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선생은 거리에서 또 광장에서 늘 일렬(첫째 줄)을 지켰다. 폭압적 군사정권과 맞서 싸울 때 경찰의 최루가스와 물대포 등 강경진압 앞에서도 시위대의 방패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선생은 평생 ‘재야인사’였다. 1960~80년대 군사정권이 내세운 꼭두각시 정당들로 민주주의가 빈사 상태에 빠졌을 때 그는 시민사회 활동가이자 큰 어른으로 제도권 밖에서 싸웠다. 그 대가로 투옥과 고문이 반복됐다. 1992년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나섰을 때도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닌 민중후보였다.
선생은 또 사회적 약자가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벌일 때 가장 앞서 달려가 손을 잡아주었다. 김소연, 유흥희 등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김진숙의 한진중공업 복직 농성, 세월호 유족 진상규명 만민공동회 등에도 그는 어김없이 백발의 노구를 드러냈다. 덕분에 거리와 광장을 기록해온 사진가·사진기자들은 백발의 사자후를 프레임에 담을 수 있었다. 그의 따뜻한 손길과 맑은 미소, 뜨거운 눈물이 사진으로 남았다. 영면의 길을 떠난 선생을 기리며, 몇 순간을 한자리에 모아본다.
사진 박용수 사진가, 박승화·이정우·김명진 기자,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글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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