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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이 경제민주화 성공하려면

등록 2012-07-11 18:20 수정 2020-05-03 04:26
<B>성장의 한계</B><BR>도넬라 H. 메도즈 외 지음, 김병순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2만3천원

성장의 한계
도넬라 H. 메도즈 외 지음, 김병순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2만3천원

돌아온 김종인의 바람이 심상치 않다. 언론들은 연일 그와 관련된 보도를 쏟아낸다. 김종인 박사는 곧 공식 출범할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내정됐다. 홍사덕 전 의원과 함께 투톱을 이뤄 정책 분야를 관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민주화는 4·11 총선에서 여야가 전면에 내세운 공약이자 12월 대선에서도 핵심 공약이 될 터인데, 김 박사는 경제민주화의 원조 격이다. 1987년 경제민주화의 기초가 되는 헌법 119조 2항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정부가 국가경제의 균형성장과 적정한 소득분배,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 조화를 이루려면 재벌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소신이다.

“경제민주화 박근혜가 그나마 낫다”

김 박사는 박근혜 대선캠프 사무실이 첫선을 보인 날부터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재벌 대변자’라고 공격했다. “이 대표는 재벌에 오래 종사했기 때문에 그쪽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모피아(금융관료) 출신으로, 공직을 떠난 뒤 대우그룹 산하 경제연구소의 소장을 오랫동안 맡았다. 직격탄을 맞은 이 원내대표는 “김종인이 말하는 경제민주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우리나라에서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맞받아쳤다.

언론들은 두 사람 간의 논전을 요란하게 보도했다. 일부에선 기싸움 차원을 넘어 당내 노선투쟁과 권력투쟁 양상을 띠고 있다고 부풀린다. 19대 국회 출범 이후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 참석자들이 경제민주화 방법론을 놓고 갑론을박하며 흥미를 유발했던 것과 비슷하다. 특히 친박계의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재벌 개혁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선결조건”이라고 강조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원조 재벌당으로 불려온 새누리당이 오히려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주도하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새누리당으로서는 ‘노이즈마케팅’이 크게 성공한 셈이다.

새누리당의 총선 이후 경제민주화 관련 움직임들은 ‘잘 짜인 역할극’을 보는 듯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 출신인 이혜훈 최고위원을 오랫동안 지켜본 한 경제학자는 그의 최근 언행에 대해 “전혀 딴사람을 보는 것 같다”고 놀라워한다. 이한구 원내대표도 진보는 아니지만 골통보수도 아니다. 대기업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누구보다 따가운 소리를 많이 해온 인물이다. 다만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로서 ‘재벌 표’를 잡는 안전판 구실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보면 김종인 박사도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흥행에서 빠질 수 없는 배역인 셈이다. 박근혜 캠프의 좌장 격인 홍사덕 전 의원은 “경제민주화의 구체적인 정책을 놓고 치열한 논쟁, 토론이 있어야 한다. 말릴 생각이 전혀 없다”며 오히려 논쟁에 불을 지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바람은 그냥 바람일 뿐이다. 관건은 김 박사의 흥행 바람이 진짜 경제민주화의 결실로 이어지느냐다. 김 박사는 지난 3월 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사임할 때 “새로운 정강정책을 만들었다면 그것을 실천할 사람이 필요한데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이 없다”며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과거로 회귀하려는 안일한 사고를 가지면 또다시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랬던 그가 다시 새누리당에 복귀한 게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심하게 손가락질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의 목적은 오직 하나, 경제민주화의 실현이다. 자리에 대한 욕심도 없다.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는 물론 그 흔한 비례대표 의원직도 사양했다. 그리고 원래 경제민주화는 총선이 아니라 대선에서 결판이 난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김 박사는 총선 전 기자와 만났을 때 “총선에서 경제민주화를 위한 근본 대책을 말할 생각은 없고 대선 후보가 결정되면 하겠다”고 속내를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경제민주화는 대통령의 의자가 가장 중요하다”며 “(여야 대통령 후보 중에서) 그나마 박근혜가 가장 낫다”고 말했다.

박근혜식 ‘신의정치’ 지켜질까

그의 바람대로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그의 손을 다시 잡았다. 그렇다면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는 성공할 것인가?

결과를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박근혜 전 위원장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생각이 분명치 않다. 박 전 위원장은 4·11 총선을 앞두고 당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 개념을 도입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경제민주화는 꼭 필요하고 새누리당은 이를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의 청사진을 제대로 내놓은 적은 없고 단편적 언급만 했을 뿐이다. 그는 지난 1월 기자간담회에서 “편가르기는 안 되지만 약자를 지원하고 그들의 경쟁력을 강화해주기 위해 정부와 의회가 나서야 한다. 강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2009년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에서는 “정부 역할과 기능이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 관치주의는 안 되지만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될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은 정부가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의 구체적인 경제민주화 그림은 대선 출마 선언 때 선보일 것이다.

김종인 박사가 경제민주화를 가장 확실하게 이루는 방법은 차기 정부에서 직접 경제 수장을 맡는 것이다. 그는 10년 전인 2003년 초에도 기회가 있었다. 재벌 개혁을 내걸고 승리한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에 직접 김 박사와 만났다. 하지만 노 당선인의 최종 선택은 재벌 개혁과는 거리가 먼 모피아 출신이었다. 결국 재벌 개혁은 용두사미로 끝났고, 노 대통령은 지지자들로부터 오히려 재벌에 투항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종인 박사가 차기 정부에서 경제 수장을 맡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김 박사 스스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내가 무엇을 기대하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또 기자에게 “다음에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이 집권에 성공해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전철을 밟지 말란 법도 없다. 박 전 위원장이 경제민주화 공약을 버린다면, 토사구팽 1호는 김종인 박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한나라의 한신은 유방을 도와 중국을 천하통일하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지만, 결국 왕조를 확립하고 후손에게 천하를 안전하게 물려주려는 유방에 의해 허리를 잘리는 요참형을 당했다. 어떤 이들은 ‘한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박근혜식 신의정치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지만 두고 볼 일이다.

여야, 여러 경제민주화 정책에서 궤 같아

김종인 박사가 경제민주화도 이루고, 토사구팽도 피하는 양수겸장의 길이 있다.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집권 이후로 미루지 말고 오는 9월 19대 첫 정기국회부터 실천하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에 대해 물타기 내지 흉내내기라고 비판할 정도로 경제민주화에 의지를 보인다. 여야가 힘을 합치면 경제민주화를 위한 법과 제도적 기초를 만드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쉬워 보인다. 실제 여야는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등 일부 정책을 제외하고는 재벌 개혁과 대·중소기업 상생, 공정거래, 영세상인 보호, 비정규직 보호 등 여러 경제민주화 정책에서 궤를 같이한다. 유권자들은 여야가 정기국회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서 12월 대선에서 가장 확실한 ‘경제민주화 대통령’을 선택하면 될 것이다.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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