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생각해보면, 그것은 괜한 고집이었는지도 모른다. 9월13일 평택 대추리에서 이뤄진 국방부의 빈집 철거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취재진이 마을로 접어든 것은 일이 터지기 이틀 전인 9월11일 오후 4시30분께였다. 마을로 접어드는 취재 차량을 경찰 바리케이드가 가로막고 나섰다.
“실례합니다. 어디 가는 중이시죠?”
“( 로고를 가리키며) 보면 모르십니까, 취재하러 갑니다.”
5월4일 국방부의 대추초등학교 강제 철거 이후 넉 달 동안 계속돼온 정겨운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기자와 경찰들은 가끔 쓸데없어 보이는 일로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한두 마디 까칠한 대화를 주고받은 뒤 경찰 쪽에서 그동안 보여줬던 반응을 한마디로 줄이면 “얘들아 통과시켜라”였다. 적어도 지난 넉 달 동안은 그랬다. 그러나 강체 철거를 앞둔 탓인지 그날만은 경찰 쪽의 반응도 만만치 않았다. “저, 신분증 좀 보여주시죠.”
“거부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야.” 2001년 11월 기자가 신문사에 들어온 뒤 선배들이 제일 처음 가르친 것은 ‘불심 검문은 거부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기자라는 신분 때문에 누리는 일종의 특권이 아니라, 시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법으로 보장된 권리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이하 경집법) 3조 7항은 ‘불심 검문’하려는 경찰의 질문에 대해 “당해인은 형사소송에 관한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신체를 구속당하지 아니하며, 그 의사에 반하여 답변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못박고 있다. 쉽게 말해 신분증을 확인하려면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경집법이 애초부터 ‘대답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1987년 여름, 민주화 쟁취를 외치며 서울 광화문 거리를 뜨겁게 수놓았던 시민 저항이 이룬 작지만 소중한 승리였다. 이름해 12월31일 개정된 경집법 3조는 “경찰의 임의동행 요구를 받은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명문화했고, 동행을 요구한 경찰관이 “자신의 신분을 먼저 밝혀야 한다”는 규정도 이때 만들어졌다. 경집법에 ‘답변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만들어진 것도 그때 일이다. 기자는 18년 전 국회의원들이 경집법 3조에 굳이 그 구절을 집어넣은 이유에 대해 사람이 자신의 개인 정보를 말하고 싶지 않을 때 말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며,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우리 사회가 동의했기 때문이라 믿는다. 그게 경찰이 공무를 수행하는 데 여러 어려움을 주더라도 말이다.
“야, 저분 잡아.” 사태는 결국 파국으로 흐르고 말았다. 경찰의 신분증 제시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던 기자는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넘어 대추리를 향해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전경 여남은 명이 기자에게 덤벼들었다. ‘18 대 1의’ 뚝방 전설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지만, 전경들의 태클 러시에 옆으로 밀린 기자는 국방부가 대추리·도두리 285만 평을 고립시키기 위해 퍼낸 참호에 빠졌다. 휴대전화 안에 물이 들어가 평택에 있던 3일 내내 동행한 박승화 기자의 전화를 빌려써야 했고, 새로 산 구두도 형편없이 망가지고 말았다. 정식으로 문제 제기하려다 얼어붙은 경기 군포경찰서 8중대 아무개 경위의 질린 얼굴을 보고 그만두었다. 새 휴대전화를 12만원을 주고 샀는데, 예전에 없던 MP3 기능도 있어 만족하며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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