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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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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은 진보의 우군인가

진보 경제학자들, 장하준 교수의 재벌 편향적 시각 비판

“‘국가-재벌 연합’ 중시하는 성장전략엔 대중의 민주적 참여 빠져”
등록 2011-02-10 15:21 수정 2020-05-03 04:26

이병천 강원대 교수와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국내 진보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중견학자들이다. 이들이 최근 잇달아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 장 교수가 지난해 말 발간한 가 30만 부 이상 팔리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게 직접적 계기다. 진보 경제학자들은 장 교수가 이전에 펴낸 등에 대한 분석도 곁들였다. 사실상 ‘장하준 경제학’에 대한 종합 비판인 셈이다. 시장주의를 공격하는 장 교수는 큰 틀에서 진보 성향으로 볼 수 있다. 장 교수는 영국의 좌파 경제학자인 로버트 로손에게 지도를 받고 개발경제학·제도경제학을 연구해 케임브리지대학 안에서도 비주류에 속한다. 제도경제학은 한 나라의 경제성장과 관련해 자본·노동·기술 같은 전통적 생산요소와 함께 제도나 시스템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시장만능주의 비판에는 한목소리

장 교수는 1990년대 후반 주류 경제학의 아성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직에 지원했다가 쓴잔을 들이켠 적이 있다. 서울대는 더 나은 후보를 선택했을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비주류인 장 교수에게 자격 미달이라며 퇴짜를 놓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장 교수는 당시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전세계 대학 순위에서 10위 안에 드는 명문대의 교수를,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서울대 교수들이 자격 미달이라고 내친 것은 놀랄 만한 지적 자신감이다. 훗날 서울대 총장이 된 정운찬 교수도 당시 학문적 다양성을 위해 장 교수의 임용을 지지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장하준(오른쪽에서 세번째)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지난해 12월 2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새로운 자본주의와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강연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한겨레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장하준(오른쪽에서 세번째)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지난해 12월 2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새로운 자본주의와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강연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한겨레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주류 경제학 쪽에서 보면 같은 비주류지만, 장 교수와 국내 진보 경제학자들 간에는 적잖은 간극이 있다. 이전에도 이런 차이점이 논의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중량감 있는 진보 경제학자들에 의해 잇달아 다뤄지기는 처음인 듯싶다. 독자에게는 진보 경제학자들과 장 교수의 생각을 비교하고 음미할 수 있는 즐겁고 유익한 기회다. 또 장 교수가 한국 경제의 개혁에서 갖는 의미와, 그의 한계가 무엇인지도 살필 수 있다.

두 교수가 장 교수를 비판만 한 것은 아니다. 장 교수의 주장에 공감을 보인 부분도 상당하다. 또 어려운 경제학 이론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 대중적 관심을 이끌어내는 능력에도 찬사를 보냈다. 장 교수와 국내 진보 경제학자들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시장만능주의(또는 자유시장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금융위기를 낳은 신자유주의와 맹목적 세계화에 대한 비판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는 시장주의를 맹신하는 주류 또는 보수 경제학자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전선이다. 장 교수는 의 첫 번째 장에서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모든 시장에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칙과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병천 교수는 인터넷 매체인 에 올린 글에서 “시장규제가 필요한 이유는 자유시장이 실제로는 자본권력과 기업권력의 시스템이기 때문임을 장 교수가 제대로 다뤘어야 한다”고 아쉬워하면서도, 시장 실패의 심각성과 정부 역할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진보 경제학자들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고 나머지 국민은 그 떡고물을 얻어먹으라는 ‘트리클다운’(적하정책·trickle down) 전략을 부정한다. 선(先) 성장-후(後) 분배·복지정책의 상징과도 같은 트리클다운 전략은 자유시장주의의 대표적 이데올로기다. 진보 경제학자들과 장 교수는 성장과 복지·분배의 동행 내지 선순환을 통한 복지국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진보 경제학자들과 장 교수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장 첨예한 것은 재벌 문제다. 김기원 교수는 창비 웹진에 올린 ‘장하준 논리의 비판적 해부’에서 “한국 현실, 특히 재벌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연초 언론 인터뷰에서 삼성에 대해 “경영권 세습을 인정할 테니 노조를 인정하고, 이사회의 40% 정도를 정부·노조·시민단체 등에 할당해 사회 감시를 받으라”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이를 뜬금없는 얘기라고 비판한다. 이건희 회장 일가의 경영권 세습은 이미 2009년 특검 기소에 대한 법원 판결로 법적 면죄부를 받았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2008년 4월 이건희 회장이 삼성 비자금 사건의 책임을 지고 경영 퇴진 선언을 한 것에 대해 “삼성 가문이 드디어 기업집단을 해체하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2010년 3월 경영에 복귀했고, 12월에는 명목상 해체했던 그룹 사령탑까지 복원했다. 김 교수는 “이 회장 일가는 처음부터 (경영 퇴진 내지 그룹 해체의) 의도가 없었고, 결국 국민과의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며 상황 파악부터 제대로 하라고 장 교수에게 충고한다. 이런 비판에는 장 교수의 타협론이 결국 재벌의 황제 경영을 보장해주는 결과만 낳을 것이라는 진보 경제학자들의 우려가 깔려 있다. 이병천 교수도 “삼성·현대와 같은 재벌 집단은 하나의 거대한 자본 권력체”라며 “장 교수가 이런 재벌권력에 눈감고 있다”고 비판한다.

다음은 주주자본주의 문제다. 장 교수는 “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주주, 특히 소액주주는 배당의 극대화 등 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구만 한다는 것이다. 진보 경제학자 중에도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자본주의보다 종업원·협력업체·소비자·사회 등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를 배려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선호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장 교수가 주주자본주의 폐해론을 소액주주운동 비판으로 연결짓는 것에는 반대한다. 소액주주운동은 1990년대 후반부터 참여연대·경제개혁연대 같은 시민단체들이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위해 벌여온 운동이다. 총수 일가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데도 기관투자가들은 견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거의 유일하게 재벌을 감시·견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김기원 교수는 “한국은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 총수자본주의”라며 “장 교수는 참여연대 공격에 재벌들과 보조를 맞췄다”고 직격탄을 날린다. 노동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르듯이, 주주라고 모두 같은 게 아니다. 지배주주와 소액주주는 경영 참여나 지배력이 전혀 다르다. 소유-경영이 분리된 영미형의 경우 기업지배구조의 주된 관심은 전문경영인에 대한 주주의 감시·견제다. 그러나 한국·유럽과 같이 지배대주주가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 기업지배구조의 이슈는 소액주주의 권익 보호와 지배대주주에 대한 감시·견제로 바뀐다. 특히 한국처럼 총수 일가의 지분이 5%도 안 되는데 계열사 간 출자를 통해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해 소유-지배 간 괴리가 심한 경우에는 지배대주주가 회사 이익을 빼돌려 사익을 추구할 위험성이 높아진다. 장 교수의 주주자본주의 폐해론에는 이런 한국 현실에 대한 분석이 빠져 있다.

박정희식 경제개발이 지금도 유효?

외국자본에 대한 시각차도 민감한 부분이다. 장 교수는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는 신화에 근거해 경제정책을 세우는 것은 너무도 순진한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생산·연구개발 등 기업의 핵심 활동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뤄지고 있지만, 외국자본의 비중이 너무 높으면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진보 경제학자들도 동의한다. 실제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의 경제위기 때마다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으로 국내 금융시장이 홍역을 치렀다. 또 각국이 말로는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국제적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자국 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환율전쟁도 서슴지 않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김기원 교수는 “민족주의 감정을 악용해 부패하고 무능한 재벌총수 문제를 덮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병천 교수도 “재벌과 외국자본을 이항대립으로 놓는 장 교수의 논법은 보수 쪽 주장과 중첩되는(일치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고 우려를 나타낸다.

결국 장 교수와 진보 경제학자들 간의 핵심 이견은 재벌 문제로 모아진다. 장 교수가 주장한 삼성과의 타협론은 6년 전 에서 제기한 주장- 재벌의 경영권 불안을 해소해주는 대신 노동자의 일자리 보장을 받자- 과 대동소이하다. 장 교수는 재벌과의 타협을 스웨덴의 1938년 노사 대타협에 비유해왔다. 당시 스웨덴은 살츠요바덴 협약을 통해 노·사·정 3자의 공존에 합의했다. 자본가들은 지속 성장에 필요한 과도한 임금인상 억제와 사회 평화를 얻기 위해 노조 인정과 복지 확대를 수용했다. 하지만 진보 경제학자들은 한국의 재벌은 경우가 다르다고 말한다. 지금도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삼성이 무엇이 아쉬워 사회적 대타협에 나설 것인가.

장 교수로서는 재벌과의 타협론이 어쩌면 필연이다. 성장을 중시하는 개발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재벌이 한국 경제 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해온 것에 주목한다. 또 과거 박정희식 경제개발 방식과 유사한 ‘국가-재벌 연합’에 의한 성장 전략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성장동력으로서 재벌의 역할이 앞으로도 이어지도록 하려면 타협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재벌과의 타협을 염두에 둔 장 교수로서는 재벌권력의 폐해 문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재벌이냐 외국자본이냐, 양자택일식 접근

장 교수의 외국자본 폐해론도 재벌 편향이라는 지적을 받는 것과 무관치 않다. 장 교수는 민족주의 관점에서 외국(투기)자본을 비판한다. 또 국내에서 외국자본에 맞설 수 있는 대항마를 찾다 보니, 가장 가능성 있어 보이는 재벌을 심하게 비판하기가 쉽지 않다. 진보 경제학자들도 재벌이 경제성장에 기여한 것을 전적으로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재벌의 폐해도 그에 못지않기 때문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재벌의 경영권 세습은 사회적 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재벌과의 타협을 위해 경영권 세습을 용인하는 것에 반대한다. 더욱이 재벌과 외국자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장 교수의 양자택일식 접근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재벌과 외국자본은 각기 나름의 장점이 있고, 동시에 개혁해야 할 문제들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김가원 교수(왼쪽사진 한겨레 김봉규)  /이병천 교수(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김가원 교수(왼쪽사진 한겨레 김봉규) /이병천 교수(사진 한겨레21 정용일)

장 교수는 많은 대중을 팬으로 확보하고 있다. 시장 개방과 자유무역협정(FTA)을 가차 없이 공격하는 그를 한나라당이 초대할 정도다. 보수 언론들조차 주류 경제학의 통설을 파괴하는 장 교수를 ‘세계의 주도적 비정통주의 경제학자’ ‘자본주의에 대한 최고의 비평가’ 중 한 사람이라고 열광한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이단아에 가깝다. 넓은 의미로 같은 진영에 속한 진보 경제학자들과는 여전히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 이병천 교수는 “장 교수가 이전에는 성장중심론을 폈지만, 에서는 성장·복지를 함께 이룰 수 있는 복지국가의 대안을 내놨다”고 반기지만, 다른 차이점이 크게 좁혀진 것 같지는 않다. 진보 진영으로서는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하고 복지국가 대안을 제시하는 장 교수를 우군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우군은 문제 해결의 방향까지 같아야 한다. 보수 진영은 장 교수를 향해 “보호주의가 좋다면 북한식 경제를 하자는 말이냐” “정부 개입이 좋다면 박정희 시대의 계획경제로 돌아가자는 것이냐”고 공격한다. 장 교수의 일방적 보호주의와 정부 주도- 또는 정부·재벌 연합의- 성장전략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진보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장 교수의 관치금융 옹호 성향에 대해서도 진보 경제학자들은 고개를 흔든다.

위험한 장 교수의 민족주의

장 교수의 민족주의적 색채도 진보 진영이 가슴에 품기에는 너무 날카롭다. 민족주의는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얻기 쉽지만, 자칫 수구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 100여 년 전 탐욕스러운 외세와 무능하고 부패한 봉건왕조는 모두 조선 민중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 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탐욕스러운 외국자본과 부패하고 착취를 일삼는 재벌은 미래의 희망이 아니라 경계와 개혁의 대상일 뿐이다. 이병천 교수는 “장 교수는 기업과 정부가 협력하는 더 나은 자본주의에 대해 말하면서도, 대중의 민주적 참여와 경제민주주의가 동행하는 더 나은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런 것들이 진보 경제학자들이 지금 장하준 교수를 향해 펜을 든 이유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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