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22일, 헬기가 경남 산청군 산불 화재 진화를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너무 높은 곳에서 물을 퍼붓는 바람에 물이 불길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안개가 되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전국이 훨훨 타오르는 불바다가 되었다. 언론마다 기후위기가 대형 산불의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말일까? 2025년 3월22일 새벽 4시, 산불이 발생한 경남 산청군 시천면으로 달려갔다. 도착하니 희뿌연 연기와 역겨운 불 냄새로 가득했다.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오가는 헬기의 굉음이 귀를 먹먹하게 했다. 이날은 아침 바람이 잔잔했다. 산불의 위력은 크지 않고, 여기저기 연기만 피어오르는 형태였다.
산청 양수발전소 주차장에 마련된 산림청 지휘본부에 들어갔다. 산림청의 산불 지휘도엔 현재 산불 진화 중인 헬기가 42대, 진화 인력으로 진화대 303명, 공무원 380명, 소방 247명, 의용소방대 82명, 군부대 118명, 경찰 156명, 기타 58명 등 총 1344명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실제 하늘엔 헬기 소리로 가득했고, 크고 작은 수십 대의 헬기가 불타는 숲에 연신 물을 뿌리는 게 보였다. 그런데 산림청 산불 지휘도에 기록된 1344명이라는 인원 가운데 현장에 나온 경찰, 공무원 등은 도롯가에 모여 있었다. 인력이 많이 투입됐다고 홍보만 했을 뿐 제대로 된 산불 진화 체계, 인력 투입 체계는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불이 퍼지면서 1분 1초가 시급한 상당수 산불 현장이 방치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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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4일, 이번에는 경북 의성 산불 현장으로 달려갔다. 의성은 산청보다 불타는 현장이 더 많았다. 잔잔한 바람 덕에 당시에는 지표화(불이 땅바닥 마른풀·낙엽 등을 따라 옮겨붙는 일)로 퍼지고 있어 쉽게 끌 수 있는 불길이었지만, 몇 시간 뒤 강한 바람에 화세가 확산되도록 역시 방치하고 있었다.
산청과 의성 산불 현장을 돌아보며 대형 산불의 원인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기후위기 때문이 아니었다. 불 폭탄인 소나무 위주의 산림 구조와 잘못된 산불 진화 체계의 문제였다.
최근 몇 년간 기후위기로 미국과 유럽에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덕분에 한국의 산불 역시 기후위기 때문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진실은 다른 곳에 있다.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이 작성한 미국과 유럽의 산불 원인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탈리아·튀르키예 등의 국외 대형 산불 원인은 48~51도의 고온과 극심한 가뭄이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산림청 통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최근 10년간 발생한 산불 건수는 2~4월에 집중되는데, 이때 기온은 10~20도 내외다. 미국과 유럽의 대형 산불 발생 상황과는 확연히 다르다.
우리와 기후대가 비슷한 일본의 임야청 홈페이지에서 산불 통계를 살펴봤다. 일본의 산불 발생 건수는 1990년대 중반 연간 4천여 건에서 2000년대 중반 2천여 건, 2021~2023년에는 1200여 건 수준으로 급감했다. 특히 일본의 산림면적(2493만5천㏊)은 한국(633만2천㏊)의 약 4배에 이른다. 일본의 임목축적(나중에 목재를 수확하기 위해 임지에 보유한 임목)은 우리의 5배이고, 일본의 ㏊당 나무 축적도 한국의 1.27배다. 숲이 더 울창하다는 얘기다. 숲이 울창해지며 탈 연료가 많아 산불이 커졌다는 한국 산림청의 산불 이론에 따르면, 우리보다 숲이 더 울창한 일본에 산불이 더 많이 발생해야 한다. 그러나 2001~2023년 산불 피해 면적을 살펴본 결과, 한국은 2만3천㏊, 일본은 1만2500㏊다. 단순 비교로는 2배 차이지만, 일본의 산림면적이 한국의 4배이므로 결국 한국이 일본보다 8배나 더 많은 산불 피해가 발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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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은 ‘산불피해지 복구 및 산림의 내화성 증진기술 연구'에서 한국 대형 산불의 원인이 소나무 위주 숲 구조에 있음을 지적했다. 일본은 이미 1600년대부터 불에 강한 활엽수림을 조성해왔다. 그러나 한국 산림청은 소나무와 침엽수 위주의 조림을 해왔다.
한덕수 국무총리 및 대통령 권한대행은 3월2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어 “이번 산불이 기존의 예측방법과 예상을 뛰어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가용한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하여 산불 확산 고리 단절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현장을 지켜보면 한국의 산불 진화는 전적으로 헬기에 의존하는 방식이다. 헬기 진화에 이어서 필요한 산불진화대원의 잔불 정리가 보조를 맞추지 못했다. 헬기가 너무 높은 곳에서 물을 퍼붓는 바람에 물이 불길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안개가 되어 사라진 일도 많았다. 힘들게 퍼온 물을 산불 현장까지 가져오는 동안 줄줄 흘리는 헬기도 있었다. 정작 불타는 나무에 뿌리는 물의 양이 많지 않았다. 헬기가 산불 가까이 접근해 물을 뿌리면, 헬기 날개에 의한 하강풍으로 산불이 더 넓은 면적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지상의 잔불 정리 산불진화대의 뒷받침이 꼭 필요한 이유다.
대형 산불이라는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1년 2조8천억원의 산림청 예산 중에서는 임도(산림도로) 조성과 사방댐(토사 유출과 산사태 등을 막기 위해 계곡에 설치하는 댐), 벌목과 조림(인위적으로 숲을 조성하는 것) 예산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임도는 바람길이 되어 산불 확산의 통로가 되고, 임도에서 발생한 산사태는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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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주와 산림 관련 경영자 등으로 구성된 지역산림조합이 전국에 133개 있다. 중앙산림조합을 제외한 지역산림조합이 최근 5년간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수주한 예산이 총 3조1699억원에 이른다. 보통 지역조합 하나당 약 400억~800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다. 2023년 5월30일 발생했던 경남 밀양 산불 피해 복구 예산과 현황을 살펴봤다. 산불 피해 복구비 약 174억원 가운데 14개의 사방댐 건설에 38억원, 임도 24㎞ 건설에 36억원, 벌목 후 조림비 10억원 등이 소요됐다.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 산림조합은 재개발식 조림 등 복구 명분으로 막대한 이득을 취하면서도, 정작 현행 산불 진화 체계에서 책임있는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산림을 그대로 두고 보전하기보다 개발해야 돈을 버는 산림조합의 수상한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산림은 더는 조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울창해졌다. 산불이 한번 발생하면 수십 년 동안 조림한 나무보다 더 큰 산림 피해가 발생한다. 이젠 새로운 조림보다 산불로부터 숲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산림청 예산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사방댐 역시 국민의 안전과 상관없는 곳에 산림조합의 돈벌이로 건설되는 현장이 부지기수다. 일본의 4배에 이르는, 그 많은 예산을 잘못 사용해 대형 산불을 만들어온 것이다. 산불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되고, 소중한 숲을 지키는 길은 간단하다. 산림을 파괴하는 임도, 사방댐, 조림 예산을 산불진화대 양성에 사용하면 된다.
글·사진 최병성 기후재난연구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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