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브존에서는 고등어 샌드위치를 먹는다고, 미스터 고.”
아흐멧 심시르를 만나자마자 바다 냄새를 맡았다. 지나치게 짙은 눈썹은 좀 느끼했지만 눈 밑 주름은 분명 해풍이 새긴 것이었다. ‘바다 냄새’라는 말은 너무 주관적인 표현 아니냐는 분은 잠시 컴퓨터를 여시라. 검색창에 ‘소설가 한창훈’을 치면 ‘해풍이 새긴 눈 밑 주름’이 뭔지 알게 된다.
유럽 축구팬이라면 왜 다짜고짜 바다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게다. 트라브존스포르. 그렇다. ‘을용타’로 유명한 축구 선수 이을용이 뛰었던 터키의 축구클럽이다. 트라브존이 연고지다. 2008년 여름, 심시르가 서울 마포의 PC방에서 구글 어스로 트라브존을 보여주기 전엔 나도 당최 어디 붙은 동네인지 몰랐다. 트라브존은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다. 올해 스물아홉인 심시르는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에 놀러왔다. 축구에 환장했고, 붉은 악마에 즐거웠고, 그러다 눌러앉았다. 2008년 ‘esc’ 유럽 축구 특집 취재를 하다 만났다. 이런저런 알바를 하다 지난해 겨울 이태원에 조그만 레스토랑을 열었다.
“왓더 헬! 가게 이름이 ‘트라브존스포르’가 뭐냐!”
“동생 후세인이 트라브존스포르 주전인데 어쩔 수 있겠어? 큭큭.”
내 지청구에도 심시르는 허허 웃었다. 여름밤 술 한잔 걸치고 찾아간 이태원에서 심시르는 고등어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자신도, 동생도 모두 이걸 먹고 자랐다고 말했다. 매직으로 칠한 것처럼 짙은 눈썹과 구둣솔 같은 검은 수염 사이로 땀이 흘렀다. 화덕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히죽거리며 그 역시 고등어 샌드위치를 씹었다.
조리법은 단순했다. 통통한 고등어를 그릴에 굽는다. 등뼈와 가시를 발라낸다. 바게트처럼 겉이 바삭한 빵 속에 끼운다. 상추 한 장, 양파 썬 것, 또는 식성에 따라 토마토를 함께 끼운다. 식성에 따라 소금이나 후추를 뿌린다.
1월26일 저녁, 고등어 샌드위치에 도전했다. 맛은 의외로 괜찮았다. 한국처럼 간고등어로 만들면 소금간도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고등어살에서 배어나온 기름이 바게트의 빵 속을 부드럽게 적셨다. 한입 베어물었다. 쇠고기나 돼지고기처럼 묵직하지 않지만 짭짤하고 비릿한 맛이 입안을 채웠다. 천천히 씹자 3초 뒤 양파의 쌉쌀함이 입안을 씻어주며 동시에 침샘을 자극했다. 식욕 재장전.
한 손에 고등어 샌드위치를 들고 우적거리며 구글 어스를 이리저리 확대했다. 트라브존에 가면 정말 심시르 같은 청년들이 고등어 샌드위치를 먹고 있겠지? 이럴 땐 “미식은 모르는 맛을 향한 탐험”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지나치듯 본 고등어 샌드위치만으로 ‘상상놀이’가 되지 않느냔 말이다. 만나본 적도 없는 터키 남자에게 심시르라는 이름을 갖다붙이고 그의 인생사를 머릿속에 써나가는 어처구니없는 상상놀이도, 고등어 샌드위치를 한 손에 들고 있다면 용서되지 않느냐는 거다.
칼럼 초기에 써먹었던 ‘구라질’을 다시 써먹은 건 나이 먹는 게 지겨워서다. 설날이 또 지났다. 나 같은 독신남에게 축제라기보다 과제에 가까웠던 명절이다. 누군가 결혼은 언제 하느냐고 또 질문했고, 또 다른 친척은 연봉이 얼마냐고 대놓고 물었다. 뭣보다 나이를 먹어도 먹는 건지 주는 건지 모르는, 내 무덤덤함과 치기가 지겹다.
장기하가 “달이 차오른다 가자”라고 외치는 그런 심정으로 외치고 싶다. “트라브존으로 가자!” 서른다섯 넘어 슬슬 나이 먹는 게 지겨운 독자들은 고등어 샌드위치를 만들어보시길. 혹시 아나, 아무것에도 놀라지 않는 심리적 나잇살이 조금 치료될지도. (맛은 나쁘지 않다. 정말이다.)
고나무 기자 한겨레 정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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