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전혀 예기치 않은 소식이라 더 반가웠는지 모른다. 삼성그룹의 비자금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광주시교육청의 감사담당관에 내정됐다는 뉴스였다(광주시교육청은 진보 성향의 장휘국 교육감이 2010년 11월 취임했다). 얼른 휴대전화를 집어들어 문자를 날렸다. “축하합니다, 정말 잘됐습니다.” 잠시 뒤 리콜이 왔다. “고맙습니다.”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기쁨이 가득했다. 주위의 권유로 지원했지만 솔직히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검사,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법무팀장, 변호사로서 쌓은 법률 지식, 수사 경험, 그리고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확인된 도덕성으로 보면 그는 교육계의 부정·비리를 바로잡는 데 적임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모로 치러진 감사담당관 선발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힘있는 국가기관 출신들을 포함해 여럿이 경합했다.
면접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다른 후보자들보다 배나 되는 시간이 걸렸다. “교육계 비리나 부정을 바로잡는 게 지나쳐서 자칫 조직의 화합을 해치는 일은 없겠느냐?” “업무를 하다가 개인 소신에 안 맞으면 (삼성에서처럼) 양심선언을 할 생각이냐?” 모두 답변이 쉽지 않은 까다로운 질문들이다. 답변 여하에 따라 당락이 결정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속에 없는 말을 하거나, 변죽을 울리는 타입이 아니다. “교육계 비리·부정을 바로잡는 게 화합을 해치는 조직이라면, 그 조직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조직 안에서 문제 해결이 되도록 해서, 그런 일(양심선언)이 없도록 해야겠지요.” 어이구, 잠시 성질 좀 죽이지. 한 번쯤 고개 숙인다고 큰일 나나? 하지만 그런 김용철이라면 애초 양심선언을 하지 않았겠지.
김 변호사는 2007년 10월 말 삼성 이건희 회장 일가와 가신들의 비자금, 로비, 경영권 불법 승계 등을 망라한 양심선언 이후 사실상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했다. 사법시험 합격 뒤 9년간의 검사 생활, ‘재계의 청와대’로 불리는 삼성 구조본에서 7년6개월 동안 임원 근무라는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양심선언 이후 그를 받아주는 대한민국의 로펌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돈벌이가 되는 대기업 관련 사건을 맡는 데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로펌들조차 기피하는 그를 따뜻이 받아줄 기업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다. 조그맣게 낸 개인 법률사무소도 여직원 월급을 주는 것조차 힘겨워하다가 결국 문을 닫았다. 그가 일할 수 있는 곳은 경기도 부천에 있는 작은 빵집의 카운터뿐이었다.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배신자’ ‘변절자’라는 주위의 손가락질이었다. 김 변호사는 “내가 양심에 따라 고발한 범죄행위는 보지 않고 그것을 가리키는 내 손가락만 못생겼다고 탓한다”고 말했다. 입만 가만히 다물고 있으면 아무 일 하지 않아도 은퇴할 때까지 매년 십수억원을 벌 수 있는 달콤한 제안을 뿌리치고, 양심의 명령에 따라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것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됐다. 심지어 성격이상자, 인격파탄자라는 음해까지 나돌았다. 개혁진보 성향의 단체나 조직에 몸담고 있는 인사 중에서도 “삼성의 불법행위는 나쁘지만, 김용철도 싫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한민국 최대 권력인 삼성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은 김 변호사와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하는 것조차 꺼렸다. 김 변호사는 50여 년간 쌓아온 인간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졌다고 탄식했다. 한때 세상이 뒤집히기라도 할 듯 요란을 떨다가 검찰과 재판부는 면죄부를 주고, 대통령은 재판이 끝나기 무섭게 사면 특혜를 베푸는 현실에 더욱 허탈해졌다. 스스로를 ‘인생 파산자’라고 조소했다. 경기도 남쪽의 외진 시골에 파묻혀 세상과 담을 쌓았다. 유일한 낙이라고는 야학에서 만나는 중증장애인들뿐이라고 했다. 세상에서 소외된 그들과의 만남에서 오히려 위안을 받는 듯했다. 하지만 안부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항상 우울했다. 밤에도 잠을 제대로 못 잔다며 고통스러워했다. 삼성의 감시와 도청, 미행이 노골적으로 계속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러다 큰 사고라도 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정상적 생활 못할 것”이라던 삼성 관계자김용철 변호사처럼 조직 내부의 부정과 불법행위를 사회 공익 차원에서 폭로하는 사람을 ‘내부고발자’(Whistle-blower)라고 한다. 한국 사회는 1987년 이후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중요한 내부고발이 잇달아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1990년 이문옥 감사관의 재벌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감사원 감사 비리 고발과 윤석양 이병의 국군보안사 민간인 사찰 고발, 1992년 이지문 중위의 군 부재자투표 부정 고발, 1996년 현준희 감사원 주사의 효산 사건 감사 비리 고발, 2008년 김이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박사의 대운하 양심선언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김 변호사처럼 엄청난 고초를 치렀다. 전세계에 국가 폭력의 실상을 폭로한 인터넷 매체 위키리크스도 내부고발자의 또 다른 사례다. 위키리크스가 미국 외교문서를 폭로한 뒤 미국 정부는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를 간첩 혐의로 수배했고, 인터넷 업체와 금융기관에 압력을 넣어 서버를 차단하고 후원 계좌를 동결했다. 한술 더 떠서 스웨덴은 어산지를 성폭행 혐의로 수배했고, 영국은 그를 한때 수감했다.
외부인이 알기 어려운 조직 내부의 은밀한 불법이나 부정행위를 눈감지 않고 폭로하는 것은 사회 전체를 위해 의로운 행위다. 최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한화와 태광의 비자금 사건도 모두 내부고발자의 제보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내부고발자들은 조직으로부터 파면·직위해제·집단따돌림을 당하고, 민형사상의 불이익을 받는 것은 물론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다. 내부고발자들의 좌절과 패배는 결국 불법행위를 저지르고도 양심선언을 배신행위라고 매도하는 ‘어둠의 세력들’의 승리를 의미한다. 김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한 뒤 삼성의 한 관계자가 “(그는) 한국 사회에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게 떠오른다.
공정사회를 향한 인센티브인간은 ‘인센티브의 동물’이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스티븐 레빗 교수는 저서인 에서 “폭력범죄에서 스포츠 부정행위, 온라인 데이트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의 일상에 관한 모든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인센티브”라고 강조했다. 이를 내부고발에 적용하면 결론은 간단하다. 한국 사회에서 내부고발자들의 좌절이 계속되는 한 내부고발을 통한 공정사회의 구현은 그만큼 멀어진다. 어둠의 세력들이 자행하는 은밀한 범죄행위를 세상에 폭로할 용기 있는 사람들이 다시 나타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광주시교육청의 결정은 한국 사회가 지난 3년간 김용철 변호사에게 진 빚을 뒤늦게나마 갚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김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인생의 좌절과 실패라는 대가를 치렀다면, 한국 사회 전체의 좌절이자 실패라는 큰 오점으로 남았을 것이다. 광주시교육청의 결단은 그동안 배신자, 사회 부적응자, 인격파탄자로 몰리며 고통을 당한 김 변호사에게 우리 사회가 내린 정당한 복권 조처라고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2011년을 맞는 국민에게 ‘정의는 살아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안겨준 의미 있는 사건이다. 장휘국 광주시교육감과 감사담당관 심사위원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과 함께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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