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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혹시 가을인가요

등록 2026-10-13 15:43수정 2026-10-13 15:45
길을 걷다가 얼굴을 스치는 무언가에 깜짝 놀랐지. 나뭇가지에서 내려온 거미줄 같은 얇은 실에 대롱대롱 매달린 너는 엑소미스를 몸에 두른 채 서 있는 고대 그리스 사람을 연상시켰어. 나뭇잎 안이 궁금했지만, 황금알을 낳았던 거위의 배를 가르고 후회하는 어리석은 아저씨가 될까봐 참았지. 너는 말하더군. 이제 가을이 온다, 나처럼 옷을 껴입어도 좋다. 2025년 전남광주.

길을 걷다가 얼굴을 스치는 무언가에 깜짝 놀랐지. 나뭇가지에서 내려온 거미줄 같은 얇은 실에 대롱대롱 매달린 너는 엑소미스를 몸에 두른 채 서 있는 고대 그리스 사람을 연상시켰어. 나뭇잎 안이 궁금했지만, 황금알을 낳았던 거위의 배를 가르고 후회하는 어리석은 아저씨가 될까봐 참았지. 너는 말하더군. 이제 가을이 온다, 나처럼 옷을 껴입어도 좋다. 2025년 전남광주.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1886 년에 펴낸 소설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묘한 사건 ’ 에서 헨리 지킬과 에드워드 하이드는 한 사람이다 . 낮의 지킬이 밤엔 하이드가 된다 . 단순하게 말하면 둘은 선과 악이다 . 믿기 힘든 ( 쉬운 ) 비밀은 두 사람이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한 몸이라는 점이다 .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 그것이 지킬과 하이드만의 비밀인가 . 1988 년 시인과 촌장이 부른 ‘ 가시나무 ’ 의 첫 소절이 고백하듯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 야말로 인간을 넘은 모든 생명체의 본질이 아닐까 .

나비와 나방은 한 몸은 아닐지언정 ‘ 나비목 ’ 이라는 한집안 식구다 . 둘은 ‘ 비늘날개 ’ 라는 독특한 구조의 날개를 공유한다 .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사진을 살펴보면 , 이 날개는 마치 물고기의 비늘처럼 한 방향으로 층층이 쌓여 있다 . 어떤 장면은 가지런하게 쌓인 수천 장의 기왓장을 연상시킨다 . 아니 , 그 자연스러운 층층의 모습은 매끈한 기왓장보다 강원도 산골의 너와집 나무판자를 닮았다고 하는 게 나을 듯하다 . 너와집 지붕에 쌓인 판자들이 비를 흘려보내 집을 젖지 않게 하듯 , 녀석들의 비늘도 빗방울을 흘려보내 날개를 젖지 않게 한다 . 이 비늘은 독특한 색소를 품고 있는데 , 빛을 산란하고 흡수하면서 날개에 아름다운 무늬와 광채를 만든다 . 하나 연약한 탓에 손으로 만지면 부스러져 가루처럼 묻어난다 . 어린 시절 내게 이 가루는 공포였다 . 날개 가루가 묻은 손으로 눈을 비비면 장님이 된다는 얘기를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 뱀이 나올까봐 밤에 감히 휘파람을 불지 못했던 것처럼 .

나비와 나방은 한집안 식구인데도 , 낮의 나비가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곤충인 반면 , 밤의 나방은 싫어하는 곤충의 대표주자다 . 하지만 둘은 공통점이 많기에 억지로 나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

나비 못지않게 나방도 식물의 꽃가루를 날라 열매 맺기를 돕는다 . 하지만 그건 성충일 때 일이고 , 애벌레일 때는 무지막지한 식욕으로 잎을 갉아먹어 농부를 한숨 쉬게 한다 . 알에서 갓 깨어난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기 전까지 무려 3 천 배나 몸무게를 늘린다 .

어딜 가나 미움받는 어둠의 존재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 이는 사람과 짐승이 매한가지다 . 편견 어린 사람의 눈으로 볼 때 , 예쁨받는 나비가 도드라진 날개 장식에 공들였다면 , 미움받는 나방은 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위장술을 발전시켰다 .

숲속에서 나방은 변신의 대가다 . 기생재주나방은 낙엽 그 자체다 . 자루나방 애벌레는 작은 나뭇가지와 이끼 , 모래 등을 켜켜이 쌓아 등에 짊어진다 . 초미니 ‘ 하울의 움직이는 성 ’ 과 닮았다 . 버프팁나방은 부러진 나무토막과 똑같고 , 열대지방에 사는 대형종 아틀라스나방의 날개는 뱀 머리와 너무 닮아 천적을 물리친다 .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 내 안에도 나비와 나방이 함께 산다 . 둘은 다르고 , 닮았다 .

어지간히 더운 여름이었다 . 지구온난화의 서막을 체감한 기분이랄까 . 여름의 끝에서 우연히 만났던 주머니나방의 낙엽외투가 마치 가을 신사의 바바리코트처럼 보였다면 , 내 눈이 이상한 걸까 .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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