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특성과 성과에 따라 차별적인 보상을 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
▣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 jeje@hani.co.kr
“전체 결과의 80%는 전체 원인 중 20%에서 비롯한다.” 흔히 ‘20/80 법칙’이라 불리는 이 법칙은 이탈리아 경제학자 파레토가 발견한 것이다. ‘한 나라의 부의 80%는 20%의 부자가 갖고 있다’거나, ‘백화점 매출의 80%는 20%의 단골이 올린다’ 등이 이에 속한다. 이 경험법칙은 본래 가치중립적이다. 만약 “소득의 80%를 20%가 차지한다”고 해도 “성과의 80%를 그 20%가 올린다”면 그런 분배가 불공정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위 20% 농구선수의 실적은?
연예인이나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세계는 실제로 소수 스타에게 보상이 쏠린다. 그런데 그들 각자가 내는 성과를 측정할 수 있다면, 몫이 공정한지도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선수 개개인의 성과를 수치화하기 비교적 쉬운 게 프로농구팀 선수들이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라는 책을 쓴 조지 샤프너는 1997∼98 시즌 미국 NBA 시애틀 슈퍼소닉스팀 선수들의 득점 분포를 분석한 적이 있다. 분석 결과, 상위 20%의 선수가 63.1%의 득점을 올렸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례를 분석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까? 득점과 리바운드, 도움주기, 가로채기, 블록슛 등을 모두 수치화해 공격 포인트를 합산해보자. 가로채기와 블록슛은 1개에 2점의 가중치를 주자. 2002∼2003 시즌 동양 오리온스 농구팀 선수들 가운데 60분 이상 뛴 선수는 10명이다. 이들의 공격 포인트를 수치로 나타내면, 마르커스 힉스가 공격 포인트 2577로 전체의 35.2%를 올렸다. 김병철 선수는 1395포인트로 19.1%를 기여했다. 김승현 선수는 1241포인트로 17.0%를 기여했다. 상위 20%에 속하는 선수가 올린 공격 포인트는 54.3%다. 20/80 법칙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상위 30%(세 명의 선수)가 올린 공격 포인트는 71.3%에 이른다.
물론 반론이 있을 수는 있다. 마르커스 힉스나 김병철 선수는 뛴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공격 포인트를 올린 것 아닌가? 맞다. 만약 10명의 선수가 똑같은 시간을 뛰었다면, 힉스는 전체 공격의 18%, 김병철 선수는 10.1%, 김승현 선수는 11.3%밖에 기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선수들에게 똑같은 출전 기회를 줬다면, 팀의 공격력은 11%가 떨어졌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패배했을 것이다. 공격 포인트보다는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불균등하게 출전 기회를 준 것이 결코 불합리한 게 아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자, 그렇다면 이들에게 각각 어떤 보상을 해야 할까? 전체 연봉의 71%를 그만큼 공격 포인트를 올린 성적 상위 3명에게 줘야 할까? 실제로는 선수들의 공격 기여도의 차이만큼 연봉 차이가 벌어지지는 않는다. 공격 포인트만으로 그 선수가 팀에 기여하는 정도를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프로농구 선수들의 연봉 차이는 보통의 기업에서 노동자들 사이의 보수 차이보다는 훨씬 크다. 그만큼 기여도에 차이가 큰 까닭이고, 그것이 불공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제조업체의 컨베이어 벨트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프로스포츠 선수들과는 다르다. 이런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일의 성과에 큰 차이가 생기지 않는다. 적어도 숙련도가 어느 선까지 향상되고 나면 개인 간 성과 차이가 크게 벌어지지 않는다. 만약 성과대로만 보상한다면, 이들은 모두가 비슷한 보상을 받아야 공정할 것이다. 조립라인의 노동자가 한 극단이라면, 프로스포츠의 세계는 또 다른 극단이다. 오늘날 숙련도가 최고에 이르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는 그 직무에 대한 보상 수준을 좌우한다. 숙련된 노동자들 사이에 성과의 차이가 같은 직무 안에서도 차별적 보상의 근거가 된다.
비정규직과 연공임금의 붕괴
우리나라 기업들은 오랫동안 연공임금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직무나 성과에 관계없이 경력이 오래될수록 급여를 올려가는 보상 체계다. 입사 초기에는 성과에 견줘 임금을 적게 주고, 40대가 되면 성과만큼 임금을 주고, 그보다 나이가 더 들어 생산성이 떨어져도 임금은 더 줬다. 1980년대 후반까지도 이런 임금 구조가 대세였으나, 지금은 아니다. 기업들은 생산성은 떨어지는데도 고임금을 줘야 하는 고령자들을 해고했다. 1∼2년 일하면 숙련도가 최고 수준에 이르러, 더 이상 성과 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단순 직무를 맡는 노동자들도 정규직의 대열에서 추방했다. 그 과정에서 연공임금 체계 밖으로 추방당한 비정규직이 급격히 늘어났다.
은행 창구 업무는 화이트칼라 직군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진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에는 은행도 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하면 창구 업무부터 시작해 여러 업무를 돌려가며 맡겼다. 그러나 지금은 창구 업무를 별도 직군으로 운용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숙련도가 필요하지 않은 일이라 보고, 낮은 임금을 적용한다. 최근 몇몇 은행이 이 창구 직원들을 기간제 고용에서 무기계약직으로 바꾸고 처우도 개선했지만, 여전히 이들에 대한 처우는 일반 정규직과 다르다. 직무 특성과 개인이 올리는 성과에 따라 차별적인 보상을 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기업들은 그것이 더 ‘공정한 보상’이라고 믿는다.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장하지만, 기업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런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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