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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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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회 살릴 ‘형용모순’ 필요해

영국·그리스 등 ‘확장적 긴축정책’ 펼친 모든 나라 경제 상황 더 나빠져
‘인위적 경기부양책’ 넘어 경제구조 개혁할 창의적 ‘형용모순’이 절실해
등록 2013-04-07 18:00 수정 2020-05-03 04:27

‘둥근 사각형’이나 ‘침묵의 소리’와 같이 양 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단어가 함께 놓여 있 을 때, 우리는 그것을 형용모순(Oxymoron) 이라 부른다. 형용모순은 논리적 오류이거나 수사학적 장식일 때도 있지만, 세상사의 복 잡한 측면이나 사물의 숨겨진 이면을 새롭게 밝혀주기도 한다. 경제와 관련한 용어인 ‘사 회적 기업’도 형용모순이다. 기업을 이윤 극 대화의 발상으로만 보려는 사람들이라면, 기 업에 사회적이라는 용어를 붙이는 순간 기업 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고 반론을 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먼저 고려하면 서도 경쟁의 마당에서 살아남은 사회적 기업 은 엄연히 현실에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사 회적 기업이 처음부터 있지는 않았다. 통념 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가능성을 꿈 꾸고, 기업의 운영 원리를 성실하게 공부해 가며 사회적 가치의 구현 방식을 치열하게 고 민했을 많은 이들의 분투가 더해졌기에 가능 했을 터다. 세상을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보 려는 사람들에 의해 앞으로도 형용모순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경제부처 장관 등이 지난 3월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경제부처 장관 등이 지난 3월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경기부양책 썼던 나라들 대부분 경제 회복

오늘날 전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주목을 끌었던 ‘확장적 긴축정책’(Expansionary Austerity)이란 용어도 형용모순의 하나다. 불황의 원인은 돈을 쓰려는 사람이 적은 데 있으므로, 깊은 불황에서 경기를 회복시키 려면 정부가 이들을 대신해서라도 돈을 풀 어야만 한다는 것이 경제학의 오랜 상식이었 다. 반면 ‘확장적 긴축정책’이란 용어를 사용 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돈을 푸는 경기부양 책이 아닌 긴축정책이 불황의 해법이라고 믿 는다. 이 용어 역시, 사회적 기업과 마찬가지 로, 기존 경제학의 통념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긴축정책을 강조 하는 것은 균형재정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 이다. 과도한 정부 부채와 이로 인한 재정 적 자가 경제위기나 불황을 가져온 주범이므로 위기를 극복하려면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한 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긴축 정책으로 재정 적자가 줄어들면 앞으로 세 금을 덜 내도 된다고 예상해 고용과 투자를 한껏 늘리게 된다. 또한 정부의 채무불이행 위험 감소로 금리가 낮아지고, 이로 인해 민 간이 소비나 투자를 더욱 늘려 마침내 경기 회복이 찾아옴으로써, 긴축이 경기를 확장 시킨다는 ‘확장적 긴축정책’의 전체 그림이 완성된다.

그런데 ‘확장적 긴축정책’은 옹호자들의 기대와 달리 현실에서 참담한 성적을 거두었 다. 2008년 위기 이후 ‘확장적 긴축정책’을 펼쳤던 모든 나라는 경제 상황이 더욱 나빠 졌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 이후 보수당 정부 가 긴축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펼쳤던 영 국은 어렵게 되살아났던 경제가 다시 크게 후퇴했으며 그토록 강조했던 재정 적자까지 도 오히려 늘어나고 말았다. 채권국들의 압 력에 못 이겨 고강도의 긴축정책을 펼쳤던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이탈리아도 실업 자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끝이 안 보이는 불황의 나락에 빠져 있다. 반면 긴축정책 대 신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선택한 나라들 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위기 이 전 상태를 회복했다. 공화당의 반대로 대대 적인 경기부양책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는 못 했지만 그렇다고 긴축정책을 대대적으로 펼 치지도 않은 미국은 위기 이전 수준으로까 지 되돌리지는 못했으나 영국에 비해서는 형 편이 훨씬 좋다.

한국 경제의 당면 문제는 구조 변화

사실 ‘확장적 긴축정책’은 정부 지출의 축 소가 큰 폭의 금리 인하를 가져오고 소비나 투자가 금리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에 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특히 현재와 같 이 사람들의 불안 심리가 팽배하고 대량 실업이 존재하는 깊은 불황에서는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량 실업과 재정 적자가 공존할 때는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으로 경기를 회복하는 데 주력하고, 재정 적자 문제는 중·장기적 차원에서 시간을 두고 해결해야 한다는 경제학자들의 중론이 옳았음을 유럽에서의 이번 실험이 다시 입증한 셈이다. 이처럼 문제 많은 ‘확장적 긴축정책’이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채택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영역을 축소하고 이를 시장으로 대체하려는 보수주의자들의 기획과 관련이 깊다. 위기의 원인이 방만한 재정에 있으므로 그 해결책 또한 방만한 재정을 바로잡는 것이어야 한다는 재정 적자 주범 담론이 그 이론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단순성으로 높은 설득력을 발휘했다는 점, 그리고 정부 지출 확대로 세금 부담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 사람이 많았다는 점도 ‘확장적 긴축정책’이 지지를 받은 이유다.

질 낮은 일자리와 미래 불안이 한 원인

유럽이나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의 경우에도 경제 회생의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한 과제다. 최근 새 정부는 2013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현재의 경기둔화 기조를 반전시키지 않는 한 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자리 창출과 민생 안정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적극적 거시정책’으로 표현된 경기부양책을 펼쳐 경기를 회복시키겠다는 기본 방침은 재정 적자를 줄이는 긴축정책으로 경기를 회복시키려던 해외의 경제정책 당국에 비해서는 바람직한 자세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도 많다. 새 정부가 준비 중인 대책은, 여러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예산의 추가 확보와 같은 경기부양책이다. 경제가 심각한 경기후퇴 국면에 진입하고 있거나 극심한 불황 상태여서 실업자가 양산되고 민간의 수요가 위축돼 있다면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경제가 아주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경기의 저점을 통과해 미약하나마 회복 중인 상황이며 실업률 또한 과거 호황 때와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회복이 되더라도 그동안의 추세를 보면 성장률이 크게 높아지기는 어려운데, 이로부터 우리 경제의 당면 문제는 경기순환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 변화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기부양책은 성장률의 반짝 상승을 가져올 수는 있어도 저성장 기조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부동산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주가를 부양하는 등 ‘인위적인 경기부양책’까지 꺼내든다면 최악의 선택이 된다. 자산시장의 거품만 키우고 가뜩이나 문제인 가계부채를 더욱 악화시킴으로써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성장률 둔화는 소득분배의 악화나 내수 침체 그리고 새로운 성장동력의 부족 등과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또한 현재 우리가 처한 어려움은 실업률이 높아서라기보다는 일자리의 질이 나쁘고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하더라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중소기업이나 사회적 경제 분야에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하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며, 사회적으로 더 큰 가치를 창출할 곳으로 자금이 흐르도록 금융 생태계를 새롭게 가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문제의식만으로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란 물론 난망한 일이다. 경제의 틀을 바꾸고 구조를 개혁하며 더 나은 경기 규칙을 모색할 수 있는 창의적인 ‘형용모순’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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