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두부] 임금의 능에는 두부가 있었다

등록 2003-11-06 15:00 수정 2020-05-02 19:23

한나라 비운의 지식인 유안이 남긴 발명품… ‘두부마을’에서 인현왕후의 넋을 위로하다

유안(劉安)은 한나라를 창건한 유방의 손자로, 문제(文帝) 때 회남왕에 봉해졌다. 그는 시인 묵객들을 환대하여 각지의 문사(文士)들이 그의 곁에 모여들었고, 그 또한 문제가 뛰어나 전국시대의 대시인 굴원이 지은 ‘이소’를 해석한 ‘이소부’를 지었으며, 중국 각지의 신화 전설과 제가의 학설을 모아 를 편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과도한 인문주의 탓이었을까? 유안은 한나라 건국 초 혼란기의 정세 판단에는 어두웠던 듯, 만년에 권력을 집중하려는 중앙정부에 맞서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해 자살하고 말았다. 이렇듯 유안은 현실 정치인으로서는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지만, 인류를 위해서는 너무나도 크나큰 공헌을 한 것이 있으니, 그가 처음으로 두부를 발명했다는 것이다.

BC 2세기에 유안이 발명했다고 하지만, 두부가 본격적으로 일반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를 거쳐 송나라·원나라 시대인 것 같다. 원나라 시대의 잡극과 산곡(散曲)을 통칭하는 속에 거리의 가게 주인이 “이제 죽 팔기는 그만두고 두부만을 팔기로 했다”는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원나라 시대에 두부가 널리 서민적인 식품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아버지도 두부장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두부가 들어와 일반화된 것도 송나라·원나라 즈음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고려 말의 성리학자 이색의 에 “나물국 오랫동안 먹어 맛을 못 느껴/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구어주네/ 이 없는 이 먹기 좋고/ 늙는 몸 양생에 더없이 알맞다/…”라는 시 구절이 있고, 고려 말 조선 초에 살았던 권근의 에 “누렇게 익은 콩이 눈같이 하얀 물을 뿜어/ 펄펄 끓는 가마솥 불을 정성들여 거둔다/ 기름에 번지르르한 동이 뚜껑을 열고/ 옥같이 자른 것이 밥상에 가득 쌓인다”라고 두부 만드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대개의 문물이 중국에서 발하여 우리에게 전해졌지만 우리가 창조적 슬기를 발휘해 이를 더욱 발전시켜 꽃피웠듯이, 두부 또한 우리나라가 중국을 능가한 것 같다. 에 “조선에서 온 여인이 각종 식품 제조에 교묘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두부는 정미하여 명나라 황제가 극구 칭찬하였다”는 구절이 나온다. 또 최남선의 을 보면 “일본의 두부는 임진란 중에 적의 군량 담당관으로 와 있던 오카베 지로효에란 자가 조선에서 그 법을 전해갔다 하기도 하고, 혹 이르되 진주싸움에서 경주성장 박호인이 조오소가베 모토치가에게 붙들려가서 도사땅 고오치에서 두부업을 시작한 것이 근세 일본 두부제조업의 시초라고 하기도 한다”로 되어 있어 일본 두부의 한반도 전래설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두부를 포(泡)라고 불렀다. 정약용의 에 “두부란 숙유(菽乳)다. 두부의 이름은 원래 백아순(白雅馴)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방언이라고 생각해 따로 이름하여 포라 하였다. 여러 임금님의 능원에는 각각 절이 붙어 있어 여기서 두부를 만들어 바치게 하니 이 절을 조포사(造泡寺)라고 하였다…”한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에 능을 모시면 반드시 그 곁에 두부 만드는 절인 조포사를 두어 제수를 준비하게 하였고, 이로써 양주 ‘봉선사 두부’처럼 소문난 두부에는 절 이름이 붙어 내려오게 된 것이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인 명릉을 비롯해 다섯개의 능이 있는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옆에 가면 소문난 두부집 ‘두부마을’(주인 임석현·02-386-4426)이 있다. 장단이나 철원에서 생산되는 백태만을 이용해 순 옛날식으로 짜는 이 집의 두부는 연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화학 조미료와 육류를 일절 쓰지 않는 두부마을 정식의 담백한 맛이 좋으며, 살아 있는 버섯을 배달받아 그때그때 따서 넣는 두부버섯전골도 서넛이 먹기에 푸짐하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시려 서오릉을 찾는 분들, 비록 조포사에서 만든 두부는 아니지만 ‘두부마을’ 두부에 막걸리 한잔 올려, 장희빈의 저주(?)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인현왕후 마마의 넋을 위로해주시라.

김학민 |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