5천주는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 안에 국립오키나와전몰자묘원으로 옮겨져 있다. 이름도, 국적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의 유골을 모았기 때문에 특정 인물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혼백(魂魄)이라는 두 글자만을 새겼다. 2025년 6월 촬영.

오키나와전 당시 구메지마에 주둔하고 있는 해군의 전파통신대가 주민을 미군 스파이로 간주해 살해한 희생자를 기리는 ‘통한의 ’다. 조선 출신 다니카와 노보루(한국명 구충회) 일가족 7명이 살해당했다. 1974년 8월에 건립되었다. 2025년 8월 촬영.

군속으로 오키나와에 강제동원된 강인창씨가 1997년 7월 오키나와를 방문해 “벼 이삭을 훔쳤다는 이유로 처형된 동료를 잊지 못한다. 지금도 이국땅에 묻혀 있는 희생자들의 유골을 고향으로 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고, 이 바람이 오키나와와 한국, 일본 시민의 마음을 움직여 2006년 5월에 기념비, ‘한의 비’가 건립되었다. 2013년 10월 촬영.

1945년 1월22일 모토부 항구에서 군수 물자를 하역하다 미군의 공습으로 희생된 조선인을 기리는 공간, ‘겐켄의 화단’. 2020년 발굴작업을 벌였으나 유골을 수습하지는 못했다. 2025년 6월 촬영.

1975년 9월에 건립된 한국인위령탑. 비문에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영혼들은 파도 높은 이 땅의 허공을 떠돌며 비가 되어 내리고 바람이 되어 불 것이다. 이 고독한 영혼들을 위로하고자, 우리는 온 한민족의 이름으로 이 탑을 세워 삼가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고 적혀 있다. 2025년 6월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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