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지수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 소득불평등 수준… 국가의 소득재분배 기능 크게 떨어져
철학자 플라톤은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가장 부자인 사람의 소득이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4배 이상 많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소득분배 자료가 존재하지 않거나 측정방법(개인소득이냐 가구소득이냐)이 달라 비교하기 쉽지 않지만, 소득분배가 상대적으로 가장 균등하다는 독일은 상위 20% 계층의 소득이 하위 20% 계층의 4배 정도이고, 가장 불균등한 브라질은 25배 정도에 이른다. 그렇다면 한국의 소득분배 구조는 어떤 상태이며, 과연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소득불평등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자산 격차 완전불평등에 가까워
청와대 빈부격차·차별시정 태스크포스팀이 2000년 통계청의 ‘가구소비실태조사’ 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소득분배 구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개국 가운데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소득 상위 10% 계층과 하위 10%의 소득분배율에서 한국은 미국, 터키에 이어 19위를 기록했고 멕시코가 꼴찌였다. 그런데 소득분배의 장기적인 흐름을 일관되게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는 통계청의 ‘도시가계조사’가 거의 유일하다. 이 자료를 활용해 통계청이 공식 지니계수(소득 및 자산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도가 크다)를 추계한 것을 보면, 80년대 후반 0.31 수준이던 지니계수는 90년대 들어 0.28∼0.29 수준으로 낮아져 불평등도가 약간 개선되는 추세를 보였다. 경제개발 초기에 소수 고소득층에 집중됐던 성장의 혜택이 점차 저소득층으로 확산되면서 계층별 소득격차가 다소 축소된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분배격차는 다시 확대 추세로 반전되었는데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지니계수는 98년 0.32로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이는 도시근로자 가구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자영업자의 소득 불평등도는 노동자가구보다 훨씬 높다. 따라서 자영업자·무직자를 포함하면 분배격차는 더 벌어진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이 발표한 ‘소득분배의 국제 비교를 통한 복지정책 방향 보고서’는 우리나라 소득분배 구조의 몇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우선 우리나라의 ‘시장소득’ 불평등지수는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높지 않은 반면 ‘가처분소득’ 불평등지수는 매우 높다. 시장소득은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이자·배당·임대소득), 사적 이전소득( 상속·증여 등)을 모두 합친 것으로, 세금 및 정부 공적 부조(이전소득)를 합산하기 이전의 소득 단계다. 정부가 세금을 거두고 그 재원을 바탕으로 공적 이전지출을 시행하는 이른바 ‘국가에 의한 소득재분배’가 빠진 상태에서의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96년 및 2000년 통계청 가구소비실태조사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96년 0.302에서 2000년 0.374로 크게 높아졌다. 이는 OECD 16개 주요국 중 10번째로 중하위 그룹에 속한다.
가처분소득(시장소득에 정부 공적 이전소득을 합산한 뒤 여기에서 공적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 등 사회보장부담금과 소득세 등 직접세를 뺀 것) 지니계수 역시 96년 0.298에서 2000년 0.358로 훨씬 높아졌다. 이는 멕시코(98년 0.494)와 미국(2000년 0.368)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시장소득과 가처분소득 모두 소득분배가 악화된 것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OECD 국가들의 2000년 평균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0.380로 상당히 높지만, 평균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0.272로 아주 낮다는 사실이다. 외국의 경우 국가 개입으로 시장소득 불평등을 크게 개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시장소득이나 가처분소득이나 불평등도가 거의 유사하다. 이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 유경준 연구위원은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 정도가 아주 낮아서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고 빈곤층에 대한 정부의 이전지출 규모도 아직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세금과 사회보장제도에 의한 소득재분배 효과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앞서 본 2000년 우리나라 시장소득 지니계수 0.374는 미국(0.408)보다 낮고 영국(0.369)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한국은 통념과 달리 분배 불평등이 상대적으로 덜한 나라일까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현행 지니계수가 노동자 계층의 임금소득 격차만 보여줄 뿐 부동산·금융자산에서 나오는 자산소득(이득)은 빠져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소득 지니계수로 분배 불평등 수준을 재는 것은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는 소득보다 격차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체감 불평등은 소득분배보다 자산 분배의 불균형에서 더 많이 느끼게 마련이다. 특히 한국에서 부유층과 빈곤층간 자산 격차는 지니계수가 완전 불평등(1)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나다. 국민은행경제연구소가 지난해 7월 국내 15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금융자산 상위 20% 가구가 평균 2억1500만원을 보유한 반면 하위 20% 가구는 346만원에 불과해 격차가 무려 62배에 달했다.
사회적 안전망을 쳐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95년 당시 금융자산 지니계수는 0.656, 부동산 중 건물(주택 등)의 지니계수는 0.664, 토지는 0.900으로 극심한 불평등을 보였다. 98년의 통계청 발표치인 ‘소득’ 지니계수(0.32)에 견줘 실제 불평등도가 훨씬 더 심각한 것이다. 최근 강남 아파트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만큼 자산 격차를 포함한 종합적인 불평등도는 더 심화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외환위기 이후 소득분배 악화의 원인으로는 △실업률 증가 △연봉제 확산 △지식정보화 사회로의 빠른 진전 △정보기술(IT) 산업의 발달 등 산업간 불균형 심화 △이혼율 급증에 따른 여성 가구주 비율 상승 △노인 인구 급증을 들 수 있다. 경제사정 악화뿐 아니라 세계화·개방화에 따른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이 늘었난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경제적으로 용인하거나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소득격차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일반적으로 지니계수가 0.4를 넘으면 소득분배가 상당히 불평등하다고 본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소득분배 격차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능력과 환경의 차이에 의한 것도 있지만 노력의 차이에 의한 부분도 있다”는 논리 아래 일정한 소득불평등은 합리적이고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옹호하기도 한다. 성취동기를 부여할 수 있도록 소득수준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통계청 도시가계조사를 이용한 2000년 소득계층별 총소득 분포를 보면 총소득 상위 10% 가구가 전체 소득의 21.97%를 차지한 반면 하위 10% 가구는 3.56%를 차지했다. 이 정도의 불평등은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적정한’ 소득불평등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란 무척 어렵다. 분명한 것은 어떤 정부도 국민들이 절대빈곤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안전망을 쳐야 하며, 세금과 공적부조(소득이전)를 통해 시장이 낳은 소득분배 불평등을 개선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납세를 싫어하는 부자들을 대상으로 ‘거위가 울지 않게 거위의 깃털을 뽑는’ 과세기법을 개발하거나 부자들의 비과세 소득대상을 축소시켜야 하는데, 이는 정부의 의지 그리고 어떤 사회를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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