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다. 영업정지 결정이 내린 다음날, 아침을 굶으며 줄을 섰다. 직원으로 보이는 누군가라도 나타나면 격렬하게 항의했다. 결국은 눈물바람이 된다. “예금으로 먹고산다” “당장 병원비가 필요하다” 등 생계형 항의부터 “영업정지는 없다고 그랬다” “후순위 채권을 은행 채권인 줄 알고 속아 샀다” 등의 한풀이까지 부산에서 들은 그대로다. 부산저축은행의 7개월 전 풍경이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부실대출도 그대로다. 건설 경기 악화로 저축은행이 흔들린 것도, 부실대출 규모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는 것도 똑같다. 제일저축은행은 서울 강남 유흥업소 종업원들의 선불금까지 담보로 잡고 업주들에게 1천억원이 넘는 돈을 대출했다. 다른 저축은행들도 부실대출에는 할 말이 없다.
“알고 당해 더 분하다”는 말은 영업정지 전 VIP 인출 정황이 드러나며 분노로 변한다. 그때 그 금융감독원장도 그대로다. 영업정지 전 특별고객에게 영업정지를 알리거나 재산을 빼돌렸을 가능성에 대해 “그런 인출이 소수 있었다”고 답한다. 소수니까, VIP다. 그걸 알고도 놔뒀나. 눈 뜨고 코 베였다.
똑같다. 꺾었다. 수갑을 채우고 팔을 들어올리도록 해 머리와 상반신이 앞으로 쏠리게 하는 이른바 ‘날개꺾기’다. 그것도 지난해와 똑같은 서울 양천경찰서다. 양천서 관계자는 “꺾였다는 피의자는 처음에 절도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강도강간 혐의까지 드러나 12년형을 선고받은 죄질이 아주 불량한 사람이다. (그 피의자가) 형량을 줄이려고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고 주장했다. 피의자의 인생사를 걸고 넘어지는 해명도 지난해와 똑같다. 중요한 것은 꺾었고 꺾였느냐다. 죄를 인정하지 않거나 무죄를 주장하는 피의자를, 공권력의 이름으로 아니 ‘짭새’들의 꼰대 근성으로 꺾었느냐다. 경찰 수사라도 받을라치면 일단 유연성부터 길러야 하는가. 경찰 출두 전 모든 피의자는 요가학원부터 다니라는 말인가. 살아남기 위해 중요한 건, 유연성이다. 눈 뜨고 날개 꺾인다.
똑같다. 15년 전 강원도 철원에서 훈련병으로 소대장 정신교육을 받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초코파이는 종교다. 정을 담아 묻는다. “주적이 누구냐.” 답은 “북한!” “땡.” “북괴!” “딩동댕.” 2011년 국방부는 ‘종북세력 실체인식’을 특별교육한다. “자유민주주의를 흔드는 내부의 적, 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가”를 묻는다. 들여다보면 15년 전이 낫다. 그때만 해도 대한민국 정부와 갓 육사를 졸업한 소대장의 말이 다르지 않았는데, 초코파이를 상품으로 걸고 ‘주적이 누구냐’고 묻는 소대장의 말에는 머뭇거림이 있었는데. 지금은 국회가 진상 규명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고 2003년 정부가 공식 사과한 제주 4·3 사건을 종북세력의 활동 사례라고 한다. 2007년 재심으로 과거 사형이 집행됐던 8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인민혁명당 사건을 암약한 종북세력으로 가르친다. 촛불을 든 장병들이 있을 텐데, “시대착오적인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암적인 존재”라며 2008년 서울 청계광장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장면을 보여준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안다. 국방부도 안다. 눈 뜨고 속인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윤석열, 4·10 총선 전 국방장관·국정원장에 “조만간 계엄”
‘한덕수의 후회’ 유효기간은 끝났나 [한겨레 프리즘]
계엄의 밤, 사라진 이장우 대전시장의 11시간…“집사람과 밤새워”
아직도 계엄 지지 댓글에 ‘좋아요’ 누르는 박선영 진화위원장
‘내란의 밤’ 4시간 전…그들은 휴가까지 내서 판교에 모였다
안철수 “한덕수, 내란 특검법은 거부권 행사 않는게 맞다”
롯데리아 내란 모의…세계가 알게 됐다
[단독] ‘육사 카르텔’이 장악한 정보사, 지휘관 따돌리고 내란 주도
조국혁신당 “한덕수, 내란 세력 제압 가장 큰 걸림돌”…탄핵안 공개
100만원 티켓 ‘투란도트’ 파행…연출가 떠나고, 관객 환불 요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