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철학 하는 밤, 혁명을 기도하는 시간

19세기 목수부터 21세기 교정공까지, 사유하고 글 쓰는 밤을 일궈온 이들을 읽다

프랑스의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1875년 작품 ‘마루 깎는 사람들’.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이들을 가장 존경하라.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그런 이들을. 다른 누구보다도.”

이 문장은 어느 철학자가 한 말일까? 어떤 철학책에 나오는 구절일까? 아니다. 이 말은 ‘교정의 요정’이라는 일기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한 교정공의 문장이다. 그는 ‘든’과 ‘던’, ‘로써’와 ‘로서’ 같은 하찮아 보이는 글자 하나에도 집요하게 매달리는 교정 노동자다. 때로는 눈물을 쏟고 울분을 삭이면서도, 문장의 잘잘못을 끝내 따지고 오류를 바로잡는다. 말의 옳고 그름을 둘러싼 한없는 고통과 노고를 통과한 끝에야 비로소 한 권의 책이 완성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읽고 가장 많이 쓰는 시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뉴스, 전자우편 등 수많은 텍스트가 매초 쏟아진다. 그런데도 이제 아무도 ‘교정’하지 않는다. 문장의 사소한 오류를 고치는 일은, 읽고 쓰는 일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가장 먼저 사라지는 노동처럼 보인다.

‘교정하다’라는 동사가 멸종할 때

한승태 작가는 ‘어떤 동사의 멸종’(시대의창, 2024)에서 전화받기(콜센터 상담), 운반하기(택배 상하차), 요리하기(뷔페식당 주방), 청소하기(빌딩 청소) 같은 일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풍경을 기록한 바 있다. 직업이 하나 사라질 때마다 그에 연관된 동사도 하나씩 사라져간다. 그렇다면 ‘교정하다’라는 동사가 멸종할 때, 과연 무엇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토씨 하나, 문장 하나의 옳고 그름을 놓고 고민하던 사람들의 노동이 점점 희미해질 때, 옳고 그름을 가려낼 수 있었던 우리의 판단 능력도 어느새 함께 사라져간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발 디딜 지반마저 흔들릴 때, 다시 붙잡아야 할 것은 거창한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평범한 자리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각자가 매일같이 반복하며 살아온 그 노동의 현장에 말이다. 잠시 21세기의 낮에서 19세기의 밤으로 건너가보자.

때는 1970년대 프랑스, 68혁명의 여진이 채 가시지 않은 시기,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국립도서관의 고문서 보관소를 뒤지다 한 편의 편지를 발견한다. 1830년대 프랑스에서 노동자로 살아간 목수 루이 가브리엘 고니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였다. 랑시에르는 19세기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찾으려 했지만, 그가 뜻밖에 마주한 것은 한 노동자의 낯설고 생기 넘치는 삶이었다. 고니는 휴일을 내일의 노동을 위한 회복 시간으로 보내지 않았다. 그는 탐미주의자처럼 산책하며 풍경을 즐기고, 철학자처럼 글을 쓰며 형이상학적 가설을 전개하고, 활동가처럼 만나는 벗들에게 노동운동을 전파했다. 그것은 오히려 부르주아의 여가에 가까운 것이었다.

자크 랑시에르

낮에는 마루 깎는 노동자로 바닥을 무릎으로 기어다니지만, 밤에는 시를 쓰고 철학책을 읽고 동료들과 정치 토론을 한다. 매일매일 시간을 도둑맞는 슬픔을 더 이상 견디지 않고 온전히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되겠다는 의지다. 사회 질서는 ‘누가 무엇을 읽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가’를 당연한 듯 구분 지어놓는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의 여가와 부르주아의 여가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로지를 때, 고니는 감각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질서를 모두 교란하는 존재가 된다. 그는 노동자로 살지만 부르주아처럼 읽고 사유하고 말할 수 있었다.

140년 전 목수의 편지를 만난 랑시에르

고니를 통해 랑시에르는 노동자의 해방이란 낮의 노동과는 다른 방식으로 실존할 수 있음을 스스로 발견하는 데서 시작됨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이것이 어떤 대단한 철학자가 노동자의 기록으로부터 새삼스레 찾아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평민 철학자’인 고니가 한 사람의 동료 철학자로서 랑시에르에게 가르쳐준 사실이었다.

이후 랑시에르가 펴낸 ‘프롤레타리아의 밤’(문학동네, 2021)은 목수 고니와 같이 ‘사유하는’ 노동자들이 남긴 기록의 아카이브다. 랑시에르는 19세기 노동자들이 밤에 꾸었던 꿈의 기록을 수집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날것 그대로 들려주려 했다. 그것은 노동 시간과 휴식 시간이라는 위계적 시간 질서에 저항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밤의 시간’을 누린 노동자들의 이야기였다. 이는 그저 한가로운 행위만이 아니었다. 시를 쓰고 철학적 주장을 펼친 노동자들은, 혁명가를 노래하는 노동자들만큼이나 기존 체제에 위험한 존재였다.

어쩌면 랑시에르가 ‘프롤레타리아의 밤’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목수 고니가 친구에게 보낸 다음 말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를 끔찍한 독서 안으로 던져봐. 그게 너의 불행한 삶 속에서 정념을 일깨워줄 거야.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자신을 집어삼키려드는 것에 맞서 일어나기 위해 바로 그런 게 필요해.” 프롤레타리아의 고통을 마비시킨다고 여겨진 다른 세계들(독서, 시, 철학, 연극 등)이 때로는 고통에 대한 의식을 가장 첨예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랑시에르가 고니에게서 배운 ‘프롤레타리아의 밤’은 단지 지쳐 쓰러져 잠드는 밤이 아니라, 노동자처럼 살되 부르주아처럼 말할 수 있는 밤을 뜻한다. 프롤레타리아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자신들이 착취와는 다른 삶을 향하도록 운명 지어졌음을 감각하고 인식하는 일이었다. 그 밤은 단지 노동 뒤의 휴식 시간이 아니었다. 노동자가 책을 펼치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고, 다른 삶을 상상하는 시간이었기에, 그 밤은 정치적이다. 세계의 전복은 밤에 시작된다.

교정공의 일기를 만난 철학책 편집자

오늘의 한국에도 또 다른 고니가 있다. 대학 교재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교정공으로 일하는 유리관은, 낮에는 교정 노동자로 문장을 고치고, 밤에는 일기를 쓰며 노동자로서의 삶을 기록하고 사유한다. “지옥에서 밭을 가는 일”이라 표현할 만큼 고된 노동 속에서도,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오류를 잡아내고 기어코 문장을 살려내는 고독한 전투를 수행한다. 그러면서도 휴일에는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여 거리를 행진하고, 동료들과 문학에 대해 토론하는 독서 모임을 연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을 자신의 블로그에 글로 쓰고, 그것을 ‘교정의 요정’(민음사, 2024)이라는 일기책으로 펴낸다.

‘교정의 요정’은 단순한 자기 고백이 아니다. 유리관의 일기에는 자신이 처한 사회적 환경과 정치적 조건을 자각하고, 그 안에서 다른 삶을 꿈꾸고 실험하는 나날의 기록이 담겨 있다. 온갖 원고의 상상도 못할 오류들을 찾아내 고치는 교정이라는 싸움은, 산산조각 난 세계 속에서 말을 통하게 하는 작업으로, 원고의 교정을 넘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고치는 일로 이어진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실상 노동이란 옳고 그름을 자신의 영역에서 분별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유리관은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뭔가를 고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좀 더 적절하게 말해, 그 정의상 ‘일’이란 뭔가를 고치는 행동인 것이다.”

그래서 유리관은 “노동계급”이라는 표현을 일기 속에서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모든 곳에서 소비자 개인이 되라는 외침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이런 세계에서 우리 계급은 절대로 개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 고니, 랑시에르, 유리관, 그리고 우리를 연결해준다.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나 21세기 인공지능 시대의 직장인이나 처지는 다를 바가 없다. ‘노동자’라 불리든 ‘직장인’이라 불리든 언제든 다른 사람 혹은 기계로 대체될 수 있는 존재일 뿐이다. 몸뚱이 하나밖에 믿을 것이 없기에 우리는 부정할 수 없이 무산자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에 속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노동자의 또 다른 일기책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한국어 교육자 최수근은 어쩌다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된 자신의 나날을 ‘지부장의 수첩’(민음사, 2024)에서 담담하게 기록한다. 한때는 어떠한 정의감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지만, 노동운동을 시작하며 그는 서서히 변해간다. 책의 막바지에 이르러 그는 자신이 얻은 한 가지 깨달음을 이렇게 전한다. “노동운동을 시작하는 계기는 사람마다 각기 다르지만 지향하는 바는 대체로 같다. 우리는 어떤 존엄함은 집단적으로만 지켜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 사람의 존엄함이 훼손되면 나의 존엄함도 훼손된다. 이 사실이 사람들을 연대하게 만든다.”

발 딛고 선 곳에서 시작되는 철학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노동자들은 서로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노동자들이 밤에 꾸는 꿈에는 더 이상 노동자가 되지 않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이 있다. 그것은 도둑맞은 시간을 다시 찾으려는 개인적 열망이자, 대체될 수 있는 우리의 공통성으로부터 평등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정치적 통찰이다. 이는 노동자이기에 사유할 수 없다는 상식적 믿음을 뒤집는다. 오히려 노동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시간의 분할과 그것이 만드는 고통의 구조를 꿰뚫어 본 사람들이기에, 가장 정직하게 사유할 수 있다.

철학은 더 이상 고요한 서재에만 머무를 수 없다. 반복되는 노동의 시간 속에서,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그럼에도 서로의 존엄함을 함께 지키는 연대의 감각 속에서 새로운 사유가 탄생한다면 말이다. 그것은 누구의 언어로 세계를 다시 말할 수 있는가에 관한 싸움이기도 하다. 그 싸움은 오늘도 출근길 버스 안에서, 교정공의 블로그 속에서, 독서 모임의 밤 아래에서 조용히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곳에서 철학은 매번 다시 시작된다. 나는 이를 ‘아래로부터의 철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박동수 사월의책 편집장·철학책 편집자

※철학책 편집자 박동수가 ‘지금 한국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철학 이야기’를 전합니다. 4주마다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