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복국집 사건을 떠올리며 국과 탕의 기원을 찾다… ‘남도복아구전문점’의 시원한 국물
1992년 12월11일,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20여일 앞두고 부산의 어느 음식점 후미진 방에 부산 지역 ‘유지’ 10여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복국’에 소주 몇잔을 걸친 뒤 저마다 부산 출신 민자당 대통령 후보 김영삼씨의 당선을 위해 경상도가 뭉쳐야 하고, 이를 위해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했는데, 이 대화 내용이 당시 국민당 정주영 후보쪽에 의해 고스란히 녹음돼 언론에 공개됐다. 이것이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박일룡 부산 경찰청장 등 부산 ‘유지’들이 모여 지역감정을 조장한 이른바 ‘초원복국집’ 사건이다. 덧붙이자면, 대화 내용이 공개되자 여론이 민자당쪽에 불리하게 돌아갈 듯했으나, 오히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상도가 굳게 ‘단결’해 결국 김영삼씨가 김대중씨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었던 부산 출신 ‘지도급’ 인사들은 이후 승승장구 출세하였고, 이를 폭로한 국민당쪽 인사들만 불법 도청 혐의로 줄줄이 쇠고랑을 차게 되었으니, 오늘날 검찰이 새로 태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것도 이런 업보들이 켜켜이 쌓인 탓이리라.

이때 서울 사람들이 조금 낯설게 느껴진 것이 ‘복국’이다. 서울에서는 복매운탕으로 ‘탕’이라 이름붙이는 데 비해 부산에서는 ‘국’이다. 물을 수용체로 하여 조리하는 음식 중에서 찌개, 조림 등은 그 양태가 뚜렷한 데 비하여 국·갱·탕은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이희승 의 정의를 보면 “갱은 제사에 쓰는 국이고, 탕은 보통의 국을 가리킨다”라고 되어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국·갱·탕의 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국은 한자로 갱(羹·국), 확(月+確(에서 石뺀 것 합성·곰국), 탕(湯·끓을)이다. B.C 3세기경의 중국 시집 에는 “갱은 채소가 섞인 고깃국이고, 확은 채소가 섞이지 않은 고깃국”으로 되어 있으나, 6세기 초의 에서는 그 구별이 모호하여 확은 갱 속에 흡수되고 만다. 그리고 탕은 ‘화타전’에 의하면 ‘약을 달인 것’이라 하였다. 그러다가 당나라 시대에 오면 갱과 탕이 모두 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되었으며, 원나라 시대 요리서인 을 보면 국은 대부분 갱이고, 탕은 오직 음료용·약용에만 쓰인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에는 “탕이란 향기 나는 약용식물을 뜨거운 물에 달여서 마시는 음료”라 하였으며, 에는 “약이성 재료를 뜨거운 물에 달여서 질병 또는 보강제로 사용하는 것”이라 하였다. 또 에서는 “갱이란 본디 고깃국이고 채갱이란 채소국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탕에도 어육을 쓰고 있으니 이제 탕도 국이 되었다”고 하였으며, 에서는 “국물이 많은 국을 탕, 건더기가 많은 국을 갱”이라 정의하였다.
곧 모두 국을 의미하는 갱·확·탕이 고대에는 확실한 차이를 갖고 존재했으나, 중세 이후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탕을 가리켜 국·약·음료로 함께 쓰고 있으니, 이는 아마도 동양의 약식동원(藥食同源) 사상의 발로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결국 상고해보면, 갱과 탕은 국과 병치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국 속에 포함되는데, 오늘날 갱은 독립된 요리라기보다는 제의상 용어로 굳어진 느낌이고, 형용모순 같지만 국과 탕이 병치되어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그 구별은 내용물보다는 조리법, 곧 국은 가마솥과 같은 큰 용기에 대량으로 끓여 한 그릇씩 덜어 내놓는 음식이고, 탕은 음식 재료를 작은 솥이나 냄비에 앉혀 직화로 끓여 용기째 내놓는 국을 일컫는다.
부산이나 마산에 가면 속을 확 풀어주는 복국집이 많다. 나는 어느 요리이든 ‘탕’보다는 ‘국’을 좋아하는데, 최근에는 복국집을 찾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국’은 아니지만 시원한 맛이 ‘복국’에 못지않은 ‘복매운탕’을 잘하는 집이 집 근처에 있어 자주 찾는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에 있는 ‘남도복아구전문점’(031-262-4774)이다. 복요리만을 25년 전문으로 해온 이 집의 주인이자 주방장인 이경행(45)씨는 까치복·참복·미나리·콩나물은 크게 특장이 없고, 다만 스스로 개발한 육수 맛이 복매운탕을 결정짓는 비법이라고 겸손하게 이야기한다.

김학민 | 학민사 대표 · 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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