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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배송이 당연한 사회, 상시적인 야간노동은 ‘느린 재난’이다

‘프롤레타리아의 밤’을 잃어버린 시대, ‘상품화된 밤’에 대한 고찰
등록 2025-11-06 22:13 수정 2025-11-10 17:09
배송노동자 ‘쿠팡맨’ 조찬호씨가 2019년 12월17일 새벽,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새벽배송을 하던 중 콜라를 마시고 있다.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일하는 조씨는 시간 안에 배달을 마치기 위해 밥 대신 탄산음료로 당을 보충한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배송노동자 ‘쿠팡맨’ 조찬호씨가 2019년 12월17일 새벽,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새벽배송을 하던 중 콜라를 마시고 있다.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일하는 조씨는 시간 안에 배달을 마치기 위해 밥 대신 탄산음료로 당을 보충한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프롤레타리아의 밤’(문학동네 펴냄, 2021년)에서 “이 제목에서는 그 어떤 메타포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며 책을 시작한다. 이 책의 ‘밤’은 비유가 아니라, 19세기 프랑스 노동자들이 실제로 겪어낸 밤이다. 낮에는 마루를 까는 노동자로 무릎을 꿇고 바닥을 기어다니지만, 밤에는 시를 쓰고 철학책을 읽으며 ‘밤의 시간’을 누린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이라는 위계적 시간 질서에 저항하며 다른 삶을 꿈꿨다.

그러나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밤은 또 다른 노동의 시간이 되었다. 교대직 노동자들은 밤에도 일하고, 새벽배송 노동자들은 오직 밤에만 일한다. 한국은 ‘밤과 어둠의 시간’을 상품화하는 데 가장 앞서 있는 사회다. 새벽배송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질 수 있는 것도 그 놀라운 ‘선진성’ 때문일지 모른다.

야간노동이라는 느린 재난

야간노동의 위험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에서 야간 교대근무를 ‘2A군 발암물질’로 지정한 것이 2007년의 일이다. 그 뒤로 수많은 연구가 야간노동의 해악을 경고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 제기가 사회 전체의 의제로 다뤄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마켓컬리·쿠팡 같은 기업이 야간노동을 ‘혁신’의 수단으로 삼는 동안, 반대의 목소리는 산발적이었고 제도적 규제는 거의 없었다. 이제야 우리는 ‘야간노동을 금지할 것인가, 허용할 것인가’를 두고 ‘새벽배송 논쟁’을 막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나 논쟁의 첨예함과 일치되지 않는 의견에서 알 수 있듯 이 문제를 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새벽배송이 지난 몇 년간 일반화되면서 생활양식 자체가 재조직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아무리 적게 따져도 아홉 가지 ‘존재양식’이 얽혀 있다. ①몸과 생계의 재생산 방식 ②삶의 습관 ③배송 인프라의 기술 ④건강의 과학 ⑤사회적 합의의 정치 ⑥합의를 지탱하는 법 ⑦편리함에 대한 애착 ⑧노동과 일자리의 불평등한 조직 ⑨고려되지 못한 도덕적 문제.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까?

야간노동에 사람의 몸이 적응할 수 있는지부터 질문해보자. 의학계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야간노동에 아무리 익숙해진다고 해도 생체리듬에 교란이 일어나 몸에는 손상이 서서히 누적된다. 의학적 원칙에 따르면 야간노동은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노동자의 몸과 건강을 다루는 ‘과학적 사실’을 정치적 논의의 출발점에 두자는 제안이 나온다.

일견 타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그 상식적인 제안을 모두가 기꺼이 수용할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진짜 문제가 있다.

생존의 언어와 건강의 언어 사이에서

건강과 과학의 언어가 모든 이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택배기사도 있다. 김슬기 택배기사(비노조연합 대표)는 ‘새벽배송 금지 주장… 택배기사로서 단호히 반대한다’(조선일보, 2025년 11월3일)라는 글에서 택배기사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개인사업자를 내고, 자기 돈으로 차를 사고, 세금을 내는 사장들이다. 따라서 새벽배송을 하지 말자는 건 영업시간을 제한하자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개인이 선택해야 하는 영역을 침범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야간노동이 몸과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개인사업자로서, 사장으로서 야간노동을 ‘선택’하겠다는 이야기다. “주간에는 차량 정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스트레스인데, 심야 시간에는 그냥 길을 막고 배송해도” 되고, “배송 수수료도 주간보다 높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민중의소리 펴냄, 2022년)에 기록된 현실은 다르다. 심야배송 중 과로사로 사망한 택배기사, 야간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욕실에서 쓰러져 사망한 20대 청년의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하루이틀은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야간노동이 1년 넘게, 몇 년째 이어지다보면 사람이 “서서히 죽어 나가는 구조”가 된다. 상시적인 야간노동은 ‘느린 재난’의 범주에 속한다.

그럼에도 야간노동을 하는 많은 계약직·특수고용 노동자는 설문조사에서 “야간노동이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야간배송 서비스가 더 확대되길 바란다”고 응답했다.(전주희, ‘야간노동사회’) 서비스 이용자인 일반 시민보다 두 배 이상 높은 비율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일자리 부족의 문제, 즉 생존의 문제” 때문이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우리 모두에게 당연하게 주어져야 하는 권리”라는 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안전하게 일할 법적 권리가 생계를 위한 일자리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영업시간 제한”처럼 들릴 수도 있다.

사회적 합의를 지탱하는 법적 권리와 경제적 생계를 위한 일자리 찾기는 같은 ‘존재양식’의 문제가 아니다. 건강의 과학도 당장 생계 문제에 몰두하는 사람에게는 사치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들에게 건강의 과학은 “논의의 출발점”이 아니다. 자신의 몸과 건강을 희생하더라도 조금 더 나은 생계 여건을 보장해주는 기업이 더 나은 ‘동맹자’로 여겨지는 이유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등이 2022년 2월23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반복되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의 사망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다. 한겨레 자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등이 2022년 2월23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반복되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의 사망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다. 한겨레 자료


“당신을 돌보는 건 내 몫이 아니다”라는 말

새벽배송 제한이 노동자와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발상은, 결국 새벽배송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몸과 건강이 어떻게 되든 “그건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만일 그 말을 하는 사람이 택배기사 당사자라면 “내 몸과 건강은 당신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를 돌보는 건 당신의 몫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찬가지로 “당신을 돌보는 건 내 몫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셈이다.

이런 말들은 사회와 경제를 수행적으로 조직하는 특정한 대본의 언어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언어를 우리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개인은 개인일 뿐이며, 우리는 각자를 서로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기묘한 서사가 존재한다. 경제적 효율성만이 살아남는 서사 앞에서 몸의 재생산, 건강의 과학, 사회적 합의의 정치, 노동과 일자리의 불평등한 조직, 상호 돌봄의 도덕은 모두 논외의 문제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는 새벽배송이 철저히 ‘경제적’ 이해관계와 ‘개인 선택’의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는 이미 정해진 자연법칙의 영역이 아니라, 매일 우리가 만들어가는 조직화의 문제다.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가 ‘존재양식의 탐구’(사월의책 펴냄, 2023년)에서 말하듯, 경제는 인간과 재화, 가치와 계산, 애착과 도덕이 끊임없이 얽히고 재조정되는 관계적 행위의 그물망이다. 새벽배송의 경제에는 택배기사의 몸과 건강, 배송료 계산 방식, 편리함에 대한 소비자의 애착, 노동권과 건강권을 둘러싼 법적 공방, 플랫폼 기업의 이윤 추구 등이 얽혀 있다. 이 모든 요소가 연루된 문제를 ‘개인 선택의 자유’로 환원할 수는 없다.

이 문제를 오직 ‘자유’의 최적값을 계산하는 문제로만 여긴다면, 곧 몸의 재생산과 건강의 과학, 돌봄의 윤리를 경제적 논의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여긴다면, 경제를 자연법칙처럼 다루는 신자유주의의 계산법에 빠져 있는 것이다. 반대로 건강의 과학만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생계의 절박함이라는 또 다른 존재양식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잘 계산해야 한다. 그 계산에는 몸과 과학, 법과 정치, 도덕과 애착 등 함께 엮여 있는 모든 존재양식이 포함돼야 한다. 새벽배송은 단순히 배송 시간대를 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낮과 밤을 둘러싼 생활양식 전체를 다시 만들어내는 일이다.

동료 시민·노동자에게 말 걸기

요컨대 나의 ‘자유로운 선택’은 동료 노동자의 건강과 불가피하게 얽혀 있으며, 이 연루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새벽배송을 금지하라” 혹은 “새벽배송은 자유로운 선택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야간노동이라는 느린 재난과 일자리 부족이라는 또 다른 재난이 서로를 강화하는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생존을 위해 건강을 담보로 내놓지 않아도 되는 사회와 경제를 조직하는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시작은 ‘동료에게 말 걸기’다. “새벽배송을 금지하면 안 된다고 하니 나를 노동 착취하는 사람으로 몰더라”라는 식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생계의 절박함으로 야간노동을 택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야간노동에도 사람은 적응한다는 속설이 과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정치적 논의의 출발점이 과학과 사실 위에 있어야 한다는 이상은 옳지만, 현실에서는 그 ‘출발점’ 자체가 공유돼 있지 않다. 대원칙을 확립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대화의 중요한 일부다.

세상에는 “내 몸과 건강은 당신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동료 노동자도 있고, “당신을 돌보는 건 내 몫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동료 시민도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때로는 그들과 싸워야 하지만, 이제 막 새벽노동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지금, 조금 더 나은 방식으로 천천히 말을 걸어볼 수도 있다.

“당신이 지금 돈이 절실하다는 것, 야간수당이 더 높고 주간보다 일하기 편하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1년 뒤, 3년 뒤 당신의 몸이 어떻게 될지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우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함께 요구할 것이 있지 않을까요? 야간노동 총량 제한, 휴식 보장, 의무적 건강검진 같은 것 말입니다. 무엇보다 당신의 노동이 우리 일상을 돌보듯, 당신의 몸과 건강을 돌보는 일을 우리 모두의 몫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박동수 사월의책 편집장·철학책 편집자

 

*철학책 편집자 박동수가 ‘지금 한국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철학 이야기’를 전합니다. 4주마다 연재.

 

‘프롤레타리아의 밤’, 자크 랑시에르 지음,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21년

‘프롤레타리아의 밤’, 자크 랑시에르 지음,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21년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 박미숙 외 지음, 민중의소리 펴냄, 2022년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 박미숙 외 지음, 민중의소리 펴냄, 2022년


 

‘존재양식의 탐구’, 브뤼노 라투르 지음, 황장진 옮김, 사월의책 펴냄, 2023년

‘존재양식의 탐구’, 브뤼노 라투르 지음, 황장진 옮김, 사월의책 펴냄,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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