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를 계기로 정부로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 심화의 주범으로 찍힌 삼성이 드디어 침묵을 깨고 반격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30일 올해 2분기 경영실적을 발표했다. 예상대로 영업이익은 5조100억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은 실적 발표와 함께 이같은 막대한 이익이 중소 협력업체를 쥐어짜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삼성전자가 5조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다는 보도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는 정부의 지적에 정면으로 맞대응한 것이다.
<font color="#00847C">해외 매출 대부분? 수출용에도 국내 부품</font>삼성 주장의 핵심 논거는 삼성전자 이익의 원천은 국내 매출보다는 해외 매출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상반기 기준으로 전체 매출 중 86%가 해외에서 발생했고, 국내 매출은 14%였다. 매출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했으니, 국내 협력업체의 실적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실상을 알면 금방 엉터리임이 드러난다. 동종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품이 어디서 팔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제품의 부품을 누가 만들었느냐가 중요하다”면서 “해외에서 팔리는 제품에도 국내 협력업체가 생산하는 부품이 상당수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전체 부품 중에서 국내 협력업체로부터 구입한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동종 업체인 LG전자의 사례를 보면 유추가 가능하다. 전자업체가 부품을 공급받는 원천은 해외 기업, 국내 대기업, 국내 중소기업 등 크게 세 가지다. LG전자의 경우 국내 중소기업으로부터 공급받는 부품의 비중은 18%다. 해외 공장들이 동반 진출한 국내 업체로부터 현지에서 직접 공급받는 부품과, 국내 중소기업에서 수입하는 부품까지 더하면 비중은 20~30%로 더 높아진다.
삼성의 다음 주장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삼성은 이익의 대부분이 협력업체가 많은 세트 부문(통신·디지털가전)보다 협력업체가 적은 부품 부문(반도체·LCD)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상반기 영업이익 중에서 부품이 71%, 세트가 29%라는 수치를 제시했다. 또 국내 세트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9%, 영업이익 비중은 1%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국내 협력업체와 관련성이 많은 국내 세트의 경우, 전체 매출이나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함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 삼성전자의 한 간부는 “(삼성전자의) 1차 협력사는 약 800개인데, 이 중 세트와 부품 협력사는 거의 반반”이라고 털어놨다. 설령 세트보다 부품 부문의 협력업체 수가 적더라도, 삼성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올해와 정반대로 부품보다 세트에서 이익이 많이 난 지난해 같은 경우는 설명이 궁색해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2009년 영업이익 중에서 세트는 65.4%, 부품은 34.6%를 차지해, 올해와 정확히 반대다. 삼성의 주장대로라면 지난해 경제위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10조원이 넘는 막대한 이익을 낸 비결은 국내 협력업체 수가 많은 세트 부문의 기여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은 올해 예정된 26조원의 투자를 집행하려면 올해 예상 영업이익 20조원이나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이 당연하다는 주장도 폈다. 이는 마치 올해 20조원의 이익을 내지 못하면 26조원의 투자가 불가능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하지만 회계 전문가들은 이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삼성전자의 20조원 이익(전망치)은 투자에 따른 비용 처리를 하고 남은 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이익이 올해 20조원이 아니라 5조원이나 10조원이 나더라도, 26조원 투자에는 영향이 없다. 전자업체의 한 재무담당 임원은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20조원의 이익이 나고 26조원의 투자를 한다면, 투자 이전 단계의 이익은 46조원이라는 얘기”라면서 “20조원의 이익이 나야 26조원의 투자가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억지”라고 지적했다.
<font color="#008ABD">인텔의 ‘에코 시스템’을 보라</font>삼성은 2분기 영업이익률 13.2%가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글로벌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의 평균치에도 못 미친다고 항변했다. 실제 반도체 전문기업인 인텔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30%를 넘는다. 기업이 단지 이익을 많이 내고 이익률이 높다고 비난받는 것은 옳지 않다. 문제는 그 이익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는 것이다. 막대한 이익을 내는 과정에서 하도급 중소기업에 부당한 납품 단가 인하 같은 불공정 행위를 했다면 그 이익은 정당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세계 최대 반도체 메이커인 인텔은 중소기업과의 상생 경영을 추구하는 ‘에코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인텔은 중소기업과 거래할 때 원가절감 같은 눈앞의 이익만 챙기지 않는다. 다수의 중소기업을 미래의 사업 파트너로 발굴한 뒤, 과감한 지원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창조적 공존 전략을 중시한다. 인텔이 지금껏 미래 파트너를 찾기 위해 지출한 투자비는 수십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도 대외적으로는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실상은 많이 다르다. 삼성전자가 거래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를 부당하게 깎는 등 불공정거래 행위로 공정위의 조사를 받은 것은 2005~2009년에만 네 차례에 달한다. 대표적 사례가 2008년 2월 1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휴대전화 협력업체에 대한 부당 납품 단가 인하 사건이다. 삼성전자는 2003년의 경우 원가절감을 위한 단가 인하 목표액 1조2천억원 가운데 국내 협력업체에만 6397억원을 할당했다. 이는 700여 협력업체가 1년간 뼈빠지게 일해 얻는 전체 순이익의 절반에 해당한다.
공정위가 지난해 말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아무런 제재 없이 끝낸 삼성전자의 액정표시장치(LCD) 협력업체에 대한 부당 납품 단가 인하 사건도 충격적이다. 삼성이 2007년 9월과 2008년 초에 작성한 내부 보고서를 보면, LCD 패널 부품인 백라이트유닛(BLU)을 납품하는 8개 협력업체의 이익률이 2006년 3%에서 2007년 1.2%로 떨어진 가운데 2008년에 평균 7.1%의 납품 단가 인하를 단행하면서, 이로 인해 협력업체 대부분이 적자를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것이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의 벌거벗은 모습이다.
한국 경제가 잘되려면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 잘돼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이 아무리 좋은 실적을 내도, 하도급 중소기업에 부당한 횡포를 부려 빈사 상태에서 허덕이게 만든다면 건강한 한국 경제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대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거래라는 시장경제의 룰(원칙)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대로 지키라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억지 변명이 의도된 것인지 단순 실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정면으로 외면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삼성전자가 대·중소기업 상생 방안으로 검토 중인 ‘2·3차 협력업체의 1차 승격’ 방안도 진정성이 있다기보다는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많다.
<font color="#A341B1">‘2·3차 업체의 1차 승격’ 가능한가</font>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현행 하도급 거래는 2·3차 협력업체가 볼트와 너트를 1차 협력업체에 납품하면 1차가 부품 뭉치를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는 구조인데, 삼성 말대로 2·3차 협력업체를 1차로 끌어올려 볼트와 너트를 직접 납품받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는 “삼성의 의도는 현재 중소기업이 어려운 이유가 자신이 협력업체를 쥐어짰기 때문이 아니라, 1차 협력업체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2·3차 협력업체에 횡포를 부리기 때문이라고 본질을 호도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이 돈을 많이 벌고도 욕먹는 이유는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억지 변명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대책으로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1등 기업’ 삼성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이유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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