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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이봉국'과 '통중봉북'

부글부글
등록 2012-05-11 12:29 수정 2020-05-02 19:26

통이봉국. ‘이명박’과 통하고 ‘국민’을 봉쇄한다. 지난 4월30일 물러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눈물을 짰다. “사실 대통령 아니었으면 제가 어떻게 청장이 되었겠는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등을 돌리더라도 대통령께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공식 퇴임사에는 없는 말이라 일부러 했단다. 시민들은 상관없다는 얘기다. 경찰청장 시켜준 대통령이 최고라는 얘기다. 막말이다. 경기지방경찰청장 시절,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을 무지막지하게 진압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도 ‘통이봉국’ 네 글자를 마음에 새겼나 보다.

시켜줄 때는 납작 엎드렸다가도 나갈 때는 그래도 ‘윗분’에게 ‘컹’ 하고 쓴소리 하는 게 ‘예의’라는데. 위장전입도 봐주고,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도 눈감아주면서까지 경찰청장을 시켜줬으니 눈물 짤 만했다. 경찰, 이런 수장 모셨던 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보다. 퇴임식장에는 조현오 이름 석 자로 이런 삼행시가 떴단다. “‘조’직을 사랑하고 ‘현’장을 아끼시는 우리 청장님! ‘오’늘은 새로운 출발의 시작입니다!” 조직과 국민 대신 오직 대통령 한 명만을 사랑한다지 않는가. 현장을 아꼈지만 치안 현장은 아니었나 보다. 경기도 수원에서 20대 여성은 왜 그렇게 죽었을까. 누구의 새로운 출발? 경찰은 새로 출발 안 하나. 하긴 새로 온 김기용 경찰청장도 위장전입했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한겨레> 류우종 기자

조현오 전 청장은 “어떤 국가기관도 손대지 못한 룸살롱 황제 이경백을 구속시킨 것은 우리 경찰이었다”고 했다. 자화자찬 적당히 하자. 이경백한테 수천만원씩 받아 챙긴 이들은 경찰 아니었나. 그러면서도 입만 열면 ‘수사권’ 달란다. 적당히 좀 하자. 뭐라도 변한 모습을 보여야지. 국민은 필요 없고 북악산 아래 그 님만 그리고 살았다고 대놓고 고백하지 않았나. 경찰 수장이 저 정도인데 누구를 위한 수사권? 내가 경찰이었다면 수사권 다 말아먹는 저런 발언,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거다.

수사권 조정의 ‘선봉’에 있는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 소속 이지은 경감. 지난 4월27일 검찰청 앞에서 1인시위를 벌였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에게 수사 축소 지시와 폭언을 했다며 고소당한 검사가 경찰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며 손팻말 시위를 했다. 검-경 수사권 갈등의 연장이다. 이지은 경감은 2007년 한화그룹 회장 폭행사건을 수사했던 서울 남대문서 언론담당을 맡았다. ‘봐주기 수사, 허위 보고, 거짓 해명’으로 일관한다며 언론의 뭇매를 맞자, 이지은 경감(당시 경위)은 경찰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대한민국 경찰은 강자에게 약하고, 수사 능력이 부족하고, 검찰로부터 공개적으로 훈수나 들어야 하는 나약한 집단이 결코 아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경찰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당연히 인정한다. 그러니 앞으로는 경찰도 시민의 정치적 기본권인 1인시위를 원천 봉쇄하거나 아무도 못 보게 둘러싸는 치졸한 짓은 하지 말기 바란다. 아직까지 경찰 얼굴에 먹물을 튀긴 조현오 전 청장의 ‘통이봉국’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경찰의 1인시위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통중봉북(한국이 중국과 통하고 북한을 봉쇄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에 했다는 말이다. ‘통’이 엄한 말씀이나 하고 있으니, 앞으로 남은 임기 열 달도 걱정이 크다. 통이 뒷북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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