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숙: 주말 오후 텔레비전에서 소개한 필리핀의 파야타스란 마을을 보고 한동안 할 말을 잃었어요. 파야타스는 ‘쓰레기산’이란 뜻으로, 그 마을에는 수도 마닐라에서 배출된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있었어요. 마을 아이들은 해맑게 웃으며 쓰레기 위에 앉아 친구와 수다를 떨며 음식물을 찾고 있었지요. 하루 한 끼의 식사가 쓰레기더미에서 찾은 음식물을 끓여 먹는 것이라니!
유전자변형과 유기농·무농약·저농약
동수: 지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인구 대비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요. 골고루 공평하게 나눠지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부족한 곳은 부족한 대로, 많은 곳은 많은 대로 문제를 안고 있는 거지요.
문영: 글로벌이라는 말은 지구촌을 얘기하고, 지구촌은 옆집 아이가 아픈지 밥을 먹는지 알 수 있는 것이라는데, 지금의 지구는 서로가 먼 나라인가 봐요.
인숙: 인구와 식량과 환경오염과 에너지 같은 지구 공동 문제는 어느 한 나라가 주도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누군가 나서서 지구 전체의 많고 적고를 적절히 소통시킨다면 아이들이 굶주리며 죽어가는 일은 없겠지요.
문영: 한쪽에서는 삶의 질을 따지고 먹을거리의 안전을 얘기하고 정신의 편안함을 추구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버려진 쓰레기에서 생명을 연장한다니 참으로 답답하네요. 그래도 내 앞의 문제는 내가 먹는 먹을거리의 안전이 우선이지요. 먹을거리를 사다 보면 친환경·유기농·무농약·저농약 등 대략 무슨 말인지는 알겠으나 왜 그런 구분이 필요한지 알 수 없는 제품을 보게 되지만 믿음이 가는 건 아니에요. 유전자변형(GM) 농산물도 아니고 제철에 생산한 신토불이 식품이라는 약간의 위약효과로 만족하는 거죠.
동수: 유전자변형은 종자에 관한 거고 유기농·무농약·저농약은 생산하는 방법을 얘기하는 거라 조금 달라요. 유기농은 화학적으로 합성하지 않은 퇴비 같은 유기질 비료를 사용해 3년 동안 땅의 힘을 키우고, 잡초 제거나 병충해 방제도 정부가 인증한 유기농 자재만을 사용하는 거죠. 무농약과 저농약은 정부가 정한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량에 따라 정해지고요.
지원: 농산물의 품질에 관한 관심은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후 농촌 발전을 위해 경쟁력 있는 농산물을 장려하면서 시작되었어요. 지금은 크게 일반 품질 인증과 친환경 농산물 인증으로 구분하지요. 유기농과 무농약 제품은 친환경 농산물이에요.
문영: 그럼 생태계와 사람들의 건강을 생각해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친환경 농업이네요.
인숙: 친환경 농업은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더 적극적으로 환경과 사람의 건강에 위해한 요소를 줄여가는 농업 방식이에요. 오리를 논에 풀어 잡초와 해충을 제거하는 벼농사, 벌을 이용한 딸기 재배,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이용한 꽃 재배, 효과적인 미생물을 이용해 토양을 건강하게 만드는 농사법과 같은 과학적 기술을 접목한 농사를 말하지요. 그중 하나가 종자 개량인데, 전통적인 육종과 유전자변형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문영: 육종이라니요? 육종 마늘은 들어봤는데…, 아니 육쪽 마늘이던가?
인숙: 육종은 종간 교배를 통해 이로운 유전자를 갖는 품종을 만드는 것이고, 유전자변형은 필요한 유전자를 가져다 붙이는 생명공학기술이에요.
지원: 10년 넘게 걸리는 육종에 비해 유전자변형은 원하는 품종을 짧은 시간에 얻을 수 있어,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묘안으로 대두됐지요. 다수확과 질 좋은 농산물을 기대했지만, 위해성이 거론되면서 표면상으로는 주춤하는 듯싶어요. 하지만 우리 먹을거리의 많은 부분은 이미 유전자변형 옥수수와 콩을 사용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문제보다 당장의 이익을 원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일지 몰라도 소비자에게도 선택권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인숙: 유전자변형은 기술상 문제로 항생제 저항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내성 문제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더 크지요.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고 조절할 수 없는 유전자변형은 많은 상상과 오해로 먹지도 뱉지도 못하는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어요.
육종하되 DNA 표지로 확인하는 방법동수: 그 중간자의 역할로 ‘DNA 표지를 이용한 육종’이 제시됐어요. 미국 농림부 ‘2008 최고의 연구상(Discovery Award)’에 빛나는 ‘홍수에 강한 벼’가 그것이죠. 필리핀의 데이비드 매킬 박사와 미국 연구팀이 공동으로 홍수를 이기는 유전자 ‘Sub1A’를 가진 인도의 전통 벼와 생산력이 뛰어난 벼를 교배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냈죠. 필요한 유전자가 이전됐는지는 생명공학 기술인 ‘DNA 표지’로 확인하고요. 품종을 개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직접 키워 확인하는 방법보다 훨씬 빨라졌죠.
인숙: 실험에 참여한 방글라데시와 인도는 해마다 홍수로 3천만 명분의 식량을 잃었는데, ‘DNA 표지를 이용한 육종’으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힘을 얻었어요.
문영: 그런데 유전자변형은 무엇인가요?
인숙: 유전자변형은 다른 종의 유전자를 의도적으로 집어넣어 유전자를 재조합하는 것이에요. 왓슨과 크릭이 이중나선 모양의 DNA가 생물의 유전체임을 발견한 이래, 1967년에 겔러트가 ‘풀’ 구실을 하는 DNA 리가아제를 발견하고, 1970년 스미스와 네이선스가 ‘가위’ 구실을 하는 제한효소를 발견함으로써 유전자를 재조합할 수 있게 되었지요. 제한효소를 써서 필요한 DNA 염기서열을 자르고, DNA 리가아제로 붙여넣는 거죠. 1978년 미국에서 대장균 염색체에 사람의 인슐린 유전자를 재조합해 다량의 인슐린을 생산했어요. 지금도 많은 당뇨 환자를 살리고 있지요. 유전자변형에 대한 연구는 식물에도 적용되어 많은 유전자변형 식물을 탄생시켰어요.
지원: 1994년 무르지 않는 토마토를 시작으로 제초제에 강한 콩, 해충 저항성이 큰 옥수수 등이 팔리고 있지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도 받았고요. 유전자변형 식물이 개발된 지 겨우 15년 지났지만 미국 곡물의 절반을 차지한대요. 농민 입장에서는 제초제나 해충방제가 필요 없는 유전자변형 식물이 고맙지요.
동수: 유전자변형 식물을 만들어낸 회사도 유전자변형 품종은 특허가 있어 비싼 값에 팔 수 있고, 제초제 저항성 식물의 경우에는 자기 회사의 농약이나 제초제를 같이 사야만 효과를 보도록 조절하면 지속적 이익을 발생시킬 수 있어 일석이조지요. 그러니 계속 개발을 할 수밖에 없지요.
인숙: 사람의 건강과 환경에는 문제가 되지요. 그리고 현재의 유전자변형 식물은 단순히 영양성분과 해충에 대한 저항성을 높이는 정도지만, 앞으로는 더욱 획기적인 실험이 진행되겠지요. 이미 옥수수나 밀에서 천연 플라스틱 성분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고, 의약품을 식물에서 생산하는 것도 시도하고 있대요. 무엇을 만들어낼지는 다루는 사람 마음인 거 같아 무섭기도 해요.
동수: 뉴질랜드는 유전자변형 식물이 없는 나라예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유의 종자를 보존하고, 전통적 교배로 새로운 농산물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뉴질랜드 원예연구소는 교배를 통한 돌연변이 유도로 다양한 크기의 형형색색 키위와 속이 빨간 사과 등 ‘희귀 과일’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어요. 유전자변형이 아닌 다른 방법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해요. 느리지만 자연과 같이 가는 방법 말이에요.
문영: 저는 유전자변형 식물이 세계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고 봐요. 생각이 같지 않다는 정치적 이유에서, 가난하다는 경제적 이유에서, 다른 신을 믿는다는 종교적 이유에서 소통하지 못하고 통합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이 가장 큰 문제지요. 하나가 되지 못하는 지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거지요.
동수: 유전자변형은 자연과의 자연스런 소통에도 문제가 있어요. 자연의 진화는 천천히 필요와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유전자변형은 인류만을 위해 급속도로 이루어지죠. 그러한 부조화가 어떤 상황을 만들지 알 수 없잖아요. 급속한 화석연료의 사용이 지구 환경을 위협하듯 유전자변형은 모든 생명체에 영향을 미칠 텐데, 그에 대한 준비가 없는 우리로서는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인숙: 그렇다고 손 놓고 있으면 인구 증가와 고령화 사회로 인한 식량 문제는 어떻게 하지요? 나라 살림을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충분한 먹을거리를 확보할 원천기술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하지요. 실수도 있고 잘못도 있을 수 있지만 뒤처질 수 없는 거지요.
환경과 소통하며 기술 문제 풀어가야지원: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는 것 같아요.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건 다른 사람과의 원활한 소통과 성실한 습관에서 비롯된대요. 유전자변형 기술도 식량의 필요와 환경과의 소통도 생각하면서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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