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운찬 전 총리의 마음은 가볍지 않다. 지난해 말 민간 주도로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의 구심체 역할을 맡을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한 뒤 두 달여 준비를 거쳐 곧 동반성장지수 시행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과 양극화 개선이라는 사회적 기대에 부응할 만한 내용이 나올지는 불확실하다. 핵심인 대기업의 동반성장 약속에 대한 실적 평가 방식은 그동안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온 공정거래위원회의 ‘동반성장 및 공정거래 협약 평가’를 거의 차용했다. 또 대기업이 반대하는 기업별 평가점수 공개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그나마 평가결과도 내년에나 나올 전망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도 실효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듯하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진출해도 조정 수단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MB 레임덕에 대기업 호응 떨어져
정 전 총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다. 양극화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지만, 주로 경기회복기에 부각되는 특성이 있다. 대기업이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반면 중소기업의 회복세가 더뎌 격차가 심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2010년이 바로 그 시기였다. 하지만 경기회복세가 둔화되는 올해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양극화가 완화된 것처럼 착시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정치적 환경도 달라진다. 지난해에는 MB 정부의 기세에 눌려 대기업들이 따라오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앞으로 레임덕이 본격화하면, 대기업의 호응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지난해 말 동반성장위 출범식에 참석한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이 “위원회의 법적 근거가 뭐냐”고 노골적 불만을 드러낸 것은 상징적이다.
삼성전자의 2010년 순이익은 16조원(연결 기준)으로 사상 최대였다. 매출액 순이익률도 10.4%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대다수 임직원들은 1월 말에 두둑한 보너스를 챙겨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회사는 지급 내역을 철저히 감췄다. 표면적 이유는 부서별로 많이 받는 곳과 적게 받는 곳이 있고 심지어 못 받는 곳도 있어 위화감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삼성만 돈잔치를 벌인다는 지적을 받을지 모른다는 부담이 더 컸을 것이다. 대기업의 막대한 이익이 ‘협력업체 쥐어짜기’ 등 불공정거래의 결과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많은 게 현실이다. 2월부터 삼성전자 사장단이 두 달에 한 번씩 협력업체들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듣는 ‘동반성장데이’ 시행에 들어간 것도 이를 의식한 행보다.
동반성장위가 양극화 해소에 획기적 성과를 거두고, 좋은 실적을 거둔 대기업이 임직원들에게 당당히 보너스를 지급할 수 있는 묘책은 없을까? 대기업의 막대한 이익 중 일부를 협력업체들에 나눠주는 ‘초과이익배분제’(PS) 도입을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827호 경제 ‘나눠쓰기 머뭇거리는 또 하나의 가족’ 참조). PS를 통해 거래 과정에서의 불공정성을 사후적으로 보정하는 것이다.
PS는 기업이 연초에 세운 이익목표를 초과달성할 경우 그 일부를 임직원에게 인센티브로 주는 제도다. 현재 삼성은 초과이익의 20% 안에서 임직원에게 실적에 따라 최대 연봉의 50%까지 주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초에 실시한 PS는 1조3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협력업체들에 대한 PS 시행은 여러 장점이 있다. 첫째, 친시장적이어서 대기업들의 반발 명분이 적다. 대기업의 초과이윤을 만들어낸 공로자는 경영자, 종업원, 협력업체다. 따라서 PS 대상을 임직원은 물론 협력업체로 확대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중소기업에 납품단가나 수익률을 일정 수준 이상 무조건 보장하는 방안에 비하면 대기업들의 부담이 훨씬 적다. 도요타자동차는 좋은 본보기다. 몇 년 전 일본의 도요타 본사를 방문했을 때 들은 얘기다. 도요타는 원가절감 운동인 ‘CCC21’로 차량 자재 및 부품비의 30%를 절감했는데, 그 수익을 3등분해서 각각 소비자와 부품업체, 회사를 위해 썼다는 것이다.
둘째, PS는 협력업체들의 공헌도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인센티브 성격이다. 각 협력업체들의 공헌도에 비례해 PS를 지급하면 더 큰 경영혁신 노력을 유도할 수 있다. 또 그 혜택이 다시 대기업에 돌아오는 선순환이 이뤄져, 동반성장 취지에 잘 맞는다.
셋째, 협력업체들의 수익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어,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극복하는 확실한 방안이 된다. PS를 통해 협력업체의 이익률이 크게 개선되는 반면, 그로 인한 대기업들의 이익률 하락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대상으로 협력업체 PS 시행 효과를 살펴보자. 삼성전자는 2009년 6조2081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순이익률이 6.92%였다. 반면 부품업체 499개사(재무제표가 확인되는 회사 기준)의 순이익률은 3.12%로 절반 이하였다. 만약 삼성전자가 임직원에 대한 PS인 1조3천억원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7500억원을 협력업체에 배분한다고 가정하자. 삼성전자의 순이익률은 6.1%로, 0.82%포인트 낮아진다. 반면 협력업체들의 순이익률은 5.64%로 거의 2배 수준으로 뛰어오른다. 현대차의 경우 2009년 2조9600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9.3%의 순이익률을 기록했다. 반면 협력업체 257개의 순이익률은 2.73%로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만약 현대차가 순이익의 15%(4440억원)를 떼어내 협력업체들에 PS로 분배할 경우 순이익률이 7.9%로, 1.4%포인트 낮아진다. 반면 협력업체의 순이익률은 5.04%로 2배 수준으로 껑충 뛴다.
PS 정착하면 대기업에도 이익 ‘선순환’시뮬레이션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협력업체 PS 비중은 전체 순이익의 12~15% 수준이었다. 결국 대기업 이익의 8분의 1 정도만 양보하면 2~3%에 불과한 협력업체의 이익률을 5~6%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중소기업들은 지금처럼 2~3%의 낮은 수익률로는 연구·개발 투자, 우수 인재 확보 등 경쟁력 제고 노력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한다.
일부에선 PS 제도의 실패 가능성도 제기한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이익목표를 처음부터 무리하게 설정해 초과이익이 나오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임직원도 PS를 못 받게 돼 내부 불만이 쌓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 둘째, 중소기업이 PS를 생산성 향상에 쓰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빼돌려, 대기업의 생산성 향상으로 피드백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든 경우다. 하지만 이 역시 가능성은 적다. 중소기업 사장들이 이익을 빼돌리는 것은 대기업에 뺏기지 않기 위함이다. 만약 대기업이 생산성 향상 노력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해주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면, 굳이 이익을 빼돌릴 이유가 없다.
PS 확대 시행 성공을 위해서는 고려할 몇 가지 사안들이 있다. 첫째, 대기업의 자율시행이 바람직하다. 취지가 좋더라도 법이나 제도로 강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둘째, 범사회적 캠페인을 통해 대기업의 참여를 적극 유도해야 한다. 동반성장위가 유력 대기업과 PS제를 협력업체에도 시행한다는 협약을 맺는 방식도 권할 만하다. 공정위가 대기업과 맺어온 ‘동반성장 및 공정거래 협약’의 추진 방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셋째, PS로 일종의 펀드(가칭 동반성장펀드)를 조성해 간접 지원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기술적으로 직접 지급이 어려울 때 대안이 될 수 있다. 펀드는 협력업체들의 기술 개발, 시설 투자, 우수 인력 확보 등 경영혁신용으로만 지원받을 수 있도록 제한한다. 협력업체들은 공헌도 평가에 따라 펀드 지원 한도가 결정된다. 대신 대기업의 PS는 협력업체들의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되찾아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넷째, 대기업의 PS에 대한 세제 지원 같은 유인책이 필요하다. 이미 동반성장 추진 대책에서도 대기업이 협력사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투자할 경우 투자세액 공제(7%)를 해주기로 한 만큼 협력업체 PS에 대한 세제 지원을 꺼릴 이유가 없다.
3월이면 대기업과 거래했던 중소기업들의 지난해 실적이 공개된다.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것처럼 중소기업들의 실적도 좋을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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