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투신 · LG카드사 통해 들여다본 당국의 행태… 밑 빠진 독에 물 붓다 국민에게 책임 전가
우울한 이야기지만, 몇년 전의 일을 다시 끄집어낼 수밖에 없다. 이제는 푸르덴셜로 넘어가게 된 현대투자신탁증권(이하 현대투신) 이야기다. 1999년 투신사들에서는 자금이탈이 계속됐다. 대우사태로 인해 투신사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됨에 따라 투자자들이 투신사들의 생존 가능성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현대투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대투신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대규모 증자를 실시했다. 그러나 2000년 초 실시한 5250억원 규모의 증자에서 대규모 실권이 발생했다. 30%의 지분을 가진 캐나다 임페리얼뱅크오브커머스가 실권한 것을 비롯해, 실권주는 무려 2600억원어치에 이르렀다.
부실 은폐 → 증자 → 공적자금 투입
현대투신은 실권주를 처리하기 위해, 마치 고객들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처럼 실권주 인수 자격을 줬다. 인수 가격은 증자 때와 같은 주당 6천원씩이었다. 대주주가 포기한 증자에 고객들이 뛰어들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청약을 받아본 결과는 뜻밖이었다. 경쟁률이 2.6 대 1로 실권주가 모두 소진됐다. 물론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현대투신은 직원들을 동원해 현대투신이 2001년에 코스닥시장에 등록될 것이며, 등록하면 주가가 1만1천원에 이를 것이라고 선전했다. 이는 2001년 3월까지 당기순이익이 8906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에 기초하였다.
투신사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회사쪽의 이런 장밋빛 전망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대우사태로 인한 추가손실이 막대할 것임은 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 3월 말에 끝난 회계연도에 현대투신은 696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감독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감독당국은 현대투신의 무리한 선전에 침묵했다.
전문가들의 비밀스러운 예상대로, 현대투신은 제 힘으로 살아남지 못했다. 2001년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기로 하면서 또 한 차례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었고, 그래도 생존이 어려워 공적자금 투입을 전제로 매각협상이 벌어졌다. 오랜 협상 끝에 현대투신은 2003년 푸르덴셜에 매각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현대투신의 처리과정은 한국식 부실 금융기관 정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맨 처음에는 부실을 감추고 문제가 없다고 우긴다. 부실이 더 커지고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 어느 정도 증자를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벌 소속이라면, 총수가 자기 돈을 내는 시늉을 하고 대개 계열사들이 그 부담을 진다. 이때 고용을 담보로 우리사주가 부담을 나눠지고, 사정을 잘 모르는 소액주주들이 회사쪽과 감독당국의 말만 믿고 증자에 뛰어든다. 이런 과정을 통해 회사가 살아남으면 다행이지만, 대개는 살아남지 못하고 매각된다. 현대투신의 경우, 정부가 2조5천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앞으로 회수할 자금을 감안해도 1조5천억원 이상의 순손실을 지게 된다. 공적자금은 국민의 세금이다. 왜 국민이 그 많은 빚을 떠안게 됐는지 감독당국은 설명해야 하지만, 말이 없다.
주식회사는 아주 독특한 형태의 회사다. 주주들은 투자한 돈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 회사가 망하면 투자금만 날리면 될 뿐이다. 회사가 진 빚은 나몰라라 해도 된다. 그러므로 주식회사와 거래하는 사람들은 이런 특징에 미리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주식회사에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은 그 회사가 앞으로 돈 갚을 능력이 있는지 잘 따져야 한다. 기업에 부실 징후가 있는 경우, 돈을 추가로 빌려주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차라리 독을 깨버리는 게 현명할 때도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기관과 감독당국은 기업이 부실해져도 돈을 더 빌려주면서 부실을 키우는 모험을 감행하고, 종국에는 그 부실을 아무런 책임이 없는 사람들에게 떠넘기곤 했다.
LG카드 사태의 전개 과정은 오래된 필름을 다시 틀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연체율 증가로 카드사들의 유동성 문제가 표면화된 것은 2003년 3월께였다. 이때 나온 것이 이른바 ‘4·3카드사대책’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증자를 하면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증자과정을 잘 보면 앞날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상황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소액주주들은 증자에 뛰어들었지만, 대주주는 지분율을 낮춰 추가손실을 줄이는 쪽으로 움직였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직장을 잃게 될 우리사주들은 ‘우선배정’에 따라, 감당하기 벅찰 정도의 신주를 어쩔 수 없이 떠안았다.
고름도 살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연체율은 점점 높아졌고 유동성 위기가 본격적으로 닥쳤다. 감독당국은 2003년 11월 들어 대주주 지분에 담보를 잡고, 금융회사의 채권을 사실상 동결했다. 이후 LG카드 매각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LG카드를 인수하려는 곳이 없다. 돈을 얹어주면 모를까, 돈을 내고 사기에는 이미 부실이 너무 커졌다는 판단일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LG카드가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아 돈을 받아가며 살 수 있을 때까지는 결코 나서지 않을 것이다.
감독당국의 선택은 이번에도 비슷하다. 새로운 주인이 나서서 LG카드를 인수하는, 최종 해결 때까지는 문제를 덮어두는 것이다. 감독당국이 꺼낸 카드는 채권자인 금융기관들을 압박해 LG카드의 경영을 당분간 맡도록 하는 것이다. 금융기관으로서도 LG카드를 이 상태에서 청산하면 손실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청산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채권단은 LG카드에 모두 4조원을 출자전환해 LG카드의 주인이 될 계획이다. 물론 이 돈의 대부분은 출자전환 순간, 허공에 날아간다.
정부는 민간은행들이 주도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운 만큼 산업은행이 LG카드 지분의 20%가량을 갖는 방식으로 총대를 메도록 요구했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이고, 국민이 주인이다. 그렇게 카드 부실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국민들이 부실을 떠안게 되는 상황을 맞게 됐다. 재경부 당국자는 “LG카드를 청산하면 금융권의 손실이 26조7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금융권이 LG카드 인수에 협조하라는 협박성 발언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잠재부실이 커지도록 감독당국은 방치해왔다는 자기고백이다. “고름이 살 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관료들은 ‘고름도 살이 될지 모른다’고 지금도 믿는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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