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민의 음식이야기]
제물을 골고루 나눠먹다 발전한 비빔밥… 전주비빔밥 원형을 찾아 ‘가족회관’으로
1800년대 말의 조리서 에는 비빔밥을 ‘부밥’(汨董飯)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골’(汨)은 어지러울 골이고 ‘동’(董)은 비빌 동이다. 곧 골동은 여러 가지 물건을 한데 섞는 것을 말하므로, 골동반이란 이미 지어놓은 밥에 여러 가지 찬을 섞어서 한데 비빈 음식이다. 이 책에 나오는 우리 비빔밥은 이렇다.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은 부쳐 썬다. 각색 남새를 볶아놓고, 좋은 다시마도 튀각으로 만들어 부숴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잡탕거리처럼 계란을 부쳐서 골패짝만큼 썰어 얹는다.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부쳐 얹는다. 장국은 잡탕국으로 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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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빔밥일까? 경제생활이 어려웠던 시절, 우리나라에서는 차례가 곁들이기 마련인 설날·추석과 잔칫날, 그리고 조상들의 제삿날, 치성굿·마을굿·당굿 등 굿을 하는 날에는 잘 먹었고, 보통 날에는 그렇지가 못했다. 특히 제사를 마치고 나면 술이나 그 밖의 제물을 참여한 사람들이 골고루 나누어 먹는다. 이를 ‘음복’이라 한다. 그런데 산신제, 당제 등은 동네의 먼곳에서 지내기 때문에 그릇을 제대로 갖추어갈 수 없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는 날 제물은 신과 사람이 골고루 나눠먹어야 하니, 그릇 하나에 이것저것 받아 섞어서 먹게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제삿밥을 먹다보니 비빔밥으로 되었을 것이고, 이는 안동지방에 제사가 아닌데도 제사 때처럼 음식을 차려 비벼먹는 ‘헛제삿밥’이란 것이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도 확인된다.
중국, 일본 음식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잡탕찌개를 비판한 글을 보았다. 식품 하나하나의 독특한 맛을 살리지 못하고 몽땅 쏟아넣고 끓이니 그게 제대로 된 음식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모르는 소리다. 우리에게 잡탕에 들어가는 재료 하나하나의 별개의 음식이 없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또 육고기 찌개는 각기 지방의 조성이 달라 이 고기 저 고기 섞어 잡탕찌개를 하면 맛이 이상해지지만, 해산물은 이것저것 넣은 잡탕이라야 감칠맛이 난다. 비빔밥도 마찬가지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찬 하나하나를 따로이 먹어도 맛있지만, 이들이 뒤섞여 나오는 오묘한 맛은 또 새로운 것이다. 대한항공의 기내식으로 제공되는 비빔밥이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고, 몇년 전 공연차 내한한 마이클 잭슨이 우리의 비빔밥 맛에 반해 체류기간 내내 비빔밥으로 끼니를 때웠다지 않은가?
전주 부근을 가는 길에 서너번 비빔밥 전문집엘 들렀다. 그러나 내 생각엔 모두가 전주비빔밥의 ‘원형’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밥을 유기그릇에 푸슬하게 담고, 여기에 쇠고기볶음과 고사리, 도라지, 콩나물, 시금치, 무나물 등 제철 나물을 정갈하게 얹은 다음,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고추장에 썩썩 비빈 뒤 나박김치와 무탕국을 곁들이는 것이 전주비빔밥의 참맛이 아닐까? 그러나 너무 뜨거워서 함께 넣는 나물들이 익어버려 그 향을 잃어버린 돌솥비빔밥을 전주비빔밥이라고 내놓는가 하면, 비빔에 들어가는 내용물이 10여가지가 넘고 딸려나오는 반찬도 20여 가지나 넘는 그 허례를 전주비빔밥의 족보에 마구 잇대어 붙인다. 식당들간의 경쟁 때문에서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입맛이 더 큰 자극을 찾아서인지 소박하게 출발했던 비빔밥이 너무 호화롭게 변한 것이다.
지난주 전주산조예술제에 들른 길에 전주 문화예술인들의 추천으로 비빔밥 전문집 ‘가족회관’(063-284-2884)을 찾았다. 김연임(65)씨가 25년 전부터 연 이 집은 사골국물로 밥을 짓기 때문에 밥알 하나하나 윤기가 나고 밥맛이 아주 고소하다. 이 집도 차림표에 돌솥비빔밥이 있지만, 내가 비빔밥의 원형이라고 생각하는 유기비빔밥도 따로 있어서 시식해 보았는데 그런대로 보아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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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민 |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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