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증가할 때마다 가격 상승…투자수익 노리기보다 가치보존 수단으로 삼아야
국제 금값이 연일 급등세를 타고 있다. 지난 9월9일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금 현물가격은 온스(약 31.1g)당 382.65 달러에 거래됐다. 1996년 11월 이후 약 7년 만에 최고치다. 지난해 무려 25%나 올라 1970년대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한 국제 금값은 올 초 이라크 전쟁 프리미엄이 붙어 온스당 390.80달러까지 폭등했다. 최근 12개월간에도 18%나 급등하면서 올 들어 평균 360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평균 금값(310달러)보다 50달러나 높다.
‘황금장세’가 다가온다
금값이 폭등하자 투자자들이 금 사재기에 나서면서 값이 다시 뛰고, 금은 국제 시장에서 지난해 최고의 투자수익 상품으로 각광받았다. ‘펀드 대부’ 조지 소로스 회장까지 투자자산 재배치에 나서 달러화 대신 금 투자에 적극 가담할 정도다. 올해 안에 금값이 온스당 400달러선을 돌파할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도 나온다. 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금값이 내년에 평균 450달러로 오르고, 10∼15년 내에 1500∼2천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른바 ‘황금장세’가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금을 해외에서 사들이는 국내 금값은 당연히 국제 금값에 따라 움직인다. 국내 금 시세도 외환위기 이후 최고가격을 잇따라 깨는 등 천정부지로 급등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에 24K 순금 1돈쭝(3.75g)당 5만원선을 왔다갔다하던 금값은 지난 9월13일 도매 기준 5만5700원, 소매시세는 5만9200원까지 치솟았다. 금값이 상투에 이르렀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금값 지금 거의 6만원 가잖아. 너무 많이 올랐어. 금값 6만원대 구경해본 적 있어 상투야. 골드 바(금괴) 갖고 있으면 지금 파는 게 좋아.” 지난 9월4일 종로3가 귀금속도매상가에서 만난 한 보석 매매상의 말이다.
금값이 뛰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값을 움직이는 가장 큰 변수는 ‘불확실성’이다. 정치·경제·금융 위기 등 지정학적 위험이 커질 때마다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으로서 금을 보유하려 든다. 금의 매력은 확실한 환금성, 즉 필요하면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일금(一金) ○○○원정(定)’ 식으로 화폐가치를 금으로 정하고 있는 것이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달러가 약세에 빠지고 주식시장이 침체될수록 금 수요는 증가한다. 미국경제 회복 지연 등으로 기축통화인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국제 준비통화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대체 수단으로서 금값이 뛰는 것이다. 화폐의 가치가 불안해질수록 금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셈인데, 약세인 달러화에 대한 위험회피 수단으로 투자자들이 금을 사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99년 금 재고의 상당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 중앙은행들이 2004년까지 금 매각량을 한해 400t으로 제한하기로 약속한 ‘워싱턴협정’도 금값 상승을 낳은 한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에 나오는 금 수량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세계 금광에서 연간 새로 채광되는 금의 양은 전체 금 시장 공급량의 2%에 불과하다. 게다가 금은 집안 장롱 깊숙이 들어간 뒤 숨어버리기 십상이어서 금값은 공급보다는 수요에 따라 크게 출렁일 수밖에 없다.
정부, 금 거래 활성화 대책 내놓아
우리나라 금거래 규모는 세계 10위권(지난해 공식 수입량 170t)에 든다. 그러나 국내에 금을 사고파는 본격적인 금 시장(상품거래소)은 아직 없다. 물론 부산 선물거래소에서 금 선물상품이 거래되고 있지만 실적은 거의 제로다. 밀수와 부가가치세 때문이다. 현재 정상 수입되는 금에는 관세(3%)가 붙고 여기에 다시 부가가치세(10%)가 얹어져 13.3%의 세금이 부과된다. 국제시세가 100원이라면 국내 시세는 113.3원이 될 수밖에 없는데 금괴 밀수가 성행하는 이유는 바로 이 세금에 있다. 세금을 피한 밀수 금괴는 품질 보증 문제 등 리스크 비용을 감안해도 108원 정도에 팔리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최근 금 유통질서를 투명화하고 금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조세특례제한법을 고쳐 지난 7월부터 2005년까지 한시적으로 금 세공업자 및 금 저축자(은행)에게 공급되는 금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면제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한·우리·기업은행 등 국내 은행들이 순금 또는 금 관련 금융상품을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사고파는 ‘골드뱅킹’ 준비에 한창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금은 통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은행에서 취급할 수 없었고, 금에 붙는 세금 때문에도 상품화하기 어려웠다”며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에 따라 금융거래 비밀보장 문제 등을 검토하면서 골드뱅킹 상품을 본격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골드뱅킹 상품으로는 금 증서(Gold Certificate), 금 적립계좌(Gold Account), 금 현물대출 등이 있다. ‘금 통장’으로 불리는 금 적립계좌는 매월 일정 금액을 적립하면 은행이 날마다 금을 구입해주는데 만기가 되면 금 고시가격에 따라 현금으로 찾거나 금 실물로 지급받을 수 있다. ‘금 증서’는 은행이 일정량의 금을 담보로 지급증서를 발행해 쉽게 유통될 수 있게 한 상품으로 양도성예금증서(CD)와 비슷하다. 반면 ‘금 대출’(Gold Loan)은 은행이 해외에서 금을 빌려와 금 수요가 많은 반도체·컴퓨터 업체 등에 빌려주는 골드뱅킹 상품이다.
금은 다른 금융자산과 달리 보유·이동이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상속·증여세 회피수단으로 은밀히 이용돼왔다. 그런데 금값이 뛰고 있는데다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를 맞아 예금·주식·부동산 외에 금이 재테크 대상으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금 투자가 채권·주식 등 다른 자산투자에 비해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까 물론 금값이 뛰면 앞시세(매도가)와 뒷시세(매입가)의 차액만큼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주식·채권과 달리 금에는 이자도 배당도 안 붙는다. 금값의 가격 변동성도 무시할 수 없다. 올 초 이라크전쟁 전에 온스당 390달러까지 뛴 금값은 전쟁 직후 319달러까지 폭삭 주저앉았다. 지난 1970년 온스당 35달러에서 1980년 850달러까지 폭등했던 국제 금값은 20여년간 계속 떨어져 지난 99년 250달러까지 폭락했다. 한국은행 외환보유고 가운데 금은 13.8t 정도로 전체 외환보유고의 0.1%(달러화 환산)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진다. 금의 가격변동 위험이 커서 함부로 사고팔기 어렵기 때문에 최소한의 대외준비자산으로만 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상품 같은 안전 투자처
전문가들은 수익률을 좇는 무모한 금 투자보다는 불확실성 시대의 가치보존 수단이란 측면에서 금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한다. 물가가 올라 돈의 가치가 떨어질 때 금은 상대적으로 가치를 그대로 보존해주는 인플레이션 회피 수단이자 경제 위기에 대한 ‘보험’이라는 얘기다. 금 도매·수출입업체인 한성종합상사 김범정씨는 “금값이 뛰고 있지만 ‘골드러시’니 뭐니 하면서 들뜨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금은 본래 공급자의 신용도와 상관없이 가치를 보존해주는 수단이다. 회사채를 보자. 수십년 전에 창업된 대기업 가운데 아직 쓰러지지 않고 남아 있는 데가 몇개나 되나? 금은 믿음이 흔들린 적도 없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자산이 위협받을 때 금은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좋은 리스크 헤징 수단이 된다”고 말했다. ‘유동자산의 고전’으로 꼽히는 금은 보험상품 같은 안전 투자처로 생각해야지 투자수익을 노리는 투기상품으로 봤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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