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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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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눈치만 보다 면죄부 준 동반성장위

[곽정수의 경제 뒤집어보기]정운찬 사퇴 뒤 동반성장지수 발표한 유장희 2대 위원장의 동반성장위
점수·순위 공개 않고 성적 부풀리기 등 재벌 들러리 전락했다 비판 많아
등록 2012-05-16 09:44 수정 2020-05-0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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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희 동반성장위원장이 대기업들의 눈치를 보다가 면죄부만 준 꼴….”

중소기업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5월10일 동반성장위원회의 동반성장지수 발표를 지켜보다가 말끝을 흐렸다. 유장희 위원장은 정운찬 초대 위원장이 지난 3월 말 사임한 뒤 제2대 동반성장위원장에 임명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에서는 신임 위원장에 대해 일제히 환영 일색의 논평을 내놓았다. 전임 정운찬 위원장과 사사건건 각을 세우며 대립하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당시 동반성장위 주변에서는 친대기업 성향의 신임 위원장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제2기 동반성장위의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동반성장지수 발표는 그런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객관성·공정성 의심되는 동반성장위 지수

동반성장위는 전체 평가 대상 대기업 56개사를 ‘우수·양호·보통·개선’의 4등급으로 평가했다. 이 가운데 최하등급인 ‘개선’은 7개사로, 전체 평가 대상의 12.5% 불과하다. 발표대로라면 대다수 대기업은 동반성장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는 셈이다. 유장희 위원장은 심지어 ‘개선’ 등급을 받은 대기업들도 옹호했다. “평가 결과가 ‘개선’으로 나온 대기업들도 동반성장에 대한 CEO(최고경영자)의 의지와 열의가 확고한 기업들이다. 동반성장이 미흡한 기업으로 오해하는 일이 없기를 각별히 당부한다.” 이는 정운찬 전 위원장이 불과 40일 전 사임하며 한 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시 정 전 위원장은 재벌 대기업들의 동반성장 의지가 부족하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사회적 상생을 위한 어떤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 전경련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발전적 해체 수순도 생각해볼 수 있다.”

누구 말이 옳은 것인가? 우선 동반성장지수 평가 대상 업체들이 동반성장에 대한 CEO의 의지와 열의가 확고한 기업이라는 유 위원장의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 동반성장지수 평가 대상은 매출액 상위 200대 대기업 중에서 업종 특성과 파급효과 등을 고려해 선정한 것일 뿐이다. 또 동반성장지수 평가 결과는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하도급거래 관행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우리 현실과 적지 않은 괴리가 있다. 당장 최상위 ‘우수’ 등급을 받은 6개 대기업 중에서 삼성전자, 현대차, 기아차는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불공정 하도급거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 혐의로 곧 공정위의 제재를 받을 운명이다. 삼성전자는 부당 발주 취소 혐의가 드러나 제재를 기다리고 있다. ‘우수’와 ‘양호’ 판정을 받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삼성SDI, LG전자 등도 이날 공정위가 발표한 부당 발주 취소 혐의가 있는 전기·전자 업종 대기업 명단에 포함돼 있다. 앞에서는 동반성장 노력을 잘했다고 박수를 받는 대기업이 뒤로는 불공정 하도급거래 혐의로 조사를 받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반성장지수 산정 과정을 들여다보면 객관성·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그동안 56개 대기업의 동반성장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평가 점수를 순위대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점수제와 순위제를 대기업 ‘줄세우기’라고 강력히 반대해왔다. 동반성장위가 전경련의 요구를 100% 수용한 것은 아니지만, 점수와 순위를 공개하지 않고 전체 평가 대상의 87.5%에 ‘보통’ 이상의 등급을 부여함으로써 사실상 재계의 요구를 들어준 셈이 됐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상위 등급만 발표하자는 대기업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은 것만도 성과 아니냐”고 말한다.

“대기업에 희생만 강요하지 않겠다”

둘째는 등급 부여의 공정성이다. 동반성장지수는 공정위의 상생협약 이행실적 평가와 동반성장위의 1·2차 협력업체 체감도 조사를 각각 평가해 등급화한 뒤 50%씩 반영해서 합산한 것이다. 공정위는 상생협약 이행평가를 ‘A(우수)·B(양호)·C(보통)·D(개선)’의 4등급으로 구분했다. A등급의 경우 90점대 점수를 얻은 기업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동반성장위의 체감도 평가에서는 ‘우수’ 등급을 받은 기업들의 점수가 80점대 이상은 거의 없고 70점대가 대부분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소기업연구원의 한 박사는 “‘우수’나 ‘양호’ 기업들의 점수가 공개되지 않아 정말 잘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셋째는 공정위 평가와 체감도 조사의 합산 방식이다. 공정위의 평가와 체감도 조사에서 모두 ‘우수’ 평가를 받은 기업에 최종적으로 ‘우수’ 등급을 부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동반성장위는 공정위 평가와 체감도 조사에서 각기 ‘보통’과 ‘개선’ 평가를 받은 경우, 최종 등급을 ‘보통’으로 부여해 ‘성적 부풀리기’를 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절대평가를 상대평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일부 자격이 부족한 기업에도 더 나은 등급이 부여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만약 공정위 평가와 체감도 조사에서 어느 한쪽은 ‘보통’을, 다른 한쪽은 ‘개선’을 받은 기업을 모두 ‘개선’으로 분류했다면 전체 ‘개선’ 등급 기업은 지금의 2~3배로 늘어났을 것이다. 실제 공정위 간부는 “공정위 평가에서 ‘개선’ 등급을 받은 업체는 사실상 동반성장 노력을 거의 하지 않은 최악의 기업들”이라고 말했다.

동반성장지수 평가의 공정성이 의문시되자 정부가 ‘우수’ 및 ‘양호’ 등급 대기업들에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우수’ 등급 기업에는 하도급 분야 직권·서면실태조사가 1년간 면제된다. ‘양호’ 등급에는 하도급 분야 서면실태조사가 1년간 면제된다. 공공입찰이나 세무조사에서도 우대를 받는다. 동반성장지수가 부진한 기업에 정부 사업 참여시 불이익을 주겠다는 애초 약속이 흐지부지된 것도 논란거리다.

동반성장위는 업종별 특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평가지표를 보완하고, 평가 대상 기업을 74개로 확대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반성장지수 평가 논란은 유장희 위원장 체제의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유장희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대기업의 성장 둔화와 중소기업의 이익률 정체로 인한 일자리 문제와 부의 편중으로 인한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동반성장”이라면서도 “대기업에 희생만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꼬리를 내렸다. 대기업을 강력히 견인해도 동반성장이 쉽지 않은 터에 대기업의 눈치를 보는 동반성장위가 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일 수 있다.

구걸식 접근법으로는 동반성장 요원

2기 동반성장위의 한계는 이명박식 동반성장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재확인해준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중소기업 동반성장과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법과 제도를 통한 정부의 주도적 역할 대신 대기업의 인식 전환을 통한 자율적 협력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내내 더욱 심해진 양극화는 이런 구걸식 접근법으로는 동반성장이 요원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정운찬 전 위원장도 사임하는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강력한 경고를 남겼다. “정부가 시장 자율이란 말로 대기업을 방치하고 있다. 부의 균형추가 심하게 기울면 사회적 갈등은 폭발하게 될 것이다.” 동반성장위가 근본적인 인식 전환을 하지 않는 한 대기업의 들러리로 전락해 고사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jskwak@hani.co.kr

한겨레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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