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략 50살 정도 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시끌벅적한 장터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만병통치약을 팔던 약장수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병을 고칠 뿐 아니라 정력을 회복시켜주고 우리를 다시 젊게 만들어준다는 그 약이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당시의 약은 구성 성분이나 작용기전보다는 그 약을 둘러싼 그럴듯한 이야기에 의해 수요가 창출되고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불로장생하는 불로장생 이야기의학에서 과학이 중심을 차지하게 된 이후에는 이런 이야기가 ‘과학적 관찰’이라고 이름을 바꿔 다시 등장한다. 19세기 프랑스의 생리학자 샤를 에두아르 브라운 세카르는 어린 개와 기니피그의 고환을 으깬 액체를 자신에게 주사해 스태미나를 회복하고 젊었을 때의 지적 활력을 되찾았다고 주장했다. 빈의 생리학자인 오이게네 슈타이나흐는 남자의 정관을 묶어 남성호르몬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하면 젊음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교에서 장생의 방법으로 추천하는 접이불사(接而不射·사정을 하지 않는 성교)의 논리와 닮은꼴이다.
20세기에 들어서도 과학으로 포장된 불로장생 이야기의 위력은 그다지 줄지 않았다.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인 의사 세르게 아브라하모비치 보로노프는 원숭이의 고환을 500명이 넘는 나이든 남성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했고 당시 과학계는 그에게 회춘의학의 선구자라는 찬사를 보냈다. 물론 이 시술은 나중에 과학의 이름으로 폐기되었지만, 대중의 의식에는 뚜렷한 흔적을 남겨 ‘원숭이 고환’이라는 이름의 칵테일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21세기도 10분의 1이나 지난 지금까지 젊음을 주거나 죽음의 시기를 늦추는 특효약은 없다. 식이조절이나 유전자 조작 등의 방법이 수명을 연장한다는 동물실험 결과도 있고 인간의 수명을 수천 년으로 연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회춘 연구자들도 있지만 과학자들은 대체로 모든 수명에는 한계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과학과 의학은 ‘왜’보다는 ‘어떻게’의 물음에 더 뛰어난 재주를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왜 늙으며 죽을 수밖에 없는지 묻기보다는 그 늙음과 죽음이 어떤 생물학적 과정을 통해 나타나며 그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에 관심을 쏟는다. 위에 나열한 노화 방지 전략들이 모두 폐기된 것도 이 ‘어떻게’의 물음에 답하는 과정에서 호르몬과 노화의 관계에 대한 가설이 근거를 잃었기 때문이다. 즉, 노화 방지 방법의 효과가 사실은 주관적 기대와 주장에 불과했음이 입증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새로운 가설들이 검증의 담금질을 받고 있는 중이다.
생명의 길이에는 자연이 설정한 한계가 있다는 과학적 증거는 먼저 인공 상태에서 배양하는 세포로부터 왔다. 사람의 정상적 체세포는 50~60번 분열하면 더 이상 새로운 세포를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그 한계는 염색체 끝부분의 텔로미어라는 DNA가 세포분열을 할 때마다 짧아지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이 바로 노화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우리는 드디어 세포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계를 발견했고 이제 그 시계를 조작하는 방법만 터득하면 노화와 죽음을 정복할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에 부풀었다. 물론 텔로미어가 세포분열의 횟수를 조절하는 회로 중에 있는 중간 스위치일 수는 있어도 노화 자체를 조절하는 마스터 스위치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왜 늙어야만 하는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늙어가는지에 대한 단서는 잡게 된 것이다.
이 밖에도 노화를 설명하는 여러 가설이 있고 그중에는 충분한 과학적 증거를 갖는 것도 있다. 우연히 일어난 돌연변이가 체세포에 축적된 것이 노화라는 주장도 있고, 대사과정 중에 발생하는 ‘자유래디칼’(free radical)이 DNA, 단백질, 그리고 세포 내 에너지 생산 공장인 미토콘드리아를 손상시켜 노화를 유발한다는 주장도 있다. 섭취하는 음식의 열량을 30~40% 줄여서 곤충과 설치류 동물의 수명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는 실험 결과도 있고, 회충·초파리·생쥐의 특정 유전자를 조작해 수명을 늘릴 수 있었다는 희망찬 보고도 있다.
노화는 젊음의 대가문제는 그 각각의 설명이 노화 현상의 단편들만을 보여줄 뿐 노화 자체를 설명하거나 막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늙어가는지에 대한 단편 지식들을 토대로 도대체 우리는 왜 늙고 죽어야만 하는지,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려는 우리의 노력과 의지는 가망이 있는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노화 과정을 현실적이면서도 포괄적으로 이해하려면 분자, 세포, 개체 등 생체의 여러 수준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이해해야 할 뿐 아니라 생명의 진화와 역사라는 더 큰 차원의 시공간적 조망이 필요하다. ‘어떻게’에서 ‘왜’로의 시각 전환인데, 브라운 세카르와 보로노프의 실패는 모두 ‘어떻게’에 눈이 멀어 ‘왜’라는 물음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왜’를 묻는다고 바로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역시 가설 수준의 질문이고 혹독한 검증을 거쳐야만 한다. 가설 자체에 아주 긴 시간과 공간이 포함돼 있으므로 경험적으로 검증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늙음과 죽음에 대해 거부와 정복이 아닌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토양을 제공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진화적 관점은 노화와 죽음을 개체가 아닌 자연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진화의 추동력인 자연선택은 결과적으로 번식에 성공한 개체의 유전자를 퍼뜨릴 뿐 우리의 수명과는 어떤 관계도 없다. 생존과 생식에 성공한 개체의 유전자는 퍼지고 그렇지 못한 유전자는 사라진다. 그뿐이다. 어떤 유전자가 젊었을 때의 생존과 생식에 도움이 된다면 나이가 들었을 때에는 같은 유전자가 치명적 질병을 일으킨다고 해도 자연은 그것을 선택한다. 이것을 ‘적대적 다형질 발현’(antagonistic pleiotropy)이라 한다. 노년에 생기는 문제를 젊음과 섹스(생식)의 대가로 보는 것인데 에서 말하는 접이불사의 이야기 구조와 비슷하다.
‘p53’이라는 유전자가 이 이론에 잘 들어맞는다. 이 유전자는 손상된 세포가 더 이상 증식하지 않고 자살하도록 유도하는데, 변형된 유전자가 증식해 암이 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젊었을 때 암을 예방했던 이 유전자가 노년기에는 조직의 재생을 억제해 치유를 늦추고 손상을 축적시키는 노화의 주범이 된다. 따라서 노화의 증세를 완화하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하면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이 이론은 ‘일회용 몸’(disposable soma) 이론으로 발전하는데, 여기서는 생체자원의 효율적 분배가 문제가 된다. 우리 몸이 활용할 수 있는 생체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번식과 생존이 그것을 나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존에 더 많은 자원이 투여되면 번식이 줄어들고, 번식에 더 많이 투자하면 생존 기간이 줄어든다. 실제로 포식자가 없는 평화로운 섬에 사는 주머니쥐는 포식자가 많은 육지에 사는 주머니쥐보다 번식 시기도 늦어지고 노화도 천천히 진행된다고 한다. 잡아먹힐 걱정이 없으니 번식을 서두를 필요가 없었고 이렇게 절약한 자원을 생명 유지에 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는 것 깨달아야 할 때
노화와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깨달은 중요한 교훈이 하나 있다. 생명은 그 안에 창조와 파괴의 원리를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은 삶과 죽음으로 구성된다. 이 원리에는 수십억 년 동안이나 적대적 환경에 적응해온 우리 조상 생명의 삶과 죽음이 응축돼 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죽어간 조상 생명의 자손으로서 또한 이렇게 살다 죽어갈 것이다. 생명의 입장에서 보면 내 삶의 길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노화와 죽음 자체를 거부하는 것 역시 생명의 원리에 어긋나는 태도다. 얼마나 오래 사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왔으며 후손에게 어떤 생명을 물려줄 것인지를 생각해야겠다.
장터의 만병통치약 장수가 팔던 것이 결국은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었다는 것은 이제 거의 확실해졌다. 보로노프가 선전했던 회춘의학이 아무 효과도 없이 부작용만 양산했다는 사실도 이제는 분명해졌다. 아직도 과학의 이름으로 팔려나가는 수많은 노화방지제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인문의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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