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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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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개고기 사랑

등록 2003-08-14 00:00 수정 2020-05-03 04:23

유배 중 형 정약전에게 보낸 개고기 요리법… ‘능안골’에서 실학파의 ‘입맛’을 떠올리다

조선을 개창한 이성계 쿠데타 세력의 ‘이데올로그’는 단연 정도전이었다. 그는 사회생활을 소홀히 함으로써 봉건 윤리를 지키지 않고, 이로써 국가마저 위태롭게 하였다고 보아 불교를 철저히 배척하고, 신흥조선의 통치원리로 “옛 사람의 덕을 밝히고 국민을 새롭게 할 실학”으로서 성리학을 채택했다. 고려왕조의 문란과 배원친명의 춘추대의적 의리관에서 쿠데타 합리화의 근거를 찾으려 했던 이데올로그들이 조선조의 기틀을 확립하기 위해 선정·덕치·예치의 성리학을 내세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성리학은 조선조가 완전히 기틀을 잡은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말까지 1세기간 성리학 특유의 의리의 실천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 ‘실천’은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예(禮)의 절대시, 명분론적 사고의 팽배, 기성질서에의 맹종·맹신으로 흐르면서 민중들의 삶과는 무관하게 지배층의 공리공담으로 치달았으니, 어지러운 당쟁, 참혹한 사화, 피폐한 민중생활이 그 극한에 닿아 있는 것이다.

조선 후기 사회의 이러한 질곡을 혁파하고, 실사구시와 이용후생, 기술의 존중과 민중 경제생활의 향상을 지향하며 대두된 사상체계가 바로 실학이다. 이 ‘진짜 실학’은 정약용·정약전 형제, 이익, 유형원,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에 의하여 사회정책, 자연과학, 국학, 훈고학, 농학을 학문의 대상으로 하면서 실생활에서 상공업을 장려하고 각종 산업기술의 혁신을 강조하였다. 또 이들은 당시 봉건질서하에서 철저히 하층민이나 부녀자의 역할이었던 식품 가공이나 조리 등에 대해서도 상당한 연구결과들을 남겼는데, 박제가의 , 이익의 에 그 내용들이 들어있다. 이러한 기풍은 18세기 초 서유구 일문에 이어져, 등의 조리·농서들을 찬술케 했으니, 우리 전통 음식의 전승에도 실학파는 큰 공헌을 한 것이다.

실학파 중 가장 우뚝한 분이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은 경집·문집 합하여 500권 이상의 저서를 집필함으로써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정인보)로 평가받는다. 다산은 18년이라는 극한적인 유배생활에서 끝없는 절망과 참혹한 고통과 싸우면서도 아들과 흑산도에 유배되었던 둘째형 정약전에게 올바른 삶의 방향과 학문적 이슈, 인간적 고뇌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다산이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 하나가 흥미롭다. 이 편지를 보면 다산은 무척이나 개고기를 좋아하였을 뿐 아니라 개잡는 법, 개 요리법에도 정통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요리법을 박제가에게서 들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박제가는 다산보다 한수 위의 ‘꾼’이었던 것 같다.

“…보내주신 편지에서 ‘짐승의 고기는 전혀 먹지 못한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어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도라고 하겠습니까? 섬 안에 들개가 천 마리, 백 마리뿐이 아닐 텐데, 제가 거기에 있었다면 5일에 한 마리씩 삶는 것을 결코 빠뜨리지 않겠습니다. …5일마다 한 마리를 삶으면 하루 이틀쯤이야 생선요리를 먹는다 해도 어찌 기운을 잃는 데까지야 이르겠습니까? 1년 366일에 52마리의 개를 삶으면 충분히 고기를 계속 먹을 수가 있습니다. …들깨 한말을 이 편에 부쳐드리니 볶아서 가루로 만드십시오. …또 삶는 법을 말씀드리면, 우선 티끌이 묻지 않도록 달아매서 껍질을 벗기고 창자나 밥통은 씻어도 그 나머지는 절대로 씻지 말고 곧장 가마솥 속에 넣어서 바로 맑은 물로 삶습니다. 그러고는 일단 꺼내놓고 식초, 장, 기름, 파로 양념을 하여 더러는 다시 볶기도 하고 더러는 다시 삶는데 이렇게 해야 훌륭한 맛이 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박초정(박제가)의 개고기 요리법입니다.”

경부고속도로 기흥나들목 근처에 있는 보신탕집 ‘능안골’(031-286-7080)은 대추·은행·인삼까지 곁들여 내놓는 수육이 일품이다. 주인 차문영(52)씨는 경기도 토박이로 같은 자리에서 10여년째 이 식당을 열고 있는데, 경기도 토박이인 나의 입맛에 딱 맞아 혹 대부분이 경기도 출신이었던 실학파들이 요리해 먹은 개고기도 이 맛이 아니었나 추측해본다.

김학민 |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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