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머문 엿새 동안 기쿠요마치 히카리노모리라는 지역의 숙소에 있었습니다. 반도체 공업 단지와 구마모토 시내의 딱 중간쯤에 있는 한적한 주거 지역입니다. 취재를 마치고 저녁이라도 먹으려면 20분은 걸어나가야 했습니다. 그 흔한 버스도 거의 없고, 택시마저 찾기 힘들었습니다. 3층 이상은 보기 힘들고 대부분이 낮은 건물입니다. 주택가를 살짝만 벗어나도 보이는 논과 밭, 개인 주택들이 이어지는 전형적인 일본 시골 마을의 풍경이었습니다.
반도체 공장에 조금 다가가면 풍경이 바뀝니다. 히카리노모리에서 동북쪽으로 30분 정도만 차로 가면 매끈한 신축 맨션과 고급 주택들이 보입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티에스엠시(TSMC)의 자회사 제이에이에스엠(JASM) 공장이 들어선 지 몇 해 만에 조용한 농촌 마을에 이질적인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이번 취재는 그 조짐을 포착해보려는 시도였습니다. 지방 도시가 기대하던 변화가 더디게 오는 건지, 아니면 서둘러 밀어붙인 사업이 주민들의 삶에 다다르지 못한 건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지역 상인들의 답은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우리에게 큰 변화는 없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큰 식당들이 보였지만 저녁 시간에도 손님은 한두 테이블 정도만 찼습니다.
분명하게 보인 변화는 오히려 부정적인 것들입니다. 퇴근 시간이면 좁은 시골길이 차들로 꽉 막혔고 공장 근처에서 새 도로를 놓는 공사가 한창이었지만 완공까진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습니다. 급등한 월세와 인건비로 소상공인들이 지역 밖으로 밀려나고 직원을 구하기 힘들다는 현지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기대만큼 일자리도 늘지 않았습니다. 일부 지역 대학은 반도체 관련 학부 과정을 열었지만 청년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늘어난 일자리를 차지한 건 절반 이상이 대만인이나, 도쿄·오사카 등에서 온 외지인이었습니다. 결국 구마모토 청년들도 구마모토에서의 미래를 그리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계획은 구마모토현만을 위한 건 아닙니다. 일본 전체의 미래를 그리는 국가적 계획일 겁니다. 이 개발 뒤에는 구마모토 주민들의 농지와 삶의 공간, 경제활동의 희생이 깔려 있습니다. 과실을 고루 나누려면 공장이 서기 전에 도로와 학교, 거래망부터 갖춰야 합니다. 이는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치밀한 준비가 없으면 인프라 구축은 후순위로 밀리고 그 피해와 비용은 주민 몫이 됩니다.
전남광주는 2030년 양산을 목표로 대형 반도체 클러스터를 준비하고 있습니 다. 공장을 세우는 속도보다 지역이 그 공장을 받아낼 준비가 우선돼야 합니다 . 그래야 반도체 클러스터가 일부만 좋은 빛을 누리는 개살구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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