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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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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 기업 열전] 눈물로 단련된 강철들의 질주 본능

기아차 신차 효과로 내수 점유율 31%… GM대우 마케팅 혁신해 잠재고객 120만명
등록 2008-10-10 15:45 수정 2020-05-03 04:25

9월22일 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에서 열린 기아의 새 차 ‘쏘울’ 발표회.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오너의 아들’답지 않게 VIP석 뒷자리에 서서 묵묵히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협력업체 대표들에게 머리를 숙이며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정 사장은 쏘울의 예상 판매고에 대해 묻자 “잘되겠지요”라며 “한 대 사주세요”라고 농담을 건네는 여유로운 모습도 보였다.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지난 2005년 2월 기아차 사장에 오른 그에게 쏘울은 남다르다. 기아차가 ‘부활의 시동’을 걸고 있는 차여서 그렇다. 기아차는 2005년까지 흑자 기조를 유지해오다 2년 연속 적자를 내며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2006년 1250억원대의 적자를 내며 유동성 위기설까지 흘러나올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정 사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기아차는 올 상반기 3년 만에 흑자로 전환하면서 가속페달에 힘을 주고 있다. 상반기에 2180억원가량의 영업이익을 냈다. 9월에는 ‘뉴모닝’ ‘로체 이노베이션’ ‘포르테’ 등 신차 효과에 힘입어 내수점유율 31%를 일궈냈다. 지난 2000년 12월 이후 약 8년 만이다. 지난해 내수점유율은 22.6%에 그쳤다. 기아차는 ‘디자인경영’을 통해 현대차와의 차별화 전략을 내세웠다.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도 영입했다. 감각적인 디자인을 통해 ‘젊은 차’로 포지셔닝(자리매김)한 전략이 시장에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왼쪽 위부터 GM대우의 마티즈·크루즈·윈스톰, 오른쪽 위부터 기아차의 모닝·포르테·스포티지.

왼쪽 위부터 GM대우의 마티즈·크루즈·윈스톰, 오른쪽 위부터 기아차의 모닝·포르테·스포티지.

쓰러졌다 일어서고 떠났다 돌아오고

2006년 5월, GM대우 부평공장의 봄 햇살은 어느 때보다 따사로웠다. 1605명이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2002년 정리해고됐던 이들이 해마다 수백 명, 수십 명씩 원하는 대로 회사에 복직했다. 떠났다 돌아온 사람들은 안다. 공장의 불빛이 얼마나 따뜻했는지를.

그해 겨울은 길었다. 2002년 2월 대우자동차 노동자 1725명의 집에는 얇은 흰 봉투가 배달됐다. 대우자동차 사장 이름의 ‘근로계약 해지 통지서’였다. 해고통지서를 받아든 노동자의 아내는 땅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남편은 기름때에 찌든 작업복을 벗고 길거리에 내몰렸다. 그날 밤 아내는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아무 말 않는 아내에게 더 미안했다.

그해 6월 온 나라는 ‘대~한민국’의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하지만 그들에겐 남의 나라 얘기였다. 수십 통의 입사원서를 냈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나이 든 기능공을 반기는 회사는 드물었다. 뿔뿔이 흩어진 그들은 막일꾼으로, 남동공단의 금형회사 노동자로, 부두의 노동자로 일했다. 밤에는 세탁 배달, 새벽엔 우유 배달, 대리운전, 택배….

GM대우가 이들을 다시 받을 수 있게 된 힘은 회사의 빠른 경영 정상화다. 2002년 4월 GM이 대우차를 인수한 뒤 3년 만에 자동차 판매가 3배가량 늘어났다. 2005년 647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부평2공장의 근무체제도 주간 1교대에서 주야 2교대 체제로 전환했다. 떠난 그들이 다시 필요했다. 당시 닉 라일리 GM대우 사장은 이라는 자서전을 통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임직원들은 회사가 계속 항해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헌신과 투철한 근로의식, 희생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결코 성공의 싹을 틔우지 못했으리라”고 회고했다.

기아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들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기아차는 쓰러졌다. 98년 기아차는 국제입찰에 부쳐졌다. 현대·대우·삼성차가 입찰에 참여했다. 두 차례 유찰된 뒤 그해 12월 현대차에 넘어갔다. 당시 국내외 전문가들은 현대와 기아의 동반 부실을 우려했다. 기아의 정상화는 최소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생산·판매망을 재정비해 3년 만에 흑자를 일궈냈다.

화학적 결합과 독립적 역동성

기아차가 빠르게 다시 일어선 것은, 이질적인 기업문화가 잘 융합됐기 때문이다. 옛 기아차의 기업문화는 직원이 최대 주주인 회사답게 주인의식이 강하고 의사결정 구조도 하의상달식이었다. 활발한 토론문화와 신규 사업에 대한 치밀한 사전 검토가 강점이었다. 하지만 경영에 대한 책임소재가 분명하지 못했다. 중요 사안에 대한 신속한 의사결정과 결정된 사업에 대한 추진력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었다. 이에 견줘 현대의 기업문화는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간결하고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한번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것도 특징이었다.

김봉경 기아차 전무는 “수십 년 서로 경쟁하며 이질적인 기업문화를 가지게 된 두 기업이 한 가족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하지만 교환근무를 실시하는 등 인적 교류를 확대해나갔다. 물리적으로 사옥도 단일 사옥으로 옮겼다. 이러한 새로운 기업문화 정착은 기아의 경영 정상화를 앞당기는 데 큰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GM대우는 공격적이고 혁신적 마케팅에 강했다. 2006년 국내 업계 최초로 신차 환불 마케팅을 펼쳤다. 몇 가지 조건을 달았지만 ‘토스카’와 ‘윈스톰’을 구입한 고객이 어떤 이유에서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를 도로 가져와도 환불해준다는 게 뼈대였다. 김성수 GM대우 이사는 “신차가 발표되면 고객은 ‘아무리 많은 테스트를 거쳤다고 해도 품질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새 차에 헛되이 돈을 쓸 수 없다’는 생각에 구입을 망설인다. 이런 고객을 끌어오기 위해서였다. 고객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자신감도 있었다”고 말했다. 2003년 자동차시장 침체기 때는 1천 명의 고객을 선발해 1년 동안 공짜로 타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이같은 마케팅을 통해 120만 명의 잠재 고객을 확보했다.

옛 대우차는 신속한 의사결정에다 가격 경쟁력이 있는 회사였다. GM은 좋은 네트워크와 많은 브랜드를 갖고 있지만 의사결정은 느린 편이었다. GM 역시 대우와 GM의 장점을 모두 흡수하기 위해 애썼다. 옛 대우차가 갖고 있던 진취적 기업문화와 역동적인 에너지를 살려 또 다른 GM 계열사가 아닌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회사로 만든다는 전략이었다.

두 회사가 불꽃 튀는 맞수 경쟁을 벌이는 분야는 경차다. 경차는 그 자체로 마진 폭은 크지 않다. 하지만 불황에 강한 차다. 경차의 선두주자는 GM대우였다. 91년 국민차로 선보였던 ‘티코’에 이어 98년에 나온 ‘마티즈’는 IMF를 맞으며 인기몰이를 이어갔다. 경차는 각종 세금과 고속도로 통행료, 공영주차 요금 등에서도 혜택을 받는다. 여기에 고유가 행진이 지속되면서 중·소형차를 타던 고객이 경차로 갈아타는 경우도 늘고 있다.

불황에 강한 경차에서 피할 수 없는 한판

마티즈는 경차 시장에서 도전자를 허락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월 배기량 1천cc 모닝이 경차로 편입되면서 기아는 GM대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뉴모닝이 다소 앞서는 모양새다. 경차의 인기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경쟁 모델이 꾸준히 나와줘야 한다. 현대차가 독식하던 중형차 시장에 98년 삼성차가 뛰어들면서 치열한 판매전과 함께 시장 크기를 키웠다.

준중형차의 경우, 기아는 ‘쎄라토’ 이후 5년 만인 지난 9월 ‘포르테’를 선보였다. GM대우는 GM이 전세계 판매를 목표로 개발한 월드카 ‘크루즈’를 오는 10월 말 공개한다.

기아와 GM대우, 앞으로 어느 쪽이 가속페달을 힘껏 밟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기술과 가격 경쟁력으로 질주 본능을 드러내는 회사일 것이다. 이에 더해 속도가 빨라질수록 차체가 바닥에 가라앉는 느낌을 주고 시트가 온몸을 감싸주는 느낌을 받는 차를 많이 만드는 회사에 소비자는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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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총지휘 GM대우 김태완 vs 기아차 슈라이어
<font size="3"><font color="#006699">날렵한 곡선미와 단순한 직선미 </font></font>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총괄담당 부사장(오른쪽)과 김태완 GM대우 디자인부문 부사장.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총괄담당 부사장(오른쪽)과 김태완 GM대우 디자인부문 부사장.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총괄담당 부사장(오른쪽)과 김태완 GM대우 디자인부문 부사장. 두 사람은 자동차 디자인 맞수다. 세계 최고의 아트·디자인 대학원으로 꼽히는 영국 왕립예술대학 동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디자인 철학과 전략은 대조를 이룬다. 슈라이어의 디자인 철학은 ‘직선의 단순화’다. 반면 김 부사장은 날렵한 곡선미와 강인한 역동성의 조화를 추구한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지난해 5월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세르지오 피닌파리나, 지오르지토 주지아로에 이어 세 번째로 영국 왕립예술대학 자동차 디자인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우디의 ‘아우디TT’와 ‘A6’, 폴크스바겐 ‘뉴비틀’ 등이 그의 손끝을 거쳐 나왔다. BMW의 크리스뱅글, 아우디의 월터 드 실바와 함께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힌다. 그를 기아차로 데려온 사람은 바로 정의선 사장이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2006년 9월 기아차 디자인담당 총괄 부사장(CDO)으로 자리를 옮겨 로체 이노베이션, 포르테 등의 디자인을 맡아 이른바 ‘슈라이어 라인’을 탄생시켰다. 쏘울도 그가 디자인했다. 닛산의 큐브, 도요타의 싸이언과 같은 사각형 디자인 형태다. 국내 최초로 전용 튜닝 브랜드까지 선보이며 차별화를 선언했다. 그는 “디자인을 통해 상품·브랜드·고객이 마법처럼 강력하게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 명확한 목표에 따라 직선을 디자인한다면 심플하면서도 아름다운 라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미국 브리엄영대학에서 자동차 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90년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자동차 디자인 석사 학위를 받았다. 95년 대우차에서 ‘매그너스’ ‘라세티’ ‘칼로스’ ‘마티즈’ 등을 디자인했다. 2000년부터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에서 ‘친퀘첸토’ ‘푼토’ ‘두카토’ 등의 디자인 작업을 맡았다. 지난해 2월부터 GM대우 디자인센터 총괄 임원을 맡아오다 6월 부사장이 돼 GM대우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다.
GM대우 디자인센터는 경차와 소형차 디자인을 주도하는 곳이다. GM은 11개 디자인센터가 세계 곳곳에 있으며, 한국에 있는 GM대우 디자인센터가 경소형차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GM대우의 디자인 철학으로 “소비자에게 솔직할 것, 역동적이면서 친근한 느낌을 줄 것, 바퀴 부분을 강조할 것”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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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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