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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국방댓글지원대가 낫겠네

부글부글
등록 2013-07-23 12:20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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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군대 가는 꿈을 꿔요. 차라리 가위에 눌리는 게 나을 듯해요. 마감 때문에 엄청 쪼이면 어김없이 꿈속에서 훈련소로 향하고 있으니 말이죠. 악몽도 이런 악몽이 없어요. 군대 두 번 다녀온 싸이 형의 ‘멘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순간이에요. 얼마 전에는 꿈속에서 아예 해외 파병을 갔어요. 꿈은 역시 크게 꿔야 제맛이에요. 저녁에 봤던 미국 할리우드 전쟁영화의 유명 주인공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어요. 못 알아듣는 영어를 벙긋했다가 주인공들에게 적으로 몰려 죽기 전까지는 좋았으니까요. 군대 가는 꿈, 악몽 맞아요.

그런데 요즘 연예병사들은 군대 가는 꿈보다 더 무서운 악몽을 꾸고 있을 것 같아요. 국방부가 지난 7월18일 연예병사 관리가 미흡했던 것에 책임을 통감하며 ‘연예병사 제도 폐지’를 발표했기 때문이에요. 얼마 전 연예병사들의 근무 실태가 방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거든요. 전국 예비역들의 뚜껑을 열리게 할 만했어요. 지방 공연을 간 연예병사는 새벽에 숙소를 나와 안마시술소를 찾아 배회했어요. 연예병사에게 스마트폰은 기본이었어요. 국방부는 문제가 된 연예병사 7명을 국방부 근무지원단 징계위원회에서 중징계하기로 했대요. ‘중징계=영창 갈 수도 있다’는 말이래요.

국방부는 아예 이번 기회에 연예병사가 있는 ‘국방홍보지원대’를 없애기로 했어요. 그리고 연예병사 15명을 모두 야전 부대로 보내겠다고 했어요. 영창에 전출. 군인이 꿀 수 있는 최악의 꿈이에요. 국방부는 군홍보를 해야 하는 연예병사들이 오히려 군의 명예를 깎아먹었다며 엄중한 처벌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어요. 그런데 이 문제, 한두 번 지적됐던 것도 아니에요. 연예병사가 가는 휴가나 외출·외박 등이 일반 병사보다 많고, 최근 제대한 가수 비(정지훈)는 근무시간에 배우 김태희와 연애도 했던 걸 보면 말이죠.

요즘에는 통제에 실패한 연예병사보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샘 해밍턴이 국방홍보에 더 기여할 것 같아요. 그러지 말고 국방부도 이참에 국방홍보 정책을 바꿔보도록 해요. 연예인들에게 솔깃한 복무 조건을 제안해봐요. 우선 100% 연예인으로만 구성된 ‘국방댓글지원대’를 창설하도록 해요. 이 부대 소속 연예인에게는 군 복무 기간에도 자유롭게 방송 활동을 하도록 허락해줘요. 군 간부가 데리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문제 생길 일이 적어요. 그 대신, 국방댓글지원대원인 연예인은 매일 국방부에 유리한 수백 건의 댓글·트윗 등을 날리는 일을 해야 해요. 재택근무도 가능해요. 그 대신, 오피스텔을 빌려야 해요. 이유는 없어요. 그냥 부대 전통이거든요.

하긴, 국방부가 연예병사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을 보면, 발전 가능성이 무한대로 보여요. 군 간부 등 윗선은 쏙 빠진 채 연예병사에게만 징계를 내리고 있으니까요. ‘셀프 개혁’에 이어 ‘셀프 영창’이라는 말도 나올까봐 겁나요. 에잇. 퉤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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