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은경(맨 앞 앉은 이 왼쪽부터), 강은하, 오정선 연주자가 2025년 6월4일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마당에서 하나의 피아노로 ‘세비야의 이발사 서곡' 연주를 마치며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2025년 6월4일 정오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앞마당에 피아노 선율이 흘러넘쳤다. 이곳은 1987년 6월10일 오후 6시 전두환 군부독재 타도를 위한 시민항쟁 시작을 알리려 마흔두 번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던 장소다.
6월항쟁 당시 성당을 울린 종소리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에 시민참여를 호소하는 신호탄 역할을 했다. 종소리에 성당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경적을 울리고 손수건을 흔들며 전두환 정권 타도를 외쳤다. 이후 시위는 전국으로 퍼져나가 대통령직선제 개헌 약속이 담긴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의 ‘6·29 선언’을 이끌어냈다.
이 시민항쟁으로 이뤄낸 대통령직선제로 2025년 6월3일 우리 국민 5168만4564명 중 3523만6497명이 투표했다. 꼭 여섯 달 전인 2024년 12월3일 불법적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거리와 광장, 일터에서 헌법과 법률을 지켜내려 다시 떨쳐 일어난 시민의 힘으로 비로소 일상을 되찾은 날이기도 하다. 1728만7513표를 얻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선거 이튿날,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앞마당에서 야외음악회가 열렸다.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이를 대행하는 이를 다시 대행하는 이가 정부를 이끌어온 비·비·비정상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선택을 받은 이가 권력을 넘겨받는 선서를 하고 여야 정당 대표와 국회 사랑재에서 점심을 먹은 바로 그 시간이다.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은 서울교구장의 주교좌가 있어 서울주교좌성당이라고도 불린다. 1922년 영국 건축가 아더 딕슨의 설계로 대성당 공사를 시작해, 1926년 부분 완성했다. 미완성인 상태로 70년을 사용하다, 1996년 현재의 모습을 완성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이면서도 처마 장식과 기와지붕에는 우리 전통 건축 양식이 공존한다.

최은경(왼쪽부터), 강은하, 오정선 연주자가 하나의 피아노 건반 위에서 여섯 개의 손으로 연주하고 있다. 뮤지카듀오 제공
다시 맞은 6월, 눈부시게 따가운 햇살 아래 늦봄 바람에 거세게 나부끼는 악보를 누군가 잡아줘야 했다. 이날 무대에 오른 이들은 ‘뮤지카듀오’(Musica Duo)란 듀오음악(두 명의 연주자 또는 보컬이 함께 음악을 만드는 형태) 연주단체다. 피아노 듀오음악을 우리나라에 싹틔우려 1994년 백제예술대학 교수들이 주축이 돼 꾸려졌다. 2006년과 2009년 미국 카네기홀에서 두 차례 연주했을 정도로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마당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가장 뜨거운 박수를 보낸 연주는 최은경·강은하·오정선 세 명의 피아니스트가 하나의 건반 위에서 함께 연주한 ‘세비야의 이발사 서곡’이었다. ‘1 피아노 6 핸즈’(1 Piano 6 Hands)란 이름이 붙은 이 연주는 듀오음악 연주자들만 들려줄 수 있는 힘차고 독특한 선율로 청중을 달궜다.
음악회를 찾은 이은주(42)씨는 세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스마트폰을 쥔 손을 높이 치켜들어 이를 영상에 담았다. 이씨는 “세 연주자가 피아노를 함께 치는 건 처음 봤다. 신기하면서도 그 음악이 정말 좋았다”며 웃음 지었다. 이날 연주회를 기획한 심선희 뮤지카듀오협회 회장은 “피아노 곡은 2명 또는 3명이 연주하도록 작곡한 곡들이 있다. 또 작곡가들이 여러 형태의 곡을 2명 또는 3명이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박수에 세 연주자는 앙코르곡으로 ‘맘마미아’를 연주했다. 여섯 개의 손이 건반 위를 누비며 내는 소리는 여섯 곱절로 시민들의 심장을 울렸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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