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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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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밥] 울릉도를 사랑한 ‘영웅’

등록 2003-08-20 15:00 수정 2020-05-02 19:23

무능한 조정을 대신해 울릉도 지킨 안용복… 절경을 바라보며 ‘보배식당’의 홍합밥을 먹어보라

낡은 소재를 재탕삼탕 우려먹는 TV 사극을 보노라면 한여름의 무더위가 더욱 무덥게 느껴질 정도로 짜증이 난다. 왕이 근무처에서 정무를 보는 허구한 날, 대신들이 패거리를 지어 권력투쟁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근정전에서 몇백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에서는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왕비와 후궁들이 찧고 빻는 암투로 밤을 지새운다. 왜 TV나 영화에서는 이런 소재들만을 다룰까? 우리 역사에는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해내기 위해 활약한 민중 영웅들의 이야기가 없는 것일까?

숙종 시대에 살았던 안용복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동래 출신의 어부로 일찍이 수군에 들어가 복무하던 중 부산의 왜관에 자주 출입하여 일본말을 잘하였다. 안용복은 1693년 동래 어민 40여명과 함께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고기를 잡으러 침입한 일본 어민들을 힐난하다가 일본으로 끌려갔다. 안용복은 에도 막부에게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당당히 주장하고, 조선과 에도 막부 사이에서 대마도주가 쌀의 말과 베의 척을 속이는 등 농락이 심한 것을 밝혔다. 에도 막부는 안용복에게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하는 서계를 써주었으나, 나가사키에서 대마도주에게 그 서계를 빼앗기고 귀국했다. 대마도주는 울릉도를 차지할 목적으로 서계를 위조하여 같은해 9월 사신을 동래에 보내어 안용복의 소환을 요구하는 동시에, 예조에 조선의 어민이 일본 영토인 울릉도에서 고기 잡는 것을 금지시켜달라고 요청하였다. 울릉도는 조선 초부터 왜구의 거점이 된다 하여 섬 전체를 비워두는 공도정책을 펴왔는데, 당시 조정은 무사주의 외교정책을 펴 비워둔 땅으로 인해 왜인과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며 일본에게도 조선의 공도정책에 협조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의 답서를 보냈다. 1696년 봄, 안용복은 다시 10여명의 어부들과 울릉도에 출어하여 마침 고기잡이 중인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독도까지 추격해 침범 사실을 문책하였다. 또 안용복은 울릉우산양도감세관이라 자칭하고 일본의 호키주에 가서 태수에게 일본 어민의 침범 사실을 항의해, 사과를 받고 돌아왔다. 아, 이 늠름한 민중 영웅이여! 그러나 제 나라도 지키지 못해 땅을 비워둔 무능한 조정은 안용복이 나라의 허락 없이 국제분쟁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서울에 압송하여 사형까지 논의했으나 영의정 남구만의 만류로 귀양을 보냈다. 안용복의 활약으로 이듬해인 1697년, 대마도주는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했고 에도 막부는 울릉도를 조선 땅으로 확인한다는 통지를 조선에 보냈으나, 안용복은 끝까지 ‘죄’가 풀리지 않은 채 귀양지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1953년, 3대에 걸쳐 울릉도에서 살아온 홍순칠은 6·25전쟁의 혼란을 틈타 독도에 침입, 영토 표식을 하고 가는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사수하고자 울릉도민 33명으로 ‘독도사수특수의용대’를 조직하였다. 이 의용대는 3교대로 독도에 주둔하면서 1954년 경찰이 정식으로 수비를 맡게 될 때까지 독도를 지켜냈으니, 오늘날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에서 우리나라가 우위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 분들의 공헌이다. 이 모두는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이야기다. 지난해에 타계한 서지학자 이종학 선생은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임을 밝히는 울릉도, 독도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는 데 평생을 바친 분이다. 이 자료들은 현재 도동에 소재한 독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한번쯤 들린다면 독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더 잘 알게 되고, 모르던 사람은 알게 된다.

8월 초 몇몇 친구들과 함께 울릉도로 휴가를 다녀왔다. 울릉도는 푸른 바다와 울창한 숲, 깊은 계곡, 기암절벽의 절경이지만, 먹을거리 또한 산해진미다. 성인봉 깊은 숲속에서 나는 명이나물, 삼나물 등의 산채, 청정해역에서 잡히는 각종 해산물, 약초로 키운 쇠고기 등 무엇을 먼저 맛보아야 할지 음식이야기 필자로서 고민이 많았다. 울릉도 지킴이 김경창씨와 함께 간 보배식당(054-791-2683·주인 이병주)은 홍합밥이 전문이다. 청정해역에서 나는 자연산 홍합을 잘게 썰어 밥을 지은 뒤 양념장에 썩썩 비벼 명이나물을 척 얹어먹는 맛은 참으로 일품이다. 홍합밥의 택배도 가능하다고 한다.



김학민 | 학민사 대표·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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