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톱3 로펌의 승소율 가장 높은 변호사 이충구는 최신형 전동휠체어를 타고 막힘없이 이동한다. tvN 제공
“나는 네 강점 때문에 곁에 두려 한 건데, 너는 내 약점 때문에 옆에 있는 거구나. 그런데 나 그거 질색이거든.”
“그게 나쁜가요? 선배님이 약점이라 말하는 그 부분이 전 선배님을 더 강하고 특별하게 만드는 거 같은데. 약한 모습에 마음이 가고 그 약함 때문에 더 존경하게 되는 게 그렇게 나쁜 건가요?”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청각장애가 있는 주인공 이호수(박진영 분)와 회사에서 자신의 롤모델이자, 이동할 때 휠체어를 타는 변호사 이충구(임철수 분)가 대립하는 장면이다. 내게는 이 투샷이 ‘미지의 서울’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 ‘기존의 장애 이야기와 다른 결의 이야기를 하려는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한 장면이다.
그동안 한국 드라마에서 장애를 가진 두 선후배가 한 프레임 안에서 장애나 일에 대한 소신과 이견으로 충돌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나? 또는 장애를 가진 캐릭터 두 명이 서로 대결 구도를 형성하며 치열하게 다투고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 아마 기억에 없을 것이다. 이 투샷 이후 나는 이호수와 이충구가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때론 경쟁자로, 때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위로하고 조언해주는 동지로서 발전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됐다.
사실 이 대화는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장애에도 불구하고’라는, 개인 극복의 의미를 내포하기도 해, 어떤 장애당사자들은 불편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장애가 ‘이 사회’에선 약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많다. 이를테면 균등한 신체 조건 등을 상정하고 치르는 대학입시나 취업 같은 선발이 이뤄지는 삶의 국면에서 장애는 약점이 된다. 장애인 일자리조차 취업 공지에서 소통에 어려움이 없거나, 손에 장애가 없는 사람을 우대한다는 조건을 내세우는 경우가 태반이다. ‘비장애인과 유사할 것’을 조건으로 내거는 것과 다름없다. 이렇게 최대한 비장애인처럼 행동하고 말하며 듣고 보는 정도와 방식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나의 장애는 내 생각과 달리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선배님이 약점이라 말하는 그 부분이 전 선배님을 더 강하고 특별하게 만드는 거 같은데. 약한 모습에 마음이 가고 그 약함 때문에 더 존경하게 되는 게 그렇게 나쁜 건가요?” 이호수의 이 말은, ‘장애’를 ‘약점’으로 생각하는 사회에서 ‘그 약점이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정공법으로 던지는 말이다. 내게는 이호수의 말이 같은 경험을 가진 후배가 ‘그럼에도 유능하게 살아남은’ 선배를 예찬하고 존경하는 동지애적인 말로 들렸다. 이충구에게도 사회가 지운 장애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이며 세상에 대해 잠가뒀던 빗장을 조금씩 열 수 있는 의외의 순간이었으리라. 이 순간이 있었기에 이호수는 자신이 가장 이기고 싶었던 친구 유미래(박보영 분)의 직장 내 괴롭힘 고발 사건을 이충구 변호사에게 맡길 수 있었고, 이충구 역시 힘들어하는 후배에게 “약함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더니, 정작 너는 약점 드러낼 생각이 없나보네. 그게 네 약점인가?”라는 삐딱한 말투로 위로와 애정이 담긴 조언을 건넨다.(갑작스러운 화해 결말에 비판이 종종 제기되는 지점에 대해 건네는 변호다.)

청각장애가 있는 이호수는 그 정체성을 살려 변호사로서 일한다. tvN 제공
‘미지의 서울’이 이룬 가장 큰 성취는 장애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또는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예외적인 천재로서만 그리는 기존 서사에서 나아간 점이라고 생각한다. ‘미지의 서울’에서 이호수와 이충구의 장애는 사회생활에서나 직장생활에서 약점으로도, 강점으로도 인식되지 않는다. 이충구 변호사는 휠체어와 지팡이를 병용하는 장애인으로서 이동의 자유가 최대화된 설정으로 그려진다. 이런 설정은 장애당사자를 불편하게 하는 휠체어 접근성 문제는 부각하지만 재판과 회의, 상담에는 아무런 불편을 끼치지 않는다. 이호수 역시 귀와 다리에 통증이 있지만 재판 중이거나 회의 중, 상담 중일 때는 그런 통증이 거의 연출되지 않았다.
장애를 단순히 갈등 소재로 삼지 않고 생활인이자 직장인으로서 사람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제작진의 메시지로도 읽힌다. 실제로 이런 설정을 보면서 내가 나의 정체성인 장애와 일 사이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 있어 공감했다. 글 쓰는 게 직업인 나는 내 장애로 인해 타자를 치는 시간과 에너지가 남들보다 두 배 더 많이 들어간다.(평소 열흘의 마감 여유를 두고 원고를 쓰지만 급박하게 쓰게 되면 원고가 마음에 차지 않은상태로 전송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의 정체성으로 인해 다른 시선을 갖고 다른 말을 하고, 다른 문장을 쓴다. 내 정체성으로 인해 발현되는 나의 능력인 것이다.
나는 성공한 변호사 ‘이충구’에 설레었다. 업계 톱3 로펌에서도 가장 높은 승소율을 자랑하는 이충구가 최신형 전동휠체어를 타고 세련된 핏의 양복을 입고 광나는 고급 수제 구두를 신고 로펌 사무실로 들어오는 첫 등장 장면은 신선했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장애를 가진 인물들은 대체로 소외되고 낮은 자리에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대신 목소리가 ‘들려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절충은 필요해 보이지만), 휠체어 타는 이충구는 매력적이었다.
나와 달리 휠체어를 타는 내 친구는 이충구가 로사식당에 지팡이를 짚고 들어서는 장면에서 격하게 공감했다. 이충구는 식당 매매를 종용하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로사식당에 들어서며 일갈했다. “이 식당엔 휠체어 타는 사람들은 안 오나보죠?” 친구가 경사로가 없는 식당 문 앞에서 몇 번이고 돌아서며 삼켰던 말이고, 식당 앞에서 지팡이를 짚고 설 수만 있었으면 하고 몇 번이고 바랐던 장면이란다. 보수적 문화, 열악한 개발 여건을 지닌 지역은 말할 것도 없지만, 서울에서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나 카페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그럴 때마다 목발이나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만 있었으면 했다는 것이다. 찾다 찾다 배고픔을 참고 집에 와 밥을 먹을 때면 서울이 자신에게만 빗장을 걸어 잠근 것 같다고 했다. ‘미지의 서울’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교외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비장애인 주인공이 겪는 고충을 서사에 녹여내듯, 휠체어를 타는 내 친구가 일상에서 겪는 이동의 어려움을 서사에 녹였다.
이동의 어려움을 드러내는 데서 끝이 아니라 최신형 휠체어를 타고 자유자재로 턱 없는 입구와 자동문이 설치된 로펌 사무실을 드나드는 이충구의 모습은 이 설비들이 장애인을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지 시청자의 눈과 귀에 맺히게 했을 것이다. 이런 장면, 이런 대사, 이런 인물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알고,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그 메시지들이 쌓여 현실을 나아가게 만듦을 믿기에 나는 ‘미지의 서울’이 고맙다. 미디어에서의 존재감은 사회로 연결되고 사회적 존재감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빗장을 열고 문밖 세상으로 나오게 하는 밀알이 되리라 믿는다.
백수정 대중문화비평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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