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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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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한번 짜장은 영원한 짜장!

등록 2003-09-25 00:00 수정 2020-05-03 04:23

계란 빠뜨린 짜장면에 응징을 가하는 운동본부… 대창반점의 감칠맛에 ‘이적행위’를 저지르다

초등학교 시절 경기도 용인의 신갈지역에는 음식점이 딱 하나 있었다. 푸슬푸슬하게 담은 보리밥 도시락을 콩자반 반찬으로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후딱 비우고, 오후 내내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뛰어놀다가 뉘엿뉘엿 지는 해와 함께 허기가 져 집으로 돌아갈라치면, 오거리 못 미쳐 그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가 어린 나의 회를 더욱 동하게 만들었다. 얼기설기 들여다보이는 주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밀가루 반죽을 치고늘여 국수를 뽑고, 자루 달린 무쇠 냄비를 연탄불 위에 놓고 연방 짜장을 볶는데, 아 그 고소한 냄새라니! 그러나 춥고 배고팠던 그 시절, 어린 나에게까지 돌아올 ‘화폐경제’가 있을 리는 없고, 주먹을 불끈 쥐고 집으로 내달리는 나의 등에 텅빈 도시락 소리만 요란하다. 지금 돈으로 치면 3천원쯤 될까?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학교 대표로 용인군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학력경시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장롱 속에 꼬깃꼬깃 묻어둔 지폐 몇장을 꼭 쥐어주시면서 시험 끝나면 짜장면이나 한 그릇 사먹으라 하셨다. 국어, 산수, 사회…. 나는 경시대회 답안지를 채우는 내내 시험 끝나고 사먹을 그 짜장면의 고소한 냄새가 떠올라 군침을 삼키느라 바빴다.


짜장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인천에 청국지계가 만들어지고, 이때 물밀 듯이 들어온 중국인들이 부두 노동자들을 상대로 팔았던 싸구려 음식이다. 곧 중국 산둥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밀가루장을 볶아 국수 위에 얹어 비벼 먹게 한 것이 짜장면인데, 그래서 한자로 쓰면 불에 튀길 작(炸), 간장 장(醬), 밀가루 면(麵)하여 ‘작장면’(炸醬麵)이다. 그런데 ‘작’(炸)은 혀를 입 안으로 깊이 말아올리면서 ‘짜’에 가깝게 발음되기 때문에 현재의 표준말인 ‘자장면’보다는 ‘짜장면’이 더 맞다. 안도현은 어른을 위한 동화 에서, 자기는 어떤 글을 쓰더라도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표기하지 않겠다고 한다. ‘자장면’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것일 뿐, ‘짜장면’의 추억이 가득한 아이들에게 맞춤법이라고 하여 ‘자장면’이라 할 수는 없을 뿐더러 어느 중국집도 ‘짜장면’일 뿐이라고 말한다. 회원이 14명인 다음카페의 ‘짜장면되찾기국민운동본부’(jjajjajjajang)도 “짜장면을 잃어버린 것을 허탈해하며, 자장면에게 빼앗긴 짜장면이란 우리 고유의 서민 명칭을 수구학자들에게서 되찾아 다시 회복하기를 바라는” 목표를 갖고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

중국 산둥인들의 요리법과 우리의 기호가 습합하여 독창적인 ‘한국적 짜장면’을 만들어냈으니, 새하얀 대접에 쫄깃한 국수 사리를 가지런히 넣고, 그 위에 초콜릿색의 짜장을 부은 다음, 정갈하게 썰은 오이채, 파르스름한 완두콩 몇알, 노오란 옥수수 알갱이 약간, 그리고 삶은 달걀 반쪽을 살포시 얹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한국적 짜장면’이 사라져가고 있다며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카페의 ‘자장면계란회복전국민운동본부’(jajanggohost)의 회원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옛날과는 달리 짜장면에 계란 반쪽을 올려주지 않는 집이 대부분인 데 분개하여, 각 회원이 파악한 계란 올려주는 중국집을 소개하고, 계란을 올려주지 않는 중국집에 대해서는 불매운동을 펼친다. 이들은 또 계란을 올려주지 않는 중국집에 대한 ‘테러’ 활동도 권장한다. 엉뚱한 집으로 짜장면 배달시키기 등등.

짜장면을 취재하러 짜장면의 태생지 인천의 차이나타운엘 갔다. 짜장면을 좋아하는 인천 아이 박용훈, 이우재와 함께 미식가 윤영수씨의 안내를 받아 ‘대창반점’(032-772-0937)의 짜장면 맛을 보았는데, 산둥 출신 주인 유순화씨의 50년 내공이 느껴진다. 돼지고기와 감자만을 넣어 볶은 짜장에 쫀득한 국수를 비벼 먹는 그 감칠맛에 ‘자장면계란회복전국민운동본부’ 회원인 나는 회원으로서의 임무 수행은커녕 이렇게 그 집을 소개하는 글까지 쓰고 있으니, ‘운동본부’ 회원들이여, 나의 ‘이적행위’를 너그러이 용서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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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민 |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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